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언젠가 여성한분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를 빗대어 큐피드화살을 마구 날리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
아마도 그녀는 내 행동에서 그러한 면들을 보았던 것 같은데 그 당시는 이렇다 할 변명거리를 찾지 못하였지만 하고픈 말은 있었거든.
큐피드화살을 누군가 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가슴아파할 외사랑은 없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큐피드화살을 가슴으로 안아 들일 때 우리들은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을 하는 거야.
너도 생각을 해보렴.
이 세상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큐피드화살을 날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니?
하지만 그러한 큐피드화살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기에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
그러니 어찌 화살을 날리기만 하겠냐는 거야.
누군가 날린 화살을 가슴으로 안아 들일 때 두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고 안아 들이지 않으면 그저 이별이 필요 없는 짝사랑의 아픔을 가슴으로 갈무리해야 하는 거지.
그 사저의 말대로 내가 아무에게나 큐피드화살을 마구 날린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겠어?
말이 나온 김에 잠시 큐피드에 대해 알아볼까?
원래 큐피드라는 인물은 에로스라고 하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을 말하는데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야.
흔히들 정신적인 사랑을 말할 때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하고 육체적인 사랑을 에로스적인 사랑이라고 하지 않니?
에로스가 바로 큐피드를 말하는 거였어.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을 큐피드의 화살에 맞은 거라고 말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러한 연유인데 전체적인 사랑을 대표하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자식인 에로스는 이성간의 사랑을 말하는 거야.
이 같은 일들을 보면 로마신화는 인간세상의 창조와 여러 가지 감정들의 생성과정을 신들을 통해 재미있게 묘사해놓았음을 알게 되는데 원래 아가페라는 말의 어원은 아가파오라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서 사랑하다는 말이거든.
그리스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아가페, 필레아, 에로스, 스톨게, 파토스가 있다고 해.
필레아는 벗들과의 애정을 뜻하고 스톨게는 혈육 간의 사랑을 나타내며 파토스는 신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어.
아가페라는 말의 뜻을 신을 사모하는 마음, 즉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마도 그들은 기독교도들이거나 예수를 추종하는 이들인 것 같아.
그들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되며 아가페가 영원 속에 있는 신을 사랑하는 인간들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면 파토스는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구분 짓더라도 내 생각에는 정신적인 사랑과 육신적인 사랑을 구분 짓는데 사용하는 것이 보다 보편적일 것 같아.
그 외에도 사랑을 구분 짓는 용어들이 있는데 플라토닉러브라는 단어도 있어.
플라토닉이란 말이 생겨난 것은 플라톤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상당히 신빙성이 있더구나.
그리스어 사랑하다(Philos)라는 말과, 지혜(智慧)를 뜻하는 소피아(Sophia)라는 말이 합쳐서 생겨난 것이 철학(Philosophy)인데 플라토닉이란 철학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거야.
이 말의 어원이 어떤 것에 있던지 그 말의 뜻은 형이상학적인 사랑을 말한다고 볼 수 있기에 우리들은 좀 더 이상적이고 정신적인 사랑을 말할 때 쓰는 것이 옳은 것 같아.
어떤 이들은 플라톤이 자신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성애를 즐겨했음으로 플라토닉이라는 단어가 동성애를 뜻한다 말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일일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겨났던지 현시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쓰이는 의미가 가장 정확하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
물론 동성애의 진정한 의미가 사랑에는 국경도 성별도 없다는데 있다고 한다면 이 또한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의미에 쓰이더라도 영적인데 의미부여를 한다면 틀리다고 볼 수는 없을 거야.
사실상 말이라는 것은 구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서 근원으로 올라갈수록 범위는 좁아지게 되어있어.
이상적이고 정신적인 사랑과 육신적인 사랑이 결코 둘이 될 수 없음에도 구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두 가지로 나누어 질수밖에 없는데 이 같은 내말을 증명하는 말이 있거든.
너는 혹시 이데아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 모르겠구나.
이데아의 사전적 의미는 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보인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철학(지혜를 추구하고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지혜가 열릴 때 보이는 사물의 실체를 말하는 거야.
한마디로 형이상학적인 세상을 본다는 의미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열리는 영안을 통해 볼 수 있는 세상을 말하는 거지.
잠시 만요.
눈으로 보이는 사랑이란 분명 물질세상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행위로서 에로스적인 사랑이 분명할 것이고 영적인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적인 사랑은 분명 두 가지가 아닌지요?
그렇지 않다.
그 둘은 분명 하나임에 분명한데 너희가 분리시키지 않는 한 결코 떨어질 수가 없음이다.
어째서 입니까?
너희가 육신에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살아갈 때 너희가 하는 사랑은 에로스적인 사랑이 될 테지만 영에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살아간다면 너희가 하는 그 어떤 사랑도 아가페적인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너희가 아무리 에로스적인 사랑에 도취되어 있다하더라도 이미 창조주의 성령이 담겨져 있는지라 분리되려야 분리될 수 없음이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가 구분 짓지 않는 한 그 둘은 언제나 하나이다.
