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잦아들면서 서서히 행사장을 뒤덮고 있던 부정성들이 가라앉기 시작하였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조용하게 사그라졌는데 그때서야 스승님께서는 대중들에게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셨지.
며칠이 지났는지 모를 어느 시점에 뵐 수 있었는데 6년 만에 모습을 뵙고 보니 감개무량하더구나.
나와는 띠 동갑이신 스승님께서는 이제 세월을 느끼시는 듯 목에 주름이 많이 늘어나있었어.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오히려 더욱 기가 넘쳐나고 있었는데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홀을 가득 메운 제자들의 시선을 한 몸으로 끌어당기고 있었지.
그날 법문을 많이 하시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는데 공산권인 베트남이나 중국의 동수들보다 더 절실하고 절박한 수행자들을 스승님께서 만나셨어.
공산권보다 더욱 통제된 사회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
이지구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참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그날 우리들은 확인할 수 있었어.
이슬람국가들 알지?
바로 그러한 무슬림들이 입문을 하여서 선행사에 참가했던 거야.
스승님께서는 이들에게 무척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는데 충분히 그럴 만 했다고 여겨져.
우리들은 잘 모르지만 무슬림들은 여자들이 얼굴을 밖으로 내다 보여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형제들에게 목 졸려서 죽음을 당해야 하거든.
이러한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입문을 했는지라 우리네들과는 사정이 달라도 한참 달랐던 거지.
진짜 이들은 목숨을 내걸고 스승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어.
스승님께서는 누구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시는지라 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셨던 거야.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면서 얼마나 다독거리시는지 모든 동수들이 감동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어.
이들에게 비하면 우리들은 정말 편안하게 수행을 해나가는 사람이었거든.
이분들을 보면서 또 한 번 하나님의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을 생각해야만 했지.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들 안에 들어앉아 있는 하나님이라는 작자의 말도 되지 않는 짓거리에 다시 한 번 더 환멸을 느껴야 했던 거야.
왜 그와 같은 고통의 순간들을 마련해서 그러한 느낌을 가져야만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아무리 그러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말 같지도 않은 순간들을 맞이하면서까지 경험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순간 번개같이 스쳐지나가는 말이 있었지.
"쉿! 조심해라.
그 같은 경험이 네게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마라.
그들의 일은 그들 안에 내재한 신이 하시는 일이니까 말이야.
만약 네가 그들이 걱정된다면 그들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겠니?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렴."
이것은 내게 말해주는 말인 동시에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일수도 있어.
아무리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해도 그것은 그들의 영혼이 그러한 연극을 하기로 선택한 만큼 그들의 문제일수밖에 없거든.
만약 누군가 내말에 그것이 어떻게 남의 일인가 우리들의 일이지 라고 한다면 그는 그와 같은 일을 자신의 일로서 받아들이는 사람이며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야.
그렇지 않고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해줄 수밖에 없어.
우리들의 경우는 그저 명상을 해주는 도리밖에 없는 거지.
아들아!
조금은 비정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만 그것이 이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거든.
이 같은 일을 인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개념들이 있어.
바로 카스트 제도인데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면 반상(班常)의 개념으로 보면 정확할거라 여겨져.
인도에서는 이 같은 양반 상놈의 제도 대신에 네 가지의 계급으로 나누는데 브라만(사제),크샤트리아(통치자, 무사), 바이샤(평민),수드라 (천민, 노예), 가 있거든.이들은 각자가 처해 있는 현실의 자기직분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어.
인도의 거지가 그토록 당당한 이유가 그 같은 자신의 현실조차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카스트제도의 영향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이들은 각자가 처해있는 신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신께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거지 신분이라 할지라도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해.
갠지스 강가에 거적 데기를 펴고 앉은 산냐시(수행자)나 거지가 다를 바가 전혀 없거든.
다르다고 한다면 거지는 그저 거지일 뿐이고 수행자는 자신이 뭘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차이일 뿐이지.
요가에서는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지금 현실을 하나님이 주신 천직이라 여기기를 말하고 있어.
그렇게 자신의 직분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할 때 신께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거야.
그렇지만 우리들은 한 가지 알아야할 사실이 있어.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그야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이 될 테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야.
카스트 제도가 운명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그러한 자신의 위치가 신이 주신 나의 역할로 보는 것이 옳은 일이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것이 신께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 시대가 필요로 했던 구시대의 산물이라 말해야 할 것 같구나.
진리라는 것은 고정불변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맞기 위해서라도 내말은 사실이 되어야해.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지금껏 알고 있던 모든 진리들은 그 순간에 필요했던 그 시대의 진리였다는 거지.
물론 이것은 아직까지 깨달음을 얻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진리이며 그곳에 고정되어진 진리임에 틀림이 없어.
하지만 이제 우리들의 목표점이 달라졌다면 그 같은 진리조차 벗어나야 하지 않겠니?
무슨 말이 그렇습니까?
진리라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지 어떻게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진리가 있나 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물어보자꾸나.
