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63)

배가번드 2021. 11. 2.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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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부식 조에서 일을 하며 종교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불교 반을 신청하게 되었어.

기독교나 천주교는 내가 많은 세월 경험을 했지만 불교만큼은 실질적인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에 이 기회에 경험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이러한 나의 취지를 알길 없는 취사부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고 어떤 천주교 신자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

말은 천주교신자라 해놓고 종교 활동은 불교에서 한다고 하니 화가 났던 모양이었고 여호와의 증인들 역시 내가 대화를 자주하고 관심을 보였으니 자신들과의 종교적인 교류를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던 거야.

나로서는 예수님을 아직까지 사랑하고 있고 나만큼 예수님과 성모마리아를 사랑하기도 힘들다고 자부하고 있는 만큼 신자임을 떳떳이 밝힌 것이었지만 다른 분들의 생각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 같더구나.

나에게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평상시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러한 점을 반영하고 있었어.

그러한 그들의 눈치를 무시하고 묵묵히 내 할일만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는 자신들도 나에 대한 적개심을 포기하는 눈치였지.

이 같은 일들은 이 세상을 살아나오면서 너무나 많이 겪다 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도 하였고 수없이 경험을 하여 지겨울 정도였거든.

남의 집 점원으로 시작한 나의 사회생활 자체가 그런 일의 연속이었어.

내 집에 일을 하던 사람이 그만두고 똑 같은 종목으로 개업을 하게 되면 좋던 사이가 원수가 되고 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었고 나 자신이 그러한 일도 해보기도 하고 당해 보기도 했기에 이러한 인간적인 감정을 너무나 잘 알아.

내 밑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바로 옆 가게에서 똑 같은 품종으로 개업을 하게 되면 백이면 백 모두가 화를 내고 원수 대하듯 하게 되거든.

이 같은 경우 원인이 분명 나에게 있음을 직시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것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거야.

전생이 있다고 큰소리치는 도인들조차 막상 이러한 현실이 자신 앞으로 다가오게 되면 그렇게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 말이거든.

만약 스님의 경우 이 같은 물질 같은 것은 얼마든지 남을 줘 버릴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시험 받게 되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 말이지.

이 같은 일은 선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고 과거 육조혜능과 신수대사의 일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어.

만약 신수대사가 육조혜능이 의발을 전수 받는데 대해 아무런 감정의 요동이 없었다면 오조홍인이 혜능을 야반도주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지 않겠어?

이 같은 일을 보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가치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도인이라 해도 결코 쉽지 않는 거야.

그야말로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라야 이 같은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 거라 여겨져.

아들아!

남들만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단체 역시도 이런 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실토해야겠구나.

자신이 단체의 어떤 중책을 맡고 있을 때는 열심히 수행하다가 막상 그러한 직책이 없어지면 단체를 쉽게 떠나버리거나 스승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거든.

자신은 마이크를 쥐고 남들 앞에서 열심히 설법을 하면서도 다른 이가 동수들에게 법문을 하면 도저히 묵과하지 못하는 분들 또한 있어.

스승님이 지정해 주신분 만이 설법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고 자신은 스승님으로부터 자격을 부여 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참으로 내가 봤을 때는 한심할 때가 많아.

무릇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스승 아닌 것이 어디에도 없어야 하고 타 단체라 할지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하며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동수라 해도 좋은 말을 하면 들어주기도 해야지 스승님으로부터 칼을 받았다는 것을 주장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야.

여차하면 내려치겠다는 소리밖에 더 되는가 말이지.

이래서야 어디 수행자로서 기본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겠냐는 것이고 내가 더 이상 단체에 대한 미련이 없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어.

사실 내가 단체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은 교도소를 나오면서였거든.

내면의 스승께서는 내가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굴길 바라시지 않기에 그러한 곳을 가도록 하셨을 거라 여기고 있었고 이제는 육신의 스승뿐 아니라 세상모든 것을 스승으로 여기고 수행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렇다고 단체를 등진 것은 아니고 지금 역시 어느 누구보다도 단체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임을 네가 알았으면 해.