그 말씀은 영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요?
무지한 사람들은 언제나 둘일 수밖에 없으며 육신의 욕망에 이끌리어 육신너머의 세계를 알 수가 없을 테니까요.
물론 그러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화 속에 들어와 있는 너희 모두는 언제나 하나일수밖에 없다.
내말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만 빼고…….
말씀을 듣다보니 언젠가 본 영화한편이 생각나는군요.
유럽영화였는데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영화에 나오는 창녀의 행동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받고 매춘행위를 하는 창녀가 돈이 많은 사람과의 동침은 거부를 하면서 휠체어를 타고 찾아온 불구자에게는 정성을 다해 잠자리 시중을 드는 것을 보면서 매춘행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무엇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승화된 것이며 비록 육신적인 행위이며 쾌락을 추구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헌신적이고 박애적인 사랑행위일수 있음이다.
하지만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과연 창녀는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알 수 있을까 하는 것과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할까 하는 겁니다.
그녀가 자신의 행위를 아름답게 인식을 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며 너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또한 그녀가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고 못 느끼고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그러나 궁금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미모에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가씨가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그러한 일을 하게 되었는지 왜 그러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지, 또 죽게 되면 어떻게 될는지요?
네가 궁금해 하는 그녀의 인생이 왜 그 모양인가 하는 것은 너의 판단이 그 모양이기에 그렇게 비춰지는 것으로서 그녀는 아무런 문제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하는 것은 그녀의 인식에 달린 문제로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를 잡고서 물어보십시오.
창녀라는 직업이 좋다고 할 사람들이 있는지요?
그래?
그렇다면 물어보자꾸나.
너희 중에 단한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이 나와서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라고 한 예수의 말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야 그 당시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려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꾸짖기 위해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는 너희모두를 꾸짖기 위해 말하노니 지금 말한 창녀의 행위보다 더욱 사심 없고 헌신적이며 박애적인 사랑을 가진 자가 나와서 그녀에게 침을 뱉으라.
.......
지난시간에도 잠시 언급이 있었듯이 무조건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랑이란 헌신적인 사랑이며 용서라는 말은 너희자신을 위해 필요한 말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는 좋아하면서도 남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하면 심판하기를 즐겨하는데 바로 이와 같은 인간들의 마음을 경계하기위하여 예수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라 할지라도 마음으로부터 죄짓지 않는 이들은 없으며 물질적인 부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많은 죄악을 짓고 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지금껏 말씀하시길 인간들이 죄라고 인식하기에 죄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죄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그러한데 너는 과연 내말을 올곧게 받아들이고 있느냐?
너희의 진정한 모습이 뭐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말이다.
만약 너희가 빛으로 된 너희의 내재한 성령을 인식하였다고 한다면 너희가 어떠한 행위를 한다 해도 그것은 그저 다가온 현실에 충실할 뿐으로 죄의식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그 말씀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시각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인간들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지라 죄의식을 갖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러하겠지만 인식의 세계는 아주 다양하므로 그중에서 가장 높다고 여겨지고 영적인 인식을 선택함으로서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너무나 막연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미 네가 예를 들어주었지 않느냐?
네가 본 영화 속 창녀의 행위에서 성인의 품성을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의 인식인데 세상에 펼쳐진 많은 일들에서 영적인 면들을 보는 것은 각자의 인식들이다.
너희가 어떠한 경우에도 영적일수 있다면 이 세상 어떠한 것에도 성령이 담겨져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는 이들이 없고 매순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순간이 없음을 알게 됨으로 죄의식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남들을 향한 심판의 잣대를 내려놓게 된다.
이것이 바로 너희스승이 긍정에 머물라고 말한 이유이다.
만약 네가 본 영화가 창녀의 행위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그려내지 못하고 그녀의 또 다른 측면들인 비참함을 조명했더라면 아마도 창녀에 대한 너희의 평가는 전혀 영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똑같은 장면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옳으신 말씀 같습니다.
제가 중국에 머물고 있을 때 본 사극들은 역대 황제들의 삶을 보여주었는데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얼마나 황제가 대단하고 존경받을만한 인물이었나 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또 다른 측면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한사람의 황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해야 하는가를 보게 되었지요.
수천 명에 달하는 남자아이들이 내시가 되기 위해 거세당해야하고 전국각지에서 강제로 붙들려 와서 궁녀가 되어야하는 수많은 처녀들의 한숨을 생각했습니다.
한사람의 군주가 내리는 명령한마디에 전쟁이 벌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만 했던 것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요.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행동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강요받고 있으며 누군가의 재물을 긁어모으려는 욕심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하기에 너희들은 언제나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야하는 것이며 네 눈에 보이는 모든 부정적인 면들조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를 위해 희생해야만 하는 무지한 백성들은 어떻게 하구요?
어떻게 너는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느냐?
만약 너처럼 생각한다고 했을 경우 이 세상에 황제역할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누군가 맡아야할 역할을 특정한 누군가 하는 것을 두고 부정적인 측면만을 말한다면 그 누구도 그러한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너희 스승의 경우에도 그가 하는 일에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게 되면 단한사람도 그를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러하다.