예수님이 탄생하시기전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을 진리라고 믿고 살아나왔어.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로 신약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거든.
게다가 루터는 기존의 교리에 반발을 해서 종교혁명을 일으키기도 했지 않니?
그러한 변천사에 따라 종교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거야.
이것만 보더라도 고정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있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고 지금 이순간도 구약은 그 자리에서 진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해.
과거가 신약과 구약이 동시에 받아들여지던 시대라고 한다면 이제는 또다시 변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거지.
이제 황금시대에 접어든 지도 벌써 몇 해가 흘렀으니 거기에 걸맞은 인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어?
언젠가 나는 영화를 보며 심하게 놀랐던 적이 있었어.
미국에서 만든 영화였는데 교회의 성가대가 경쾌한 리듬에 맞춰서 찬송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된 거야.
그것뿐이 아니라 그들은 춤까지 추고 있었는데 디스코 음악에 맞춰서 찬송을 하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던 거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어.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며 우리들이 창조력을 갖춘 신의식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증거이거든.
이것을 아무리 부인하려해도 과거를 돌아보면 절대 부인할 수가 없게 돼.
너도 생각을 해보렴.
과거에 우리 지구촌의 역사에 어떠한 일들이 있어 왔는가 말이야.
내가 지금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목청껏 주장한다 하여도 과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진화되어 나온 종교관에 입각한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거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새삼 여러 가지 일들을 말하지는 않겠어.
앞서 충분하게 설명을 했거든.
그렇지?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진리가 지금에는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야.
우리들이 깨달음으로 가고자 하는 진리의 길이 비록 과거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아직까지도 유용하게 적용되는 진리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
다만 이제는 또 다른 진리가 우리들 앞에 놓여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거야.
이해가 가니?
다시 말해서 우리들은 이제 변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 말이거든.
앞선 시간에서도 말을 했듯이 우리들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삶의 목적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
우리들이 신이 아닐 수 없는 이유와 창조력을 갖춘 신으로서의 일들을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
오늘 우리들의 대화에 등장한 이란 여성들은 그야말로 황금시대를 주도해 나가는 영적인 전사들이거든.
그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알라신을 찬양하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알라신을 섬기는 것을 변함없이 하는 가운데 좀 더 진보된 알라신을 섬기는 방법을 삶속에 실천하고자 하는 분들이다 이 말이야.
그래서 스승님께서는 그들을 그토록 칭찬을 하셨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거지.
이러한 일이 우리들 단체에도 일어나고 있어.
단체내부에는 스님을 비롯하여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들이 가끔 입문을 하시고 수행을 하고 있거든.
바로 이러한 분들이 개혁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선구자들인 셈이 아니겠어?
과거 예수님시대의 니고데모 같으신 분들이지.
아들아!
내가 왜 이러한 말을 하는지 알겠니?
지금껏 내가 우리들의 모든 일들은 똑같이 소중하고 고귀한 일들이라 말을 했지만 오늘은 그러한 일이 근본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인식에 차이가 있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거야.
바꾸어 말하면 우리들에게 등급이란 존재하지도 않지만 등급이라는 것은 있다는 말을 하는 거지.
이제는 이러한 내말에 대해 설명 하지 않아도 되지?
이 세상에는 이원성이 공존하고 있는 만큼 우리들의 대화 속에 그와 같은 이원성의 극과 극을 한꺼번에 등장시킨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지 않겠어?
이것을 내가 인식의 차이라고 설명을 했을 거야.
어느 정도의 인식수준에서의 삶을 경험하고자 하는가에 대해서도 말을 했고…….
바로 이러한 일들에 대한 표현을 달리하면 등급이라고 하는 거지.이제 세상의 연극이 끝이 났으니 신에게로 돌아 가자라는 인식과 신으로서 이 세상을 온 것이 그저 내가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이 세상을 위해 일을 하고자 왔다는 인식을 하는 것에 차이를 등급의 차이가 있다고 해.
이란 여성들이 그들 사회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몸짓으로 지구의 황금시대를 주도하고 있기에 스승께서 그들을 극찬하셨던 거야.
그렇다고 지금 아랍권에 살고 있는 분들이 잘 못산다거나 그릇된 믿음에 있다는 말이 아니거든.
그들은 그들대로의 진리의 세계에 몸담고 있으며 자신들이 해야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거지.
인도의 거지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거야.
하지만 지금 언급을 하는 이란 여성들은 황금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이시대가 필요한 보다 진보된 진리를 받아들이는 선구자들인 거지.
아들아!
우리들이 왜 황금시대라고 표현하는지 궁금하지 않니?
내가 우리들의 단체에서는 너무나도 자주 쓰고 있는 말이라 조금도 생소하지 않다만 세상 사람들도 이러한 황금시대라는 말을 쓰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혹시 모를 수도 있으니 여기에 대한 설명을 해보도록 해.
우리들의 지구는 2천년을 주기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어.