그분들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과 그러한 인식 정도와 가치관을 가졌을 때라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음을 내가 알고 있으니 내가 그러한 점이 좋지 않다면 어디까지나 그리로 부터 멀어져야 하는 사람은 나라는 것을 알기에 단체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을 뿐이라는 거지.

앞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단체에 대한 나의 애정 역시 너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뜨거웠음을 말할 수 있는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좀 더 여행을 계속해 나가보도록 하자꾸나.

불교 반에서 종교 활동을 하는 가운데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 속한 불교 반에 서로 봉사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몰린 것이었어.

몇 명의 스님이 번갈아가면서 법문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때는 한꺼번에 세 팀이 몰려와서 자기들끼리 시간조절을 하기도 하였지.

봉사를 받기도 어렵지만 봉사하기도 쉽지는 않는가 보았어.

이 같은 일이 왜 일어나게 되었나를 알기 위해서는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육바라밀을 알아야 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가운데 첫 번째인 보시 행에 있어서도 일반인들이 물질적인 도움으로 남을 돕는 행위를 금전보시라고 하고 재소자들을 상대로 펼치는 법문을 하는 행위를 법보시라고 하는데 수행자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이 법 보시 일거라 여겨져.

과거 내가 처음 입문을 하고 대만에서 오신 출가승에게 질문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보시에 관한 것이었고 그 당시 김밥을 말아 파시는 할머니께서 평생을 통해 모은 수 억 원의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으신 것과 명상을 하는 것 둘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물었을 때 그 출가승이 명상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 있었던 거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을 물질에다 두게 되면 당연히 김밥할머니가 대단한 보시를 한 것이 되겠지만 삶의 목적이 신으로의 회귀로 보게 되면 물질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명상이야말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고귀한 것이 되거든.

나 역시 그 당시는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중이었고 물질이 없으면 당장 굶어야 하는 현실을 너무나 절절하게 경험하던 끝이라 내심 명상이 중요하다고 하는 출가승을 비웃고 있었어.

그러면서 서서히 명상이라는 세계를 통해 진정한 인생의 목적이란 신으로 회귀하는데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면서 세상 모든 물질을 버리기 위해 망하게 해달라는 기도까지 했던 것이고 그 기도에 대한 결과를 혹독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고 있었던 거지.

많은 수행자들이 물질적인 것을 아주 하찮게 여기고 있지만 절대 하찮은 것이 아니야.

자신이 그와 같이 물질적인 어려움을 맛보지 않았다면 그러한 것은 모르는 것이지 알고 있기 때문에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혹 맛을 보았다 해도 그 정도에 따라 절실함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해.

언젠가 방송국 토크쇼에 나온 가수 한분이 사회자가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돈은 목숨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어.

다른 출연자들은 모두들 돈이란 있으면 좋은 것이고 돈이 인생의 목표는 될 수 없다는 등 철학적인 말을 하는 것과 달리 이분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돈은 목숨과 같다는 말을 하더구나.

이분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이분의 성장배경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어.

어린 시절 충청도의 시골에서 상경하여 구두닦이며 껌팔이 등의 고생을 무진장하다가 중국집의 배달 일을 하던 중 우연히 작곡사무실로 배달 가며 불렀던 노래를 듣게 된 작곡가 선생님의 권유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된 이분이 밤무대 가수로 이름을 떨치던 중 피치 못할 사정으로 미국을 가게 되어 그곳에서 또 한 번 죽을 고생을 하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오늘이 있게 되었다는 거였지.

이렇게 숱한 고생 끝에 이분이 경험한 것은 돈이 없으면 당장 죽어야 한다는 현실의 절박함이었지 않았을까 해.

이러한 사실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이분이 오히려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 거야.

