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239)

배가번드 2022. 8. 24.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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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늘은 모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할까?

요즘 내가 하는 일이 먼지가 많이 발생되는 공사장일이다보니 가끔씩 호주에서 지내던 일이 생각나곤 해.

푸른 잔디가 지천에 늘려있는 농장에서 일하던 때가 그리운 것은 비록 힘든 농사일이었지만 맑은 공기를 마셔가며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입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욱 좋았던 것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로움 때문이었어.

그리고 일에 몰두하며 사색을 즐기는 것도 좋았고…….

언젠가 딸기밭에서 일을 하던 중에 상념의 바다에 빠진 적이 있었어.

딸기모종사이에 나와 있는 잡초제거를 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일더구나.

잡초 또한 생명이긴 매한가진데 왜 내 마음대로 그들을 제거해야 할까하고 말이야.

잡초라고 하지만 그중에는 복숭아 떡잎도 있을 수 있고 사과나무의 새싹일수도 있을 텐데 생각했지.

그러자 곧바로 대답이 주어졌어.

내 목적이 딸기를 보호하고 키우는데 있으니 당연히 다른 것들은 잡초인 것이고 뿌리 뽑혀져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한가지 생각으로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더구나.

이세상의 수많은 종교들이 바로 과일밭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게 되었는데 딸기밭에서는 다른 과일새싹이 잡초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들이 타인들의 종교를 헐뜯고 공격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야.

이것이 바로 목적에 따라 선악의 경계가 나누어진다고 하는 거지.

지옥과 천국이라는 개념도 바로여기에서 비롯되거든.

딸기밭에 날아든 복숭아떡잎이 잡초로 치부되더라도 복숭아밭에서는 딸기가 잡초로 취급받기에 언제나 선악의 경계는 자리바꿈을 하게 되는 것이며 근본에 있어서는 선악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과일은 딸기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존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과일들은 과일취급도 못 받겠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과일들이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만든 이는 창조의 힘(하나님)이야.

어떠니?

이제 천국과 지옥이란 우리 삶의 목적에 따라 바뀌게 된다는 내말이 이해가 되지?

이래서 누군가 자신의 종교가 진실 되며 최고의 종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어느 특정한 과일밭에 소속된 사람일뿐 진정한 의미에서 신을 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야.

더군다나 남의 종교를 비판하며 지옥을 간다고 말을 한다면 특정한 과일 맛에 미쳐서 다른 과일 맛을 모르는 사람일수밖에 없어.

진정 과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비록 자신의 목적이 딸기를 키우는지라 다른 새싹을 제거해야하더라도 마음속으로 미안하게 여길 뿐 욕을 하거나 지옥을 갈 거라는 저주의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내가 지난 십 수 년을 몸담고 있던 명상단체를 벗어나고 싶은 가장 큰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어찌 사람들이 몰라도 그렇게나 모르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

스승은 이미 과일밭이 많은 것은 물론이며 그 모든 것이 하나라고 말을 해주었는데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들의 스승을 특정한 과일밭주인으로 한정짓고 있어.

언젠가 한번은 누군가 나에게 충고를 하였는데 내가 교회 다니는 일을 정신과의사에 비교하며 말을 하더구나.

자신의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의사다운 충고를 하였는데 정신병자들을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자신도 정신병자가 된다는 말을 하였어.

아마도 내가 교회를 매주 나가게 되면 그들과 동일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가 보았지.

사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벌써 그러한 생각을 감지하고 있었으며 그분 말고도 나를 아는 많은 동수들이 걱정스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척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새삼 일깨워 주었던 거야.

내 입장을 말해줄까 하다가 자신의 수준만큼 나를 바라보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싶어 참아버렸어.

그랬더니 얼마 후에는 아주 이상한 말을 하더구나.

스승이 되는 사람은 자신스스로가 깨달아야 스승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지 누구의 제자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승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을 하며 나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거야.

그분의 눈에는 내가 단체를 이탈하여서 스승노릇을 하고 싶어 한다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는데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어.

내가 교회를 나가거나 절간에 몸을 담거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았는데 왜 그 모양으로 공격의 화살을 날리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

몇 번이나 내가 말을 해주었지만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가 보았는데 제자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내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으며 제발 오지 말아달라는데도 기어코 내일기장을 들여다보며 욕을 퍼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화가 나려고 했어.

내가 내 몸으로 딸기밭도 갈 수 있고 복숭아밭도 갈 수 있으며 살구 밭도 갈 수 있지 않겠어?

심지어 내가 꽃밭에서 몸을 뒹군들 자기가 무슨 상관이지?

이것을 보고 웃기는 짬뽕이라고 하지 아마…….

