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후서 1장을 보면 바울이 사도들과 함께 성령과 하나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기름부음 받았음을 정확히 밝히고 있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구절을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고후1:21)
Now he which stablisheth us with you in Christ, and hath anointed us, is God;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1:22)
Who hath also sealed us, and given the earnest of the Spirit in our hearts.
하나님께서 바울과 사도들에게 기름 부어 주셨다고 하니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바울 및 사도들의 마음에 성령을 얻게 하셨다(given the earnest of the Spirit in our hearts) 한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을 주신이유는 우리가(바울 및 사도들) 너희(성도, 형제들)와 함께(us with you)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관계를 설립하기 위해서라고(which stablisheth) 했습니다.
이 말씀인즉 성령으로서 서로 연결고리를 형성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바울과 사도들에게 빛이신 성령을 심어주어(기름을 부어=그리스도) 성령의 불씨를 전달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을 보게 되면 가톨릭에서 성인들을 추앙하는 일이 무의미 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세례명을 주는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에서 본명을 주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던 사도들을 본받아 우리역시 하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직자가 되려면 자신들이 먼저 성령에 대해 깨달아야하며 그런 후에 성령의 불씨를 전해줄 수 있는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세례명을 받아야하고 가톨릭을 믿어야한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내재함을 깨달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할 진데 누군가 빛을 보았다고 말하면 귀신들린 것처럼 여기고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로 만들어서는 곤란합니다.
이렇게 되면 빛이신 성령을 모독하는 꼴이 되어 영원히 빛이신 성령을 영접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일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12:31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2)
And whosoever speaketh a word against the Son of man, it shall be forgiven him: but whosoever speaketh against the Holy Ghost, it shall not be forgiven him, neither in this world, neither in the world to come.
우리가 누군가에게 죄를 짓게 되었을 경우 그 사람에게 용서받을 수는 있습니다.(be forgiven unto men)
그렇지만 육신에 각인된 죄는 성령을 깨닫기 전에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를 심하게 때려 상처를 주었다고 했을 때 그 사람에게 사죄하면 용서를 받을수 있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에 속한 일이며 내안에 각인된 죄는 여전히 남아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얻어맞는 일이 생기면 그 일을 떠올리며 회개하게 되는 겁니다.
또는 죽음에 이르렀을 때 지나간 과거사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고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죄들이 일시에 펼쳐지며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용서받았으나 하나님에게는 용서받지 못했다는 점을 예수께서 말해 놓은 거지요.
이 같은 일은 나 홀로목사가 사사롭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를 경험한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께서는 인자를 거역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의 말을 반대하면(speaketh against the Holy Ghost) 이생과 다음 생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 말해놓은 겁니다.
이 말씀은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완전히 반대되는 말로서 육신예수를 반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이 말해주는 것을 반대하면 영원히 성령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과도 같아서 성령을 거부하게 되면 내재하신 성령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여 나 홀로목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영적체험자를 비웃지 말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진정 자신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 같은 점을 모를 수가 없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올곧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무턱대고 자신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이 이루어졌다 큰소리칠 것이 아니라 진정 성령을 영접하여 바울과 사도들처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마치 이야기책처럼 읽을 것이 아니라 담긴 뜻을 헤아려야하며 올곧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요.
성경을 읽어본 분들이라면 예수께서 보혜사를 보낸다는 구절을 모를 리가 없으며 그가 바로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점을 압니다.(요한복음14장16절)
영원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말함으로 보혜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하나님이신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가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는 것이며 그를 깨우기 위해 예수를 비롯한 바울 및 사도들의 말씀이 전승(傳承)될 수 있게 기록으로 남긴 것이 신약성경인 겁니다.
이러함으로 오늘날 성직자들은 먼저 자신 안에 내재하신 성령을 영접하는 일을 선행(先行)해야만 하며 영적체험자들을 비웃는 행위를 멈추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나를 위한일이 아니라 본인들의 영혼을 위한일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놓았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고후1:23)
Moreover I call God for a record upon my soul, that to spare you I came not as yet unto Corinth.[KJV]
I call God as my witness that it was in order to spare you that I did not return to Corinth.[NIV]
본문을 다룰 때는 지면관계상 [KJV]성경만 올렸지만 이번에는 상고(相考)를 위해 [NIV]성경까지 올렸습니다.
[KJV]성경은 내 영혼에 각인된 하나님을 부른다 했고(I call God for a record upon my soul) [NIV]성경은 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을 부른다고(I call God as my witness) 했지요.
그리고 뒷부분은 동일하게 너희 죄를 면하기 위해 고린도로 돌아가지 않았다고(I did not return to Corinth) 기록합니다.
목숨을 건다는 말은 두 가지 성경 모두 기록하지 않고 있으며 번역자가 임의로 삽입시켜 놓은 겁니다.
하나님을 살아서는 볼 수 없다는 말을 떠올려 이렇게 기록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보다시피 바울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고정관념이 죽고 새로운 눈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지금 이 말씀은 거듭난 후의 상태, 즉 성령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in order to spare you) 성령이 함께 해야 하지만 아직은(not as yet) 때가 되지 않아서 가지 않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성령을 영접하지 못했다면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주변에 누가 성령과 함께 하고 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에 심판받지 않으려거든 심판하지 말라 기록되어 있으므로 성경말씀을 믿는다면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주일예배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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