자신이 물질적인 어려움을 당해보고 그러한 고통을 충분히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보시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던 것이었어.

그런데 이런 물질적인 보시를 수행자들은 왜 하찮게 여기는가 하면 수행자들은 물질을 세상살이를 하는데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모든 세상살이가 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기도 함과 동시에 물질의 부족함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경험하는 정도의 경중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해.

자신 몸 하나를 건사하는 것이 힘이 들어 허덕이는 것과 가족들까지 부양해야 하는 고통이나 빛 더미에 올라 당해야 하는 수없이 많은 고통과의 차이로 인한 것을 예를 들 수 있겠는데 가치관과 인식 정도의 차이라고 보면 정확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하거든.

그리고 보다 더 큰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역할론 이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경험을 통한 가치관과 인식 정도를 결정하는 만큼 어떠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거야.

바로 나 같은 경우 네게 내가 경험한 것을 말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경험을 했던 것처럼 다른 분들 역시 그 같은 일을 겪는 것에 불과해.

만약 누군가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자 원하게 되면 나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어서 정작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길의 노선이 달라진다 이 말이거든.

그때 당시 법보시를 하기 위해 몰려왔던 대부분의 스님 네들이 그만한 일을 할 정도의 경험과 가치관과 인식 정도를 가졌음은 물론이야.

여기에는 높낮음이 있을 수 없고 경중 역시 있을 수 없으며 다만 자신의 역할만이 있을 뿐이지.

사람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혹은 인정하거나 말았거나……

설법하시는 많은 스님 네들 역시 차이점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예쁘고 젊은 비구니스님이 가장 인기가 있었는데 이분은 젊은 분답게 아주 상세하고 섬세하게 불교 교리를 가르치시더구나.

이분과는 달리 구치소근처의 절에서 오신 연세가 꽤 높으신 비구스님께서는 또 다른 방식의 법문을 하시고 계셨어.

남자로서 교도소에도 와봐야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말씀으로 재소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계셨으며 많은 인생경험을 하신 분답게 결국 이 세상을 등질 때는 세상을 살았던 경험만을 가져간다는 것을 알고 계신 것 같더구나.

또 다른 한 분은 일반인이었는데 재소자들이 가장 지겨워하는 분이었어.

이분은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문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 재소자들을 상대로 한문공부를 시키려고 했으니 그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니?

한문을 국어로 쓰고 있는 이곳 중국에서조차 청나라 말 무렵 황제가 일반 백성들이 한문을 사용하기가 너무나 힘이 드는 만큼 조선의 글을 일반 백성들에게 보급하자고 하였다가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 한문인데 그러한 한문을 재소자들의 불교교리시간에 가르치려고 했으니 결과는 뻔했겠지?

이와 같은 여러 강사들을 겪으면서 보았듯이 각자가 같지 않은 모습과 방법으로 이 세상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거야.

그 역할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관계없이 각자가 옳다고 여기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하고 있는 것뿐이지.

이러한 교도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사회를 살아가는 어떠한 삶도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앞서 내가 장사를 하면서 내가 잘되면 남이 잘못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대하여 느꼈던 죄책감은 가질 필요도 없고 자신의 양심에 비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어떠한 행동을 해도 관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렇게 내 인식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 때 불교 반에서 또다시 가까운 미래에 양털이불 장사를 함께 하게 되는 K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

그분은 배식부에 속해 밥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고 종교 활동시간만 되면 만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나를 만나고 싶어 일부러 불교 반에 들어왔더구나.

그렇게 반가운 만남으로 한층 더 재미있게 불교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교도소 재소자들의 교정교화를 맡고 있는 기관에서 나를 불러내는 일이 발생하였어.

나와 한방에 속해있던 한분과 함께 불려나갔는데 조사를 받으러 가보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교정위원들과 면담을 하고 있더구나.

그 당시 8.15특사 선정을 위해서 개인면담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나는 물론 함께 간 분 역시 단 기수(짧은 형량의 죄수)여서 감형대상이 될 수 없었는데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두 사람이 함께 불려나가 조사를 받고 있었지.

