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199)

배가번드 2022. 7. 11.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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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는 꿈을 꾼 적이 있니?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꿈을 꾸지 않는 사람도 있는가요?

 

물론 꿈이야 모두 꾸겠지.

개도 꿈을 꾸는데 사람이야 당연하겠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냐.

꿈이란 현실세계와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네게 물어본 거야.

언젠가 나는 T. V를 보다가 잠이 든 적이 있었어.

그런데 신기한 일은 T. V내용이 내가 꾸는 내용과 접목이 되더라는 거지.

드라마에서 격투가 벌어지게 되면 꿈을 꾸는 나 역시 꿈속에서 싸움판을 벌이는 거야.

몸은 잠이 들었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의 영향으로 그러한 꿈을 꾸게 된 거였어.

이 같은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들이 평상시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방향을 달리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지식과 정보는 물론이고 종교나 사상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았거든.

한사람의 인생자체를 완전하게 바꾸어 놓을 수도 있으며 우주전체를 바꿀 수도 있어.

그래서 오늘 나는 내가 겪었던 몇 가지 일로서 이 같은 일이 얼마나 사실일 수 있는가를 보려고 해.

물론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내개인의 일로서 사람들마다 같을 수는 없으니 괜히 내말에 딴죽을 걸지는 말아주었으면 하고 그저 참고사항으로만 여겨주었으면 고마울 것 같아.

한동안 나는 외계사이트를 열심히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몇 가지 특기할 말한 사실을 발견했어.

처음 그곳을 접속했을 때는 새로운 개념에 도취가 되어 신나는 매일을 보낼 수 있었는데 평상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아주 흡족하게 만들어주더구나.

그곳은 외계인들과의 체럴링을 하는 곳이었는데 체럴러를 통해 나타나는 인식 체들은 예수님은 물론 창조의 근원까지 아주 다양했었어

9세계 위원회라는 말도 그곳에서 알게 되었는데 참으로 신선한 발견이었던 거지.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창조의식의 모임이 있다는 말이었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던 거야.

게다가 그들 메신저들은 접속하는 나로 하여금 하나의 임무, 내지는 사명감까지 생기도록 만들어 주었는데 보통의 사람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알아볼 수 없지만 사명을 받은 이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거라고 했거든.

마음속 깊은 곳의 우월의식을 살짝 만족시켜 주었던 거지.

내가 이렇게 기분 좋은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었다는 암시를 그들이 해주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에서 전해져오는 메시지가 멸망에 다다른 지구를 구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개개인들을 깨달음에 도달하게 만들어주는 아주 영적인 것을 알았어.

개인들을 깨달음에 이르도록 만들어서 지구를 구하자는 메시지로 볼 수 있기도 했던 거지.

그런데 이 같은 나와는 별도로 해석을 하는 분들도 상당수 있었는데 그들은 채럴러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한 것 같더구나.

휴거와 같은 일들이 곧바로 일어난다고 여긴 모양으로 십 수 년째 기다리다 지쳐서 사이트를 폐쇄시켜야 한다고 욕들을 퍼붓고 있었어.

결국 그들은 우주에서 오는 메시지가 채럴러가 책을 팔기위해서 쇼를 부린 거라 결론을 내리고 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거야.

어떻게 그렇게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하지?

 

물론 궁금하고말고요.

안 그래도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왜 그들은 오지도 않는 변화가 지금 곧 닥칠 것처럼 말을 했을까요?

마치 세상의 멸망을 말하는 많은 이들처럼 그들도 새로운 창조의 지구가 코앞에 와 있는 것처럼 말했거든요.

 

아들아!

내가 지금까지 누누이 말했듯이 그들이 멸망을 말하게 된 것은 물질적인 시각을 가지고 메시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어.

영적인 해석을 하지 못했다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명상을 하라고 말해주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가 보구나.

명상을 통해서 자신 안에 태풍의 눈과도 같은 안전지대를 만들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핵심이었던 거야.

아무리 주위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해도 전혀 흔들림 없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라는 말인데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내재한 신을 만나라는 말이라고도 볼 수 있고 깨달음을 얻으라는 말로도 볼 수 있어.

어느 것으로도 말 할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외부에서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견된다는 거지.

이것이 바로 깨달은 스승들이 우리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인거야.

과거 예수님께서 먼저 하나님 왕국을 찾으라. 그러면 모든 것이 더해지리라 하신 말씀이 바로 이러한 말인데 예수를 신격화 내지는 우상화 시켜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별짓들을 다하고 있어.

말을 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나는 건데 말이야.

이들처럼 제대로 하나님 왕국을 찾지도 못한 이들이 목소리들은 더 높거든.