그러기에 너희들은 더 이상 군주제가 아닌 다른 형태의 권력놀음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며 지금의 지배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현실화 될 때까지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말씀도 정도에 따라 판단을 달리해야한다 생각합니다.
멀쩡하게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너희들이 말하는 바람이란 배우자가 있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 같은데 왜 그 같은 행위가 무조건 욕을 얻어먹어야하고 심판받아야만 하는 일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무지막지한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요?
성경에 정해놓은 율법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물론 알고 있다.
지난시간에도 말했듯이 율법이란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를 위해 말해놓은 것으로서 그것을 지키는 것은 기본적인 삶의 형태라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필연적이 될 수는 없으며 그 같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지옥 간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너희들도 잘 알지 않느냐?
인간세상에서 발생하는 기가 막힌 일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지…….
상황에 따라서는 율법적용을 올곧게 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며 이 세상 법률도 온정이란 것이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상황에 따른 온정을 베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가 있느냐?
그리고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면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면 되지 않느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누군가가 가정을 가졌다고 한다면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 말이 맞긴 하지만 배우자에게 의무와 책임을 말하기 전에 자신은 그렇게 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왜 폭력을 행사해가면서 붙잡아놓아야만 하느냐?
진정 너희들이 율법에 정한 일들을 상대방이 지키기를 강요하려 한다면 자신이 먼저 율법대로 행할 수 있어야만 하고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해도 떠나려한다면 구태여 붙잡아둘 필요가 없다.
만약 그럴 경우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진정 아이들이 걱정된다고 한다면 좀 더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서로가 노력해야 마땅한 일인데 이미 서로 간에 신뢰가 깨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가족 간에 화합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냐?
가정을 지키며 아이들에게 싸움하는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아이들의 문제는 서로 합의를 통해 충분히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으며 부모가 헤어진다고 해서 아이의 장래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성격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희들이 함께 지내면서 화목하지 못하면 그것이 아이의 성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그 말씀은 참으로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간혹 보면 청정한 생활을 해야 하는 종교인들이나 수행인들이 오히려 성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하고 무책임한 짓들을 많이 하는데 왜 그런지요?
수행인들이 성적으로 개방적인 이유가 다양하게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높은 인식의 차원에서 보자면 성적인 것의 최 상층부는 영적이기에 분별이 있을 수 없으며 도덕과 책임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난잡한 성행위를 하는 것이 영적이고 수행력이 높다는 건가요?
네가 그렇게 들었느냐?
진정 내가 말한 것이 그러하다고 여긴다면 너에게는 그것이 진실이 되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식이 맑아지게 되면 당연히 영적인 에너지가 발하게 된다.
그러한 영적 에너지가 서로를 당기게 만드는데 많은 사람들이 육신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가 유전인자에 각인된 습관 때문으로 영적인 사랑조차 육적으로 받아들인 탓이다.
물론 이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지만 아직 육신적인 습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자신의 행위를 떳떳치 못한 것으로 여기며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노니 너희들의 사랑을 육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영적으로 받아들여라.
그래요.
참으로 오랜 시간을 그러한 육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저 자신을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이성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후부터 끊임없이 일어나는 에로스적인 욕구가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환희로움으로 다가왔지요.
그 모든 것들이 육감적인 것으로서 마지막은 공허함과 후회스러움 들이었어요.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명상수행을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내면에서 별견한 신의 사랑이 세상을 달라보이게 만들어주었고 내가 하는 모든 사랑이 영적일 수 있게 만들었지요.
비록 내가한 사랑이 비뚤어진 사랑이었거나 육감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진정한 사랑이었으며 나와 함께한 친구들에 대한 우정도 혈육을 나눈 부모형제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신의 품안에서 사랑일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을 나누다 때로는 싸우고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고 했을지라도 그 모두는 사랑의 표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모두가 위대한 하나님의 다 같은 자녀로서 역할을 나누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었어요.
비록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좋아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더욱 좋게 여겨지게 만들어주고 있으며 나보다도 좋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내 삶이 좋아 보일수도 있다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양방향으로 설정된 세상살이가 펼쳐져있음이니 언제든지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는 권리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좌측이던 우측이던 그 모든 것은 원을 이루고 있었지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물질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말들은 쉽게 하면서도 물질적인 판단의 잣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 모든 인식이 육적인면에 맞춰졌기 때문이며 영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을 아는 순간 내 사랑은 육신너머로 훌쩍 뛰어올랐습니다.
플라토닉러브를 함으로서 이별의 슬픈 사랑도 가슴 아픈 외 사랑도 동시다발적인 사랑조차도 가능하게 되었지요.
지혜를 사랑함으로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하신 나의 하나님!
나와 육신적으로 사랑을 했거나 정신적으로 사랑을 했거나 혹은 미워하고 다투었다 할지라도 그 모두는 사랑이라는 것을 모든 이들이 알게 허락하소서!
나를 느끼고 나를 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고하노니 너희의 원하는 것이 그 무엇이든지 이루어지리라!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