나와 함께 간 그분은 나이가 나보다 한두 살 적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형량이 1년이었고 내가 10월형을 받고 있었으니 장기수가 즐비한 곳에서 특사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거든.

방안의 꽈배기들도 이러한 전례를 지금껏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 하더구나.

다른 부서에도 사람들이 많았는데 취사부에서 두 명에다가 그것도 한방에 기거하는 사람 둘이 한꺼번에 감형대상에 올랐다는 것은 이래저래 기록적인 일이었어.

나중에 출소하고 나서 알았지만 그 당시 단 기수들을 상대로 모범수 선정을 하여 감형해주는 제도를 실험적으로 실시하는 중이었는데 우리가 시범적으로 적용 대상이 된 거였지.

그렇게 특사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취사부로 돌아와 보니 교도관이 나를 부르더구나.

다른 교도관들과는 다르게 돗자리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앉아 신문을 보고 계셨는데 일견하기에도 도에 관심이 높으신 것 같았어.

나를 불러놓고 조용하게 물어 오신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수행에 관한 거였지.

나만 나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 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좁은 교도소 내에서 내가 어느덧 명물이 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머물던 방을 지키는 교도관들치고 나를 모를 수 없는 것이 새벽 조출(3시 반에 밥을 하러 가는 일) 이 나가기 전에 일어나 앉아 명상을 하기 시작하면 기상나팔이 울리는 6시반 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으니 도인 사촌쯤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그러한 소문이 교도관들 사이에 퍼져나갔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라 생각해.

그렇게 해서 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교도관이 내가 하는 수행을 물어온 것인데 이것 또한 인연이다 싶어 조심스럽게 내가 하는 수행을 말씀 드렸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을 하시고 대화를 중단하고 말았어.

알고 보니 이분이 우리단체에 와서 방편까지 받으신 모양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계속해서 수행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야.

이분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서 좋은 법문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좋은 법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법문을 만나던 어떤 일을 하던 모든 것이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분이 우리법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실망할 이유도 애석해 할 이유도 전혀 없었어.

내가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국악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신의 취향과 인연 따라 이 세상에 널려있는 수행법중 하나를 만나 자신만의 수행을 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안타까울 일은 아니었거든.

나 역시 우리단체 동수들에게 실망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단체를 떠나고 등을 돌리는 동수들을 수없이 봐왔던 만큼 더 이상 실망할 필요가 없음을 익히 알고 있었어.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수행을 해 나가는 것일 뿐인데 다른 동수의 행동으로 내가 실망할 필요도 없었고 스승님의 개인사생활까지도 내게는 더 이상 문제가 되고 있지 않았지.

이미 내면의 스승을 인식하고 분명하게 느끼고 있는데 더 이상 어디에서 스승을 찾을 것인가 말이야.

육신의 스승님께서는 나에게 네 안에 있는 스승을 찾으라고 가르쳐주셨고 그 내면의 스승이 당신과 하나라고 분명하게 일러주셨는데 더 이상 찾아야 할 무엇인가가 나에게는 없었어.

그리고 혹 있다손 치더라도 곁눈질 할 만큼 내 수행의 길이 한가롭지가 않았던 것이 단체를 떠나거나 다른 스승을 만나기 위해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되었으리라 여겨져.

스승 한분만 모셨는데 불구하고 이토록 많은 시련을 당하고 있고 공부거리가 많은데 더욱 많은 공부거리를 가져올 필요가 없었거든.

그 교도관과의 만남 이후에 또 한 번의 특별한 만남이 이어졌어.

이번에는 자신의 부인이 자기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만나서 산다는 소식에 찾아가서 얼굴에 염산을 뿌린 죄로 들어온 K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지.

별이 다섯 개나 된다고 했는데 이분의 과거가 어떠했고 가정생활이 어떠했나 하는 것은 눈매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둘러싸고 있는 용 문신만 봐도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더구나.

