짧은생각 긴여운

바벨탑은 완성되어야 한다.

배가번드 2024. 11. 1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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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의 세 번째 날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의 설교가 그렇듯이 이번 강연회도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말로는 영생을 얻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로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생을 얻게 된다 말하는 걸로 보였던 겁니다.

성경 내용전체가 예수를 증거하기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말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내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는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도들을 예수교인들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하나님을 믿는 것도 제대로 알고 믿어야한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을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 말하는지를 알아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역시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내말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예수스스로가 말씀하신 내용이며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예수만 믿어서 영생을 얻을 것 같으면 21절 말씀은 기록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생의 하늘에 오를 수 없다 요한복음6절에 기록해 놓았으므로 예수를 믿어야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내용이 진리의 말씀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성령으로 인식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보낸다 했으며 그가 바로 성령이며 우리의 진정한 영혼이라는 말씀을 예수께서 하신 겁니다.

그리고 평상시 예수님이 가르친 내용 모든 것이 내재하신 성령을 일깨우는데 있었음을 26절에서 밝히고 있지요.

16절을 보다시피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 했으니 예수님 말고 다른 이를 보내는 것으로 여기게 되지만 영원히 함께 한다 했으니 영원속의 하나님, 즉 빛이자 성령이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점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만 모든 구약의 내용이 예수를 입증하기 위해 기록된 거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며 요한 계시록의 말씀을 멸망을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번 강연회를 통해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성경을 무조건 믿지 말고 따져 보고 믿으라 했으니 내가 하는 말을 오해 없이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목사님께서 워낙 여러 가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셨는지라 모두를 볼 수는 없지만 대표적으로 바벨탑 사건 한 가지만 보겠습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창11:1)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창11:2)

And it came to pass, as they journeyed from the east, that they found 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and they dwelt there.

 

이 장면은 세상의 시작점에 서있는 사람을 묘사한 겁니다.

시날의 뜻은 “두강 사이”로 영생의 하늘과 인간세상을 묘사한거지요.

해가 뜨는 동쪽으로부터 여행을 했다는 것은(as they journeyed from the east) 영원의 하늘인 에덴동산에서 물질 세상에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근본이 이러하다는 점을 비유로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러한 말을 뒷받침해줄 내용이 나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창11:3)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11:4)

 

성경에서 언급되는 돌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견고한 믿음만이 하늘에 닿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비유로서 말해놓은 거지요.

4절을 보면 성읍과 탑을 하늘 꼭대기에 닿게 하고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고 한 것은 강력한 믿음만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관념들을 하나로 만들어 영생에 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 내용역시 비유의 가르침으로 액면대로 볼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창1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창11:6)

 

쉽게 생각해봐도 이 내용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무소부재하고 편재하신 하나님이 따로내려올 필요가 없으며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한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하나님이신 성령을 가리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늘에 닿을 만한 강력한 믿음으로 무장된 사람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그래서 6절에서 한족속이고 언어도 하나이면 누구도 그 일을 막을 수 없다 말해놓은 거지요.

즉,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알고 언어가 혀에 있지 않고 영의 세계를 깨달아 느낌으로 이심전심이 이루어지게 되면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해석이 합당하다는 것은 다음내용을 보면 알게 됩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창11:7)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창11:8)

So the LORD scattered them abroad from thence 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 and they left off to build the city.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11:9)

Therefore is the name of it called Babel; because the LORD did there confound the language of all the earth: and from thence did the LORD scatter them abroad 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

 

7절을 보면 하나님이 복수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절대자 하나님을 단 한분으로 알고 있지만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여럿이라는 사실을 기록해 놓고 있지요.

이는 성령이 사람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우리의 현주소를 말해줍니다.

성령이신 하나님이 각 사람 안에 들어앉아 있지만 믿음의 길을 달리하고 경계의 벽이 생겼으므로 서로의 진면목을(내재하신 하나님)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 믿음(인식)과 고정관념 속에 있는 것을 도시건설하기를 그친 것에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8절)

여기에 언급된 도시는 사람의 육신, 즉 성전을 가리킨다고 봐야 합니다.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육신이 성전되게 만들어야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아 중도에서 주저앉아버렸다는 거지요.

그리고 9절에 언급된 바벨의 뜻은 “신의 문, 혼돈”으로 우리의 믿음을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제대로 된 믿음으로 성읍(성전)을 쌓게 되면 신의 문을 열고 영생의 하늘에 입성하게 되고 잘못 쌓게 되면 영원히 혼돈 속을 헤매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 번째 날의 보고서를 마쳤으니 넷째 날의 보고서에서 만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