오히려 제대로 핵심을 찾아내는 사람들을 나무라기까지 하면서 자신들의 신심이 높음을 자랑하고자 하는 거지.

 

잠깐!

한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예전에 책에서 본 내용에 따르면 인도의 바바지와 제자의 이야기가 있어요.

바바지가 제자를 받아들일 때 절벽에서 뛰어내리라 해서 용감하게 뛰어내려 죽은 자를 되살려서 제자로 거두어들였다고 했지요.

이 같은 일을 보게 되면 수행의 핵심은 스승의 축복이 아닐는지요.

모든 것은 스승의 축복이 있어야하며 죽어서도 스승의 축복이 함께 할 때 높은 세계를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자신스스로가 찾을 수 있고 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해볼까?

바바지가 제자를 받아들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 수행을 열심히 해서 깨달음을 얻거나 했겠지요.

 

그래.

바로 그거야.

제자가 되고나서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에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신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는 그와 같은 축복은 내면의 스승이 하는 거지.

물론 이것은 내면의 스승이나 외형의 스승이 둘이 아니라 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육신 스승이 아닌 육신 안에 거하고 계신 하나님이 되어야 맞는 것이 아니겠어?

왜 내가 이러한 말을 하는가 하면 말이야.

우리 인간들의 육신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거든.

사람의 몸이란 외부의 영향에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어서 언제 변질이 될지 몰라.

그러기에 믿음이 대상의 외형에 머물게 되면 집단 자살을 불사하는 미련한 짓을 하게 되는 거지.

네가 실감을 하지 않는 것 같으니 한 가지 예를 들어줄까?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 기억나지?

이 책이 처음 몇 권은 엄청난 감동을 주었지만 베스트셀러가 되고난 후 책 내용이 점차 영적인 것과는 멀어지기 시작했어.

한마디로 돈을 벌기시작하자 영적인 책이 물질적인 에너지로 채워지기 시작한 거야.

처음 몇 권은 감동적이든 것이 나중에는 그저 밋밋한 내용밖에 볼 수가 없었는데 세상시류에 합류를 해 버린 거라 여겨지더구나.

이것이 바로 물질이 영을 끌어내리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는데 환상에 사로잡히기 좋아 하는 사람들은 그 책 내용에 반해서 신나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열심히 연구들을 하고 있어.

이들이 신나이 신봉자가 되는 것은 나무라지 않겠지만 신나이의 핵심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해.

세상의 곳곳에서는 소위 말하는 종교집단의 자살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자신들 교주의 말을 맹신하였기 때문이고 교주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데서 비롯된 일인거야.

스승 내면의 신성이나 불성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고 외형의 인간모습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인 거지.

아들아!

지혜로운 이들은 내말이 뜻하는바가 뭐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지만 미련한 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내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물론 나를 비방하기까지 하거든.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온갖 상념의 화살을 보내는 거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 글을 읽고 동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내일기장에 들어오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

그들이 보내는 부정적인 에너지 때문에 글을 올리기가 싫은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너무나도 방해가 되거든.

나는 그들에게 와달라고 부탁도 하지 않았고 금전을 요구한 적도 없고 무엇인가를 팔아달라고도 하지 않았으며 나를 선전해달라고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나에게 와서 내가 올린 글을 보고 그런 부정적인 기운을 나에게 보내는가 말이야.

자신이 숭배자로서 머물고 싶으면 자신만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 나에게까지 동참을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는 법인데 간혹 나에게 그러한 권유의 말을 들어야 할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와.

늘 말을 하듯이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란 없어.

절대적인 진리는 어디까지나 자신들 개인의 마음에만 달려있는데 그것도 모르는 이들이 나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할 때면 세상을 벗어나 산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야.

내가 호주로 떠났던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는데 교회에 가서도 우리단체에 가서도 똑같이 전해지는 그들의 에너지가 나를 숨 막히게 만들거든.

하지만 그 가운데 내가 보게 된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어.

나또한 그들처럼의 에너지를 남들에게 보낸 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보다 더욱 심하게 맹신을 한 적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

세상사 일이란 시작이 있으면 과정이 있고 과정이 있고난 후에는 결과가 있게 마련인데 그들이 과정을 겪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결과물을 보는 이에게까지 과정에 머물라고 한다면 욕을 하는 것과 진배없는 거야.

아들아!

지금껏 내가 했던 말들을 뒤돌아보면 그곳에는 내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겨져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생각해보렴.

사람들은 내 글을 보면서 여기서는 이 말을 저기서는 저 말을 한다고 여기겠지만 사실을 살펴보면 그런 게 아니야.

