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한 말씀만 하소서 내 병이 나으리이다.

배가번드 2025. 8. 14.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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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척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함께 일하는 이들이 덥다고 아우성이며 올해가 최고로 더운 것 같다 말하고 있지요.

무더위로 사망한 사람이 18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 말이 무척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그런데 우연히 동영상을 통해 2018년에는 무더위로 27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올해가 특별히 더운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며 사람에 따라 더위를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년에는 청주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그때는 에어컨이 있는 빌라에 살아서인지 그렇게까지 덥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팬티가 젖을 정도로 더웠던 날이 열흘정도 지속된 것으로 기억하며 입주하자를 볼 때 에어컨을 틀수 없어서 무척 더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더워야 여름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땀을 흘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오히려 즐겼습니다.

그러한 과거가 있어서인지 지금도 그렇게까지 덥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며 남들처럼 역대최고로 덥다는 말은 하지 않게 됩니다.

아마도 주변분들 대부분이 더운 날 햇빛아래서 일을 하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이들에게 나처럼 더위를 즐기라는 말을 할 수는 없고 그저 과거에는 더 심하게 더웠던 적이 있다는 말만 하고 있지요.

얼마나 더웠으면 2주 만 쉬고 싶다는 말이 나오겠냐는 생각에 어떤 위로의 말도 하기 어려운 겁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이미 여름은 한풀 꺾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해가 짧아졌다는 말이며 더위가 물러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해가 있는 낮 시간 동안에는 덥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몰려올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다보면 추위가 찾아오게 되고 또다시 역대 최고의 한파라는 말을 하며 여름을 그리워 할 겁니다.

이렇게 여름과 겨울을 보내고 맞이하고를 반복 하다보면 인생은 어느 듯 종착점에 도달하게 되겠지요.

사실 우리네 인생살이가 일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일을 대하는 마음상태가 달라지는 것처럼 똑같은 인생살이라 해도 사람에 따라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다 같이 여름을 맞이하고 있지만 처해진 환경과 직업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처럼 같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느끼는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죽지 못해 사는가 하면 어떤 이들을 세상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지요.

똑같은 세상인데 불구하고 어떤 이에게는 지옥과 같고 어떤 이에게는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여기고 싶어 하며 돈을 벌기위해 노력합니다.

돈이 있어야 즐길 수 있고 천국에 사는 것 같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착각에 불과한 겁니다.

만약 그럴 것 같으면 재벌의 삶은 행복의 연속이 되어야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돈이 행복의 절대적 충족요건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돈이 가져다 줄 거라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이는 마치 긴 장마에 햇빛을 갈망하는 농부의 마음에 비견됩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면 당연히 농부는 해가 나오기를 바라게 되지만 막상 가뭄이 계속되면 또다시 비를 바라게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이 돈이 비와 해처럼 주어지더라도 만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농부는 비가 많이 오면 논에 물이 빠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가뭄에 대비해서 저수지를 조성합니다.

물꼬를 터주고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는 자비와 사랑을 베풂으로 인해 복덕이 쌓인다는 의미입니다.

욕심만 가득해서 돈을 모으는 데만 힘을 쏟는 것은 자신의 마음 밭을 썩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며 종내는 둑이 터져버려 한 방울의 물도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은 돈을 쌓아두라는 말이 아니라 만족하는 마음을 얻어야한다는 뜻이며 성경은 이러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마6:19)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6:20)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예수님은 자선(慈善)을 통해 보물이 하늘에 쌓일 수 있게 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타인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는 해본일이 없는 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는 겁니다.

그래서 21절에서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했지요.

여기에 언급된 마음은 영혼을 가리키며 우리가 무엇을 보물로 여기는가에 따라 영혼이 그곳을 간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원래 있던 하나님 옆으로 돌아가고 성령과 하나 되지 못한 우리의 영혼은 살아생전 가치관에 따른 영의 세계로 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을 듣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반발하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성령이 드러나 영생을 얻게 된다면 우리의 행위에 따른 심판은 받지 않아도 되므로 인과의 법칙상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하나님 뜻에 위배됩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본인 안에 내재된 성령을 본 일도 경험한일도 없는데 무엇으로 성령과 하나가 된다는 말인지요.

물론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았다는 것을 내재하신 성령이 아심으로 거기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람들을 이용하기를 즐겨하며 오늘 회개하고 내일 또 다시 죄를 짓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더라도 죄가 용서되고 성령과 하나 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죽음이후에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적고 있으므로 한번 받은 구원이 영원하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성령이 내재함을 알고 난후 육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진정으로 하나님 자녀로 살게 될 때 하늘에 보상이 따르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성령의 거듭남으로 이어져야합니다.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므로 영생을 보장받았다 여기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짓입니다.

몇 번에 걸쳐 말했지만 나는 지옥을 세 번이나 다녀온 사람이며 환상을 통해 죽음도 세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이 지옥같이 여기는 이 세상을 천국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요.

이러한 이유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일을 보게 되면 그래도 지옥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내재하신 성령을 경험했으므로 육신의 감정을 부인하며 항상 돌이킵니다.

또 내가 육신의 감정에 이끌리고 있구나 하고 성령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안에 주를 모시기 당치않으나 한 말씀만 하소서 내 병이 곧 나으리이다.

 

성경을 읽는 다른 이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아무리 뜨거운 여름날 햇빛도 지옥불 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