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깨달음은 성령의 드러남.

배가번드 2022. 7. 1.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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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치매를 앓기 전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워낙 교회에서 구원을 강조하는지라 못마땅한 내가 어머니를 떠보기 위해 말을 건넸던 겁니다.

지구멸망의 시간이 다가왔고 곧 휴거가 일어날 듯이 말을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사이비교라 할만 했기 때문이지요.

왜 자꾸 지구멸망을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느냐는 내말에 어머니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애비가 그렇게 오해하면 안 되지. 사람들에게 그렇게 겁을 주지 않으면 누가 구원을 받으려하겠냐 말이야. 목사님으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거야.”

 

똑똑한 여동생은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는데 어머니의 이 말 한마디는 나를 감동받게 만들었습니다.

목사님 자신조차 모르는 말을 어머니가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머니 내면의 영혼이 이미 깨어나 있었다는 말이지요.

목사님은 성령의 입이 되어 말씀을 전해주는 대변인이었고 어머니의 영혼은 그 말씀을 받아먹고 자라는 또 다른 성령인 셈입니다.

비록 내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고생 중이긴 하지만 내면의 영혼만큼은 결코 병들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깨달음에 대해 오해를 합니다.

성령을 깨닫게 되면 완전해 지는 걸로 착각을 하지요.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육신이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드러나는 겁니다.

이 같은 일은 내 어머니의 현재 상황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몸에는 성령과 하나 되는 과정에 있는 영혼과 어머니가 살아오면서 함께 했던 의식체(육신)가 합체가 되어있지요.

그래서 나와 대화를 나눌 때 보통의 경우 병이든 의식체가 나오고 때때로 어머니의 영혼이 나오는 겁니다.

얼마 전 동생이 면회를 갔을 때 구원에 대해 묻자 어머니의 영혼이 드러나 자신의 구원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 죄를 다 없애 주시고 하늘나라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셨지요.

이때만큼은 치매 걸린 어머니가 아니라 교회에서 주는 구원의 말씀을 믿고 성령과 하나 되어 가는 영혼입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어린애로 돌아가 자신을 퇴원시키라고 동생에게 애원했었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고 구원의 실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이나 영생, 해탈, 깨달음 이런 말들은 모두가 동일한 것이며 영혼, 즉 성령이 드러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령은 몸에 담겨있지만 육신과는 별개의 존재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점을 헷갈려 하지만 구약속의 다윗은 우리에게 이러한 일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을 통해 다윗은 자신을 벌레에 비유했지요.

육신의 보잘 것 없음을 말한 동시에 성령이 낮은 데로 임한다는 것을 말해놓은 것으로 하나의 수행비법을 말해놓은 겁니다.

육과영이 완전히 따로 라는 말입니다.다윗은 알다시피 멜기세덱의 등급에 오른 인물이며 멜기세덱의 뜻은 “의(義)의 왕(王)”이지요.

이런 사람이 자신을 벌레에 비유했을 때는 깊은 뜻이 있다고 봐야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말해줄 수 없지만 수행의 비밀이 담겨있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점만 말씀드립니다.

사실 우리가 알아야할 일은 이런 비밀보다는 보다 실제적인 일입니다.

비근한 예를 불교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유마거사가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한말은 불가에서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유마거사의 진아(眞我)인 부처(불성)는 아프지 않지만 육신(중생)이 병들었다는 말로서 육과영이 별개라는 뜻입니다.

한 몸 안에 들어있기에 하나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분리된 존재라는 겁니다.

만약 이 뜻이 아니고 완전히 하나(깨어나기 전)라면 그저 내 몸이 아픈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영육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주인이 영혼이라는 뜻이지요.

다시 말해 자신이 내재한 진아(眞我)를 발견하였으므로 영육은 더 이상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부처가 내려오거나 누군가 심어주어야 깨달음을 얻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들어앉은 부처를 일깨워서 하나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두고 분별의 옷을 벗고 나면 다시 분별의 옷을 입어야한다는 표현을 합니다.

육신에 머물기 위해서는 업장덩어리인 육신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깨닫고 나도 밖에서는 전혀 표가 나지 않습니다.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다만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어떤 지경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다른 이들은 모르고 있는 차이일 뿐 모든 사람은 동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하는 것이며 사물에 담긴 실체를 볼 수 있는 지혜안이 열린 거지요.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는 말이 이래서 생겨난 겁니다.

그러면 다시 치매 걸린 어머니께로 돌아가 왜 어머니는 그렇게나 병마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머니께서 영생을 얻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만약 내 어머니가 그저 낮은 천국으로 가실 것 같았으면 벌써 데려 갔을 겁니다.

그렇지만 영생이 어머니의 목적지임으로 그토록 고생을 하고 계신거지요.

죄의식을 씻기 위한 과정이 필요한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육신)의 자식에 대한 집착이 영혼이 떠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젊어서부터 자식 셋을 키우느라 모진고생을 감내하신 끝에 집착이 생긴 것이며 그러한 습관적인 집착이 마지막 생명을 붙들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네 인간의 보편적인 마지막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어머니의 영혼은 구원을 받았기에 다행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죽음에 이릅니다.

이렇게 될 경우 자신의 몸 안에 잠들어있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평소 자신의 몸이라 알고 있는 의식체(혼백)는 공중에 흩어지며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이것은 성경을 통해 확인한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살아있는 동안 성령(불성)이 드러난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는 것이며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것도 중요하다 말하는 겁니다.

자신이 영적체험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렀을 때 성령이 드러난 이가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혹자는 특별한 종교단체에만 성령이 역사한다거나 특별한 사람에게 가야 깨달음을 얻는다 말하지만 틀린 말입니다.

어떤 곳에서도 구원은 이루어지며 자신이 제대로 공부하면 성령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좋은 인연을 가졌다면 당연히 따라가게 될 것이며 나쁜 인연을 심었다면 피해 달아날 것이 분명합니다.

시간관계상 “사자의 서”에 대한 설명은 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에는 사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해놓았지요.

기회가 닿는다면 읽어보기기 바랍니다.

이렇게 영적스승을 만나거나 종교를 갖고 영적인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며 서로 사랑하며 아껴주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부디 서로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을 무엇을 얻겠다고 그리도 자신을 학대하고 남을 비판해가며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제도할 중생이 어디에 있다고 중생의 아픔을 들으려 하시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내 눈에는 부처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