순간순간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점들이 달랐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고 지금 받아들이고 있는 정보라는 것이 사실은 그다지 절대적인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거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그 같은 글을 삭제시켜 버리겠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러한 일을 통해 이러한 내말을 확인하라는 의도였어.

전생이나 업장이라는 말도 있다고도 말했다가 없다고도 했던 일이 바로 그러한 연유였는데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 것이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계적인 육신을 가졌는가 하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함이야.

순간순간 받아들이는 정보의 영향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관이나 생각, 사상들이 노선을 달리할 수 있음이 아니겠어?

교회에서 우리인간들의 죄악을 회개해야한다 말하는 것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니거든.

그만큼 인간의 몸은 완전치 못하다는 거지.

이 같은 말을 확인하기 위해 남을 살필 필요도 없고 네 몸뚱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렴.

시시각각으로 바뀌어가는 생각과 순간순간 일어나는 욕망의 몸짓들을 발견할거야.

너는 절대적으로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영적인 일만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심각한 선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해.

그 또한 심각한 욕심이거든.

네가 신만을 생각한다고 여기며 택한 길을 가는 동안 또 다른 신들은 가슴아파해야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거야.

물론 이 같은 내말은 내 가족들을 신으로 인정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자신내면의 신성을 무시하고 외형으로 향하게 되면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만들어야 하는 거지.

그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회개의 의식은 필요하다고 볼 수 있어.

 

아니!

지금까지 교회에서 말하는 회개를 인정치 않던 분이 오늘은 어떻게 달라지셨는지요?

뭔가 이상하네요.

 

그래?

너는 그렇게 보는구나.

하지만 아들아!

가만히 내말을 들여다보렴.

나는 항상 외형에 보이는 표면적인 일에 대해서 말을 했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해석을 해 나온 것이 보일거야.

내가 회개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미 회개가 마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거든.

외형이 아니라 내면에 초점이 맞춰져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지.

언젠가 성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거야.

기억나지?

거기에 보면 말이야.

성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몸을 엄청나게 학대를 하는 장면들이 나와.

순간순간 자신의 생각이 에고에 머문다 싶을 경우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발로 밟으라고도 하고 몸 위로 올라서라고도 해.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겠니?

성인이신 프란치스코께서도 그러했는데 우리들 범인들이야 오죽하겠니?

 

잠깐만요.

그것은 아마도 프란치스코께서 구원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면 관음법문을 몰랐던 지요.

 

~

참으로 대단하구나.

어쩌면 그렇게도 대단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한데 구원이나 관음법문의 핵심이 뭐라는 것을 네가 알기나 하느냐?

 

그야 구원이란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믿음으로서 우리가영혼의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관음법문이란 내면의 빛과 소리를 들음으로서 우리들의 영혼의 등급을 높여 나가는 것이 아닌지요?

 

네가 그렇게 여기고 있다면 그야 네 자유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는 약간 달라.

만약 구원의 역사가 그러한 것이라고만 여기게 되면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모든 이들은 갈 곳을 잃어버리거나 모두가 지옥을 가야할것이고 관음법문의 빛과 소리를 보고 듣지 못하면 모두가 등급이 낮다는 말이 되어버리거든.

이래서야 모든 것이 관음법문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은 소용이 없게 되는 거야.

 

그러기에 우리들은 관음법문을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하지 않습니까?

무지한 중생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웃기고 있구나.

누가 무지한 중생이라는 말이냐?

지금 말을 하는 네 의식이 무지한 중생일 뿐 이세상은 부처만이 가득하고 신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아들아!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이야.

그곳에는 우리 인간들의 인생들이 들어있거든.

수행자의 삶 전체에서 일어나는 수행의 길을 묘사해 놓은 것인데 종착지점에는 사랑이 자리매김하고 있어.

관음법문 역시 마찬가지인데 법문의 핵심은 바로 사랑인거지.

그런데 사랑은 어디로 보내버리고 개떼들과 새떼들만이 춤을 추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거야.

스승은 개와 새를 통해 제자들 안에 있는 사랑의 힘을 일깨우라는 말을 하는 건데 그것을 무시하고 개와 새를 신주단지처럼 모신다면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일이겠어?

그리고 스승은 제자들에게 동물들은 명상이 필요 없다고 말을 했거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았니?

 

안 그래도 그 점이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스승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정말 인간들보다 동물이 등급이 더 높은가요?

 

이미 답을 모두 다해 놓았으니 이제는 네가 답을 선택하기바래.

내가 벌써 말을 해놓았고 오늘도 말을 해주었어.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는 이순간도 우리들은 육신의 한계점을 보고 있는데 네가 네 육신을 너라고 여기고 있는 이상은 너는 절대로 신을 알 수가 없거니와 미망의 세상을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회개가 필요한 것이고…….