살인을 한 죄로 들어온 분들도 몇 분 있었지만 차라리 이분에게 비하면 착하게만 여겨졌어.

이분이 워낙 공격적이라 툭하면 다른 분들과 싸움을 벌이려고 해서 마음이 항시 조마조마했는데 취사부의 특성상 칼이 지급되고 있었으므로 여차하여 싸움이 벌어지면 칼부림 나기 딱 좋은 조건이었던 만큼 항시 불안의 연속이었지.

이분의 성격을 누그러뜨려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는데 자신조차 어쩔 수 없는 폭력성 때문에 같은 부식조의 다른 분들과 심심찮게 싸움을 벌였어.

그럴 때마다 나무라듯 타이르기도 하고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는데 자기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욱한 성질이 올라올 때는 자제가 되지 않는 것 같더구나.

그래도 나에게만큼은 순순하게 대해주고 있었고 대화를 자주 원하기에 몇 번이나 충고를 했어.

남들이 잘못한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의 행동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과 남들에게 당했다는 생각으로 복수를 했을 때 무엇이 K선생님에게 돌아오던가 라는 물음을 계속해서 던졌지.

나이 50이 다된 지금의 K선생님에게 무엇이 남아있고 자녀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자신이 바뀌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얘기에 자신 스스로 많이 뉘우치고 후회를 하는 것 같았지만 내 말을 듣는 순간 그때뿐 남들과의 부딪힘이 있을 때마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어.

이래서 천성을 바꾼다는 것은 어렵다고 하는 것 같았지.

아들아!

너는 이분과 나의 대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구나.

혹 네가 내가 이분과 기울인 노력이 쓸데없다고 여기지나 않을지 모르겠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그런 것이 아니야.

어떤 일이 성사되기까지는 반드시 과정이라는 것을 겪게 되는데 그 일이 얼마나 큰가에 따라 겪어야 하는 과정 역시 크기 마련이거든.

이분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인식 정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동안 쌓아놓은 쓰레기더미를 치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말이야.

그런데 이런 쓰레기들이 그냥 없어지겠니?

가장 좋은 방법이 본인이 수행의 길로 접어들어 열심히 닦아나가면 빠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본인 스스로 헤쳐 나가려면 몇 배의 힘이 들기 마련인 거지.

이러한 자기 변화의 과정에는 반드시 시험을 거치게 되어있고 그러한 시험을 해줄 사람들까지 필요한 법이니 주위에서 그분을 억지로 고쳐주려고 하기도 전에 신의 안배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러한 일들이 연출이 되는 것이거든.

본인이 얼마만큼 크게 바뀌려고 하는가에 따라 시험 또한 더욱 크게 다가온다는 거야.

어때?

이제 이해가 가니?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우선 내가 한말을 이분이 듣고서 자신이 바뀌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 신의 조화 속에 이분이 바뀔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것이지.

그것을 우리는 신이 주시는 시험이라 해.

가령 너희들이 선생님 말씀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그러한 공부가 네 실력으로 갖춰지기 위해서 시험을 치는 것과 같다는 거야.

그래서 그분이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남들과 많은 다툼을 겪어야 했고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일을 수없이 되풀이 했던 것이며 그것을 보는 다른 동료 수감자들도 힘이 들었던 거지.

옆에서 지켜보는 분들 역시 자신도 모르게 그분의 인성교육을 하고 있었으니 그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이거야.

정작 본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모를 테지만 이것이 바로 신의 완벽한 조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임은 물론이거든.

사람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혹은 인식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분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불이익을 당했을 때 이분과 같이 분노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었고 지나온 과거 속에 나 자신은 물론 동료 수행자들 모두가 자신이 당하는 불이익 앞에서는 여지없이 폭력성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기에 결코 이분만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었지.

