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보면 반드시 궁금한 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만약 궁금한 점이 생기지 않는다면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오병이어의 경우를 말할 수 있는데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다고 알고 있지만 실지로는 전혀 다르며 담긴 뜻이 따로 있습니다.
이것은 나 홀로목사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므로 보도록 하지요.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마16:9)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마16:10)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마16:11)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16:12)
떡이 먹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떡이었음을 말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기독교인들은 기적에 목말라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2:39)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12:40)
예수께서 직접 십자가 사건에 담긴 뜻이 따로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자나 기복신앙에 목을 매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퍼포먼스를 하리라 예고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음에도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십자가 보혈을 믿으면 죄 사함이 이루어지고 그자체로 영생이라 말합니다.
본인들이 이렇게 믿겠다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아무리 성경을 아래위로 살펴보고 후벼 파보아도 그렇지가 않으며 성령으로 거듭나야 진정한 구원이고 영생이라는 말만 확인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이고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한편으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뺨을 후려치고 있음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벌써 이십 년 넘게 이러한 일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영생을 얻지 못한 것은 언제나 내 쪽이며 자신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는 성경의 속뜻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예수의 보혈이 우리 죄를 사해준다는 믿음만이 중요하지요.
내가 처음 수양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 전도자와의 대화중에 이런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로지 예수를 믿어야만 천국을 갈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지옥 간다고 하기에 그러면 예수를 모르고 죽었던 사람들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나를 물었던 겁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그전에도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들의 영혼은 도대체 어디 갔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뜻에서 질문을 던졌던 것인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을 해서인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거라는 말로 피해갔지요.
이렇게 말할 것 같으면 구태여 예수를 믿으라는 말도 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이 알아서 할 거라는 말만 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정에서 이러한 믿음문제로 다툼이 일어납니다.
언젠가 한번은 동향(同鄕)의 형제한분과의 대화를 통해 이런 일을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집안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 대해 모르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이 지옥 갔다 말하는 아내와 다투었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어찌나 화가 나는지 핸들을 옆으로 꺾어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리려 했다는 겁니다.
부인으로서는 교회에서 전해주는 말씀만 믿고 그렇게 판단하게 되었던 것이고 보다 이성적이던 형제님은 생활고에 시달리느라 예수에 대해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지옥 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으며 믿을 수 없었던 거지요.
이런 일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아무리 목사님이 목소리를 높인다 할지라도 말이 안 된다 싶은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겉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을 인식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믿음도 좋지만 예수십자가 보혈을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지옥 간다고 하는 것은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을 그때하게 되었지요.
이러하므로 나로서는 그 속뜻을 헤아려보지 않을 수 없으며 진실을 말하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늘이 벌써 다섯 번째 날이며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으므로 십자가 보혈의 중요성을 말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알아야 할 것은 십자가의 기적을 오병이어와 같은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육적속성을 죽이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서지 못하며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본인이 심판을 받지 않게 되는 거지요.
오늘 우리가 지나간 일을 통해 확인했듯이 본인들도 모르게 타인을 심판하고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7:1)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2)
For with what judgment ye judge, ye shall be judged: and with what measure ye mete, it shall be measured to you again.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7:4)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5)
Thou hypocrite, first cast ou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and then shalt thou see clearly to cast out the mote out of thy brother's eye.
영어성경을 보면 비판이 아니라 심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요.
본인들이 타인에 대해 함부로 심판하게 되면 자신이 심판받게 된다고 합니다.
본인들이 성경의 속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타인들을 지옥 간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아마도 믿음 때문에 가정불화를 겪었던 사람들은 내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믿던지 그것은 자유겠지만 그로인해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고 평화가 깨어진다면 그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됩니다.
이제 하루를 남기고 있는 집회말씀이 끝나고 나면 이제는 정말 긴 휴식의 시간을 가져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간을 기대하며 다섯째 날에 대한 보고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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