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육의 것은 부패하는 왕관과 같다.

배가번드 2025. 2. 4.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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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9장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앞선 시간에 보았듯이 바울은 사도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고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 조금의 사리사욕(私利私慾)도 부리지 않았지요.

성직자의 지위를 이용하여 사람들로부터 물질적 이익이나 육신적 즐거움을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중들과 눈높이에 맞춰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삶을 살았던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일부 성직자들의 타락된 행위들은 육에 속한 이들의 것으로 사도의 자격을 갖춘 이들의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그들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도는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 바울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9:22)

To the weak became I as weak, that I might gain the weak: I am made all things to all men, that I might by all means save some.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믿음이 약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became I as weak) 그들을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각 사람의 수준에 맞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대하는 것은 어떻게든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했지요.(I might by all means save some)

즉,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올라가거나 승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내려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과 어려움을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9:23)

And this I do for the gospel's sake, that I might be partaker thereof with you.

 

복음을 위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this I do for the gospel's sake) 너희와 함께 그곳에서 분담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I might be partaker thereof with you)

성령과 하나 된 바울은 이미 세상을 벗어난 상태이지만 아직 성령과 하나 되지 못한 가련한 인생들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고 있다면 사도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오늘날의 성직자들은 명심해야만 합니다.

영생을 세상과 타협하여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Know ye not that they which run in a race run all, but one receiveth the prize? So run, that ye may obtain.

 

이 말씀을 보고 잠시 놀라워했습니다.

2천 년 전에도 육상경기가 있었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에 놀라웠지요.

이 말씀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1등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본인의 맡은바 직분이 무엇이건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이가 달리지만(run in a race run all) 상을 받는 이는 하나라는 표현을 한 겁니다.(one receiveth the prize)

요약하면 영생을 향해 걸어가기를 경기에 나선 것처럼 하라는 뜻이지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여기에 대한 부가(附加)설명이 나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And every man that striveth for the mastery is temperate in all things. Now they do it to obtain a corruptible crown; but we an incorruptible.

 

주인이 되기 위해(for the mastery) 분투하는 모든 이들은(every man that striveth) 매사에 절제한다고 합니다.(temperate in all things)

육에 속한 이들이나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이나 본인 육체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한다는 뜻으로 일반인들은 몸의 주인이 자신(육신)이라 여기고 구도자는 육신의 주인이 성령이라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육에 속하거나 영에 속하거나 사람이 무엇인가를 쟁취하려면 반드시 참고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본인이 얻고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억제하고 절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육에 속한 이들이 얻고자하는 것은 부패하는 왕관이고(a corruptible crown) 영에 속한 이들은 썩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we an incorruptible)

정리하여 보면 성령에 대해 모르는 이들은 기껏 몸의 주인이 되었으나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사망에 이를 것이며 성령이 주인 됨을 아는 이는 영원히 살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고전9:26)

I therefore so run, not as uncertainly; so fight I, not as one that beateth the air:

 

모든 이들이 경주를 하듯 삶에 임하고 있지만 바울은 불 확신한 것처럼(as uncertainly) 달리지는 않는다고 하며 싸움을 함에 있어(so fight I) 허공을 때리는 사람처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as one that beateth the air)

즉, 삶의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며 싸울 대상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영생이 인생의 목표이고 싸워서 이겨야하는 것은 외적인데 있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있음을 알고 있다는 거지요.

영육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영이 되어야함을 정확히 알고 있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But I keep under my body, and bring it into subjection: lest that by any means, when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should be a castaway.

 

나의 몸을 아래에 둔다했으니(I keep under my body) 자신(육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육신을 복종케 한다 했지요.(bring it into subjection)

이 말씀인즉, 항상 관조자의 시각을 유지하여 육신이 욕망과 욕심에 끌리지 않는지 살피며 성령의 입장에 선다는 겁니다.

일반인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연극을 하되 항상 성령의 내재하심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 같은 일은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먼저 성령의 내재하심을 인정해야만 하고 항상 성령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영적인지 세상적인 것인지를 지혜롭게 판단하고 육신을 복종시킬 만큼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알 수는 없겠지만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9장의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