성프란치스코가 그토록 애타게 자신의 몸을 학대했던 이유가 육신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

그분은 늑대를 달래고 물고기에게 법문을 하신 분으로 유명한데 그와 같은 기적을 행하신분도 자신의 육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거지.

나 역시 지금 말을 하고는 있지만 너와의 대화 속에서 내면의 신이 작용할 때가 있을 뿐 육신의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몸뚱이에 불과하거든.

그런데 이러한 내 몸뚱이가 무엇인가를 하고 보여 줄 거라 여긴다면 참으로 착각을 심하게 하는 분들이라 생각할 수 있어.

물론 그러한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많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데 관심이 있지는 않아.

그런 만큼 내가 속해있는 단체의 스승을 숭배하고 따르는 일도 육신의 스승이 아니라 스승 내면의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 거야.

 

그래요.

당신은 지금껏 그렇게 해 나오신 것 같아요.

하지만 스승의 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품성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육신의 스승이 말하는 데로 움직이고 따를 수밖에요.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렇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어.

네가 감당을 할 수 있고 후회가 되지 않을 만큼의 선택을 네가 하기바래.

그리고 네가 선택을 하고 따른다고 해서 남들이 너와 같지 않음에 화를 내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는 말아.

그들은 그들이 할 일이 따로 있거든.

아마도 그들은 육신스승의 내면의 하나님과 직접교통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내가 왜 이렇게 말을 하는가 하면 말이야.

교회의 목사님과 대화를 해보고 나서인데 그들은 나에게 자꾸만 회개하고 영혼의 구원을 받으라고 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것이 이미 내영혼의 내재함을 알았고 내 인생을 그분이 주관한다는 확인을 했는데 무엇을 더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모르기 때문이었어.

회개도 이미 내면으로 이루어 졌다고 말을 해주었는데도 도무지 믿지를 않는 거야.

그저 그들에게 죄를 고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한다 말을 하는 통에 미치고 폴짝 뛸 정도인데 이 같은 일이 우리단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거든.

인식이 자신과 같지 않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그쳐야지 타인을 비난한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니?

결국 그 같은 비난의 에너지는 그 사람을 단체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야.

바바지가 제자와 나눈 대화에서 우리들이 얻어야 하는 교훈은 분명 여러 가지일 수 있어.

각자가 받아들이는 인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데 육신에 초점이 맞춰지면 바바지가 우리들을 축복한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고 영적인데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 우리들의 몸 안에 있는 내면의 스승이 우리를 축복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는 거야.

 

당신 말은 맞는다고 여기긴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책에서는 바바지가 축복을 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바바지라는 스승이 제자를 축복하고 그를 높은 세계에 이르도록 만들어준다고 했거든요.

 

네가 그렇게 여긴다면 물어보자꾸나.

바바지가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신이라고 생각하니?

 

그야 사람이 아닐는지요.

분명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이라고 했고 현존한다고 말했으니 신이 아니라 만져지는 인간의 모습이라 생각이 됩니다.

 

후후후후.

네가 그렇게 여긴다 말이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좀 더 깊이 있게 책을 보기바래.

이번에는 그저 글자만 읽지 말고 뜻을 헤아려가면서 읽어보렴.

바바지는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해 놓았을 거야.

청년의 모습으로 노인의 모습으로 혹은 부랑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지혜가 열렸을 때 세상 어느 곳에서도 스승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해 놓은 거지.

아이큐가 좋은 것은 남들과 비교하라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거든.

지혜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곳곳에서 발견하라는데 쓰라고 하나님이 주신거야.

아들아!

오늘 나는 우리들이 진보를 하기위해서 넘어야 하는 여러 가지 인식 중에 한 가지를 말했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이 정도에서 마칠까해.

물론 이 같은 정보를 네가 받아들이면 너에게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고 지금의 인식에서 머물고자 한다면 내말을 무시하면 되는 거야.

참고로 한 가지 더 말해주자면 스승이 써놓은 무자시를 가만히 들여다보기 바라.

그 내용은 스승이 자신의 깨달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써 놓은 게 아니거든.

우리들의 영혼을 말해 놓은 거야.

숭배를 하더라도 이 같은 일을 알고서 숭배를 해야 우상숭배가 아니게 되고 네 영혼이 기뻐하는 일이 되는 거지.

!

오늘도 시간이 많이 흘렀고 신은 이제부터 우리에게 소화를 시킬 시간을 주실 거라 생각해.

다음시간을 기대하며 여기에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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