솔직히 말하자면 그분이 지적하는 그 모든 상황들이 내안에 있는 것이 맞는다고 볼 수 있거든.

그렇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어.

내안에는 그가 지적한 상황보다 훨씬 뛰어넘는 의식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나 자신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의식이 나를 움직이기에 나는 허수아비에 불과해.

다시 말해서 그가 감지해낸 내인식이란 육신에 한정짓는 동시에 그분의 수준이 나를 통해 반영 된 거야.

문제의 심각성은 단체를 벗어나려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충고를 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분이야말로 정신과 의사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

자신은 스승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다고 자부하는지 몰라도 내가 보았을 때는 참으로 불신자라 할 수밖에 없었거든.

앞서 나에게 지적한일들이 실은 자신의 스승을 지탄한다는 사실조차도 간파하지 못하고 자신스승얼굴에 침을 뱉고 있었지.

만약 그분말씀대로라면 내 육신스승이 산트 다카르 싱이라는 스승 밑에 관음사자로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동수들이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들은 가짜스승 밑에서 공부를 했다는 말이 되지 않겠어?

게다가 산트 다카르 싱께서 법을 펼쳐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불구하고 한 단체의 스승이 된 우리의 스승은 어떤 사람이지?

이것은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일수가 있어.

스승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이러하다면 그분은 지금의 스승을 자신의 인식 속에다 한정짓고 있음을 알아야해.

게다가 자신의 수행관이 이러하다면 자신만 못 깨닫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느 누구도 못 깨닫게 만들어.

나는 말이야.

지금까지 수행을 해나오면서 스승에 대한 숱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었거든.

그 말들이 믿기지 않아서 내가 단체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스승의 말씀 중에 핵심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여러분과 나는 하나입니다

 

별다른 뜻이 없어 보이는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들의 내면의 품성, 즉 신성이 하나라는 말이며 다 같은 하나님의 동등한 자녀라는 말이기 때문이야.

자신 내면의 신성(불성)을 일깨워내면 우리 모두가 신의 천백억 화신 체라는 말인 거지.

그러기에 스승의 외형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

그가 어떠한 비리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그것이 외형의 일일뿐 내면과는 무관하다는 거야.

게다가 외형적인 일조차도 내가 이해하려고 마음먹으면 이해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 구태여 스승의 비리를 들추어내어서 뭐하겠는가 싶었던 거지.

비록 도둑놈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면 도둑과는 전혀 별개로 믿는 사람의 인식 안에서 진정한 스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겠어?

이런 연유로 나는 내 인식 안에서 스승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며 육신의 스승조차 내안에 존재하는 내재한 신성과 하나 됨의 자리에 올렸던 거야.

그런데 내가 지금 교회를 나간다고 해서 정신병자 운운하면서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우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만약 그분의 말처럼 20년 가까이 스승을 따라 수행을 했는데 아직 인과조차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면 자신의 수행 관을 점검 해봐야하며 하나님처럼 여기는 스승의 가르침이 뭔가 다시 한 번 조목조목 따져봐야 하지 않겠냐 말이야.

그리고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가 말하는 대로 내가 교회를 나가는 것이 정신병자들과 상담을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는데 있거든.

자신은 멀쩡한데 내가 다니는 교회 사람들은 모두 정신병자들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래서야 어찌 제대로 도를 닦았다고 볼 수 있으며 진정한 관음법문수행자라고 하겠어.

지금껏 내가 교회 사람들을 비판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는데 최고의 법문을 20년 동안이나 했다는 사람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그러한 법문을 해서 뭐하려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말이 나온 김에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좀할까?

가끔씩 내가 다니는 교회목사님은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 타인들의 체험을 웃음거리고 만들곤 하거든.

아마도 성경강연이 끝난 후 상담시간 때 많은 이들이 신을 체험한일들을 말한 모양으로 그들의 말을 인용해서 사람들에게 말해주더구나.

예를 들어 누군가는 옆구리로 화끈한 기운이 들어왔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황금십자가상이 자신 쪽으로 넘어진다고 하더라는 등등의 말들을 하면서 그들의 그러한 체험들이 부질없는 일이며 모두 귀신의 장난쯤으로 치부를 하였지.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예를 들면서 하나님의 참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셨는데 그 말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어.

언젠가 한번은 목사님 한분과 상담을 하다가 하나님은 빛과 영이시며 나는 그러한 하나님을 봤노라 말씀드렸더니 목사님말씀이 성경말씀을 알고난후 그러한 체험을 해야 진짜지 성경말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러한 경험을 해봐야 아무소용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둘러 상담을 마쳐버렸지.

좀 더 얘기를 하다보면 화가날것 같았거든.