이 같은 일은 얼마 전 동료수행자를 통해 너무나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

자신의 부인이 다른 분과 사랑에 빠지고 나니 처음에는 덤덤한 것처럼 행동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본성이 튀어나오는데 중간위치에 있던 내가 얼마나 곤욕을 치러야 했는지 몰라.

몇 달간을 시달려야 했는데 참으로 중간입장에서 할 짓이 아니더구나.

이렇게 수행자들조차 자신이 남으로부터 피해를 보게 되면 여지없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데 어찌 일반인들이 그러하지 않겠는가 말이야.

지금도 수없이 많은 분들이 자칭 깨달았음을 주장하거나 깨달음을 향한 여정 속에 있지만 고요함 가운데는 어느 누구나 참소리를 할 수 있고 쌓아놓은 지식이나 좋은 말씀을 구구절절이 말할 수 있겠지만 정작 자신의 불이익 앞에서는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야 해.

스스로 깨달았다고 자부하는 분들 또한 내 앞에서 큰소리를 치다가 똑 같은 입장에 서고 나서는 여지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했기에 제발 함부로 장담하여 업장을 초래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야.

이분처럼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해도 속으로 얼마나 많은 분노의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지 자신은 너무나 잘 알거라 여겨져.

누가 자신에게 깨달았다는 증표를 주기 이전에 자신 스스로가 얼마만큼 깨달았는지 본인이 잘 알거야.

옛날 큰스님들이 만행을 다녔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까닭이지 않을까 싶어.

절간에서 조용하게 지내서는 자신 안에 어떠한 감정이 숨어있는지 알 턱이 없고 만행을 통해 어느 한곳 걸림이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자신을 확인하고자 행한 일인 것 같아.

본인이 깨달았다는 증표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어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 것이지 남들의 인정이 무슨 대수란 말이더냐?

아들아!

네가 만약 시험점수가 많이 나오는 것을 바란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실력이 향상하길 바라야지 결코 남의 것을 커닝하여 점수를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너도 알지 않니?

그것처럼 자신이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만족을 얻고자 하여야지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득해서 무슨 소용 있는가 말이야.

명상을 수십 년 한 것을 자랑하고 하루20시간을 한다고 자랑해봐야 아무 쓸데없고 진정 깨달았다면 해야 할일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진정 그분은 깨달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여겨져.

나 역시 그때 그러한 일을 겪으면서 내가 사회로 돌아가서 어떠한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고 나에게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수행자로서 이겨 나가야 하리라 여기게 된 거였어.

이 같은 내 마음의 인식변화에 따른 또 다른 변화의 무대가 마련되고 있었는데 내가 드디어 8.15특사로 나가게 된 거야.

10개월의 만기를 40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는데 우리 방의 모든 식구들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하더구나.

앞서 나와 함께 조사를 받았던 한방 동료와 내가 함께 특사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더욱 이 같은 일을 기적같이 여기게 만들었어.

세탁부에 종사하고 계시던 L선생님이 미리 이 같은 사실을 알고서 내게 전달을 해왔는데 워낙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고 있었던 관계로 8.14일 오후가 되어서야 명단이 올라왔더라고 하더구나.

나보다 더욱 형량이 많으신 분들이 즐비한데 불구하고 내가 먼저 나가게 되어서 송구하다는 말과 남은 형기 동안 다들 건강하게 계시다 가시라는 작별인사를 하고 교도소와의 인연을 끝맺어야 했지.

정확하게 8개월 10일간의 시간이 그 속에 묻어 있었고 그 세월만큼이나 추억이 많았었는데 어떤 이별의 순간도 마찬가지겠지만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고 있었어.

아들아!

이렇게 해서 내가 교도소에서 살았던 흔적을 기록한 나의 일기장을 뒤로 남겨둔 채 옷과 영치금을 찾아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으니 천국 같은 교도소를 벗어나 지옥 같은 세상으로 돌아온 일로서 또다시 만나기로 기약하며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가도록 하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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