예수님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줄곧 이어져오는 이일이 오늘날 예수님이 탄생한 이후로 2천년이 지났고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거든.
예정된 대로라면 2천년을 맞이하기 직전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러한 일을 겪지 않고 지나온 거야.
어쩌면 잠시 미루어졌을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그러한 주기에 따른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을 황금시대라고 표현하는 거지.
바로 우리의 지구가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도래해 있으며 거기에 따른 우리들의 보다 진보된 의식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어.
이제 이해가 되었지?
이래서 우리들은 과거에 신으로 회귀하기 위한 진리에서 이제는 지구를 황금시대로 돌입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하기위한 인식이 필요한 거야.
만약 이 같은 일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경우 우리들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이 될까 궁금하지 않니?
궁금하니까 어서 말을 해달라고?
그렇다면 너는 내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네가 믿고 있는 종교의 경전들을 펼쳐보기 바래.
거기에 보면 천국에 대한 묘사들이 있지?
그것들이 모두 우리들의 황금시대에 일어날 일인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까요? 라는 물음은 하지 말기 바라.
언제 우리들이 2천 년 전에 이러한 세상이 오리라 꿈을 꾸었겠니?
언제 우리들이 2천 년 전에 지금의 종교들이 이러한 형태가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냐 말이야.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손에 미래가 달려 있으며 그러한 창조력을 발휘하는 힘은 내재한 신이 우리의 육신을 도구로 삼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어?
앞으로 우리들이 그러한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거든.
이러하다면 우리들은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할까?
아직까지도 넘지 못하는 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두어야할까?
아직까지도 통합이 되지 않는 분파간의 갈등이나 종교 간의 반목을 그대로 두어야 하겠는가 말이야.
그리고 전쟁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짓을 지속시킬 것인가 말이지.
우리들이 그러한 크나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해서는 곤란해.
그러한 큰일이 가능하게끔 하는 이들은 작은 우리들 개인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거든.
성경에는 천국을 묘사하길 육식동물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결코 서로 해치지 않는다고 해.
그러한 천국을 왜 우리들은 지금 이곳 지구에는 만들지 못한다고 말하는 거지?
어떻게 눈앞에 내가 만들 수도 있는 현실은 외면한 체 만나보지도 못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천국을 가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가 말이야.
이 말은 그들이 믿고 있는 믿음의 세계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지금 당장 그 같은 세상을 이 땅에 만들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거야.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은 앞서 많은 얘기를 해주었으니 더 이상의 반복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
그래도 한 번 더 강조해 달라고?
그렇다면 할 수 없이 말해 주어야겠구나.
우리들이 가고자 하는 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금 이곳에서 하면 돼.
다시 말해서 천국에서는 동물들과 사람들이 어울려서 평화롭게 지낸다고 했으니 우리들이 그러한 일을 실천하면 되지 않겠니?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으니 지금 우리들이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천국에서는 수명이 이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길다고 하였는데 그 같은 일이 이곳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거든.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성경에는 노아가 9백 살을 넘게 살았다고 하지 않았니?
게다가 그 당시의 다른 이들도 대부분 그 정도 살았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들이 그렇게 못사는 것은 환경이 심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이거든.
이러하다면 해결책은 간단하게 마련할 수 있어.
환경오염을 줄이면 되는 것이 아니겠어?
언어의 통합을 가져오는 것도 우리들이 천국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일 일수 있으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도 천국을 만들기 위한 일임은 물론이야.
이처럼 우리들은 저 멀리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천국을 가는 것을 원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천국 만들기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거지.
어떠니?
이제 자신의 지금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시대를 개혁시키고자 하는 노력도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겠지?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어떠한 곳에 가치를 두느냐에 대한 문제인거야.
여기에는 우리들이 지구의 운명만이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와의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아는 인식이 필요해.
속 깊은 내용을 지금 말하지는 않겠지만 지구의 운명은 우주에 펼쳐져 있는 다른 행성들과도 연관이 있어.
우리들이 지금 하고자 하는 지구의 천국화(天國化) 작업은 우주의 다른 행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거지.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들의 지구가 잘못되면 내가 가고자 하는 천국조차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해.
그것이 어째서 그런가 하는 것은 네가 네 우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네스스로가 알 수 있어.
진정 네가 이러한 뜻을 알고자 하면 해답은 네 안에 내재한 하나님이 주실 거야.
네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내가 미리 말해주었지?
그러한 설명은 앞서 너와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곳곳에 산재해 있으니 다시 한 번 살펴보기 바라.
아들아!
오늘도 우리들의 대화는 수행을 권유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고 있구나.
하지만 그러한 것들도 네가 내말을 사실로 받아들일 경우인 만큼 모든 것은 네게 달렸어.
항상 말하고 있듯이 어떠한 경우도 네가 선택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네가 선택하는 그 순간에 따르는 결과가 네 앞에 놓이고 있다는 것만을 말하며 여기에서 쉬어가자꾸나.
잠시간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