아무리 성경책을 달달 외운다 해도 빛과 영을 경험하지 못할 일을 성경 몇 구절을 외웠다고 자신이 진정한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내가 본 것은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는 말이었으니 참으로 기각 막힐 노릇이었어.

최고의 명문대를 나온 데다 수만 명을 거느리고 있는 교회의 존경받는 목사님 자리에 있는지라 당연지사로 그러한 말씀을 하셨겠지만 자신의 그 말로 인해 스스로가 영적체험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딱할 노릇이더구나.

아들아!

내가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절대 나를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다오.

주변을 둘러보면 빛이고 영이신 하나님을 보았다는 분들이 무척이나 많거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수행자들이나 목사님들이 왜 못 볼까?

그것은 말이야.

자신들 스스로가 규정을 짓고 있기 때문으로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어.

앞서 말한 수행자처럼 진정한 스승이란 이런 사람 이어야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으면 그러한 규정에 적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스승으로 인정하지 못할 것이 아니겠어?

이래서야 어찌 온 세상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며 삼라만상에 깃든 신의품성을 알 수가 있겠냐는 거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성경책에 나와 있는 말씀이라고 여기는 목사님께서는 타인들이 체험하는 모든 일들을 절대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거든.

자신이 그러한 체험은 귀신의 장난으로 여기게 되는지라 경험할 수가 없게 되는 거지.

생각을 해보렴.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모습을 그들에게 줄 것이 분명하지 않니?

누군가 하나님은 수염이 길게 자란 산신령이라고 여긴다면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실 것이고 형상이 없이 빛으로만 나타난다고 여기면 빛으로 나타내 보이실 것이며 음성으로만 들린다고 여긴다면 말씀만 듣게 될 거라는 거야.

앞서 너와의 대화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나타내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 스스로가 규정을 짓고 한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느냐고?

그야 다른 이들이 만났다는 하나님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을 내가 본 것이 되는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묻기도 해.

 

그렇다면 누군가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고 그 사실을 내가 믿는다고 한다면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야합니까?”

 

이 같은 물음을 묻는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 함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거든.

삼라만상이 그가 짓지 않은 것이 없으며 온 인류를 그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면 나또한 하나님의 자녀임에 분명할 터인데 왜 타인들의 명령에 내가 복종을 해야 하지?

물론 내가 듣고 싶으면 듣는 것이고 듣기 싫으면 듣지 않으면 되는 거야.

예를 들어 누군가 깨달은 분이 있다고 쳐.

그럴 때 그분의 말과 행동이 정말 하나님을 본 사람이며 하나님의 품성이 드러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분말씀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하지만 오랜 시간 지나보니 하는 짓이라고는 신을 아는 사람 같지 않고 자신의 명성과 부를 쌓는 데만 열을 올린다면 당연히 고개를 돌려야하지 않겠냐는 거야.

어디까지나 선택의 권한은 나 자신에게 있어.

절대 누군가 하나님을 보았고 자신이 깨달았다고 해서 함부로 누군가에게 명령을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자신을 따르라고 할 수는 없거든.

주위 많은 분들이 나를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점인데 내가 내재하는 신을 보았고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내말을 들어달라거나 내가 스승이 되었으니 나를 따르라고 말한 적이 없음에도 내가 올리는 글을 보고 자신들의 잣대로 나를 함부로 평가를 해.

앞서 말을 했다시피 내가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체험들을 하였는데 귀신을 본적도 있고 신이라고 생각할만한 존재가 나타난 적도 있고 나 자신과 내면으로 대화를 나누는 그 무엇인가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

하지만 그조차도 하나의 생각일 뿐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참모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있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야.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타인들과는 전혀 무관하다고도 할 수 있고 우리들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들이 내말을 인정하고 나와 공통된 인식을 가지길 원한다면 우리들은 하나가 되는 거지.

사실 이 같은 일은 말로는 쉬운 것 같은데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워.

어쩌면 창피한일일수도 있는 나의 과거사를 밝혔던 것은 어디까지나 한 인간이 육적이고 물질적인데 몰입을 하게 되면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또 영적으로 고양된 삶을 살게 되면 어떠한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지 내안에 하나님이 살고 있으니 너희들은 나를 따라야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지금까지 보았듯이 내가 내재한 신을 만나고 느끼고 있다고 해서 내가 살아온 삶이 좋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으며 남들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

다만 내가 남들과 달랐다면 현실의 모든 고통이나 괴로움을 영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신의 축복으로 느꼈다는 것뿐이었어.

지나온 우리들의 대화를 더듬어보면 이미 신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은 밝혀져 있고 각자의 신이 따로 존재 할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도 말해놓았는데 내가 새삼 나서서 스승노릇을 할 필요는 없거든.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이일에 대해 상고해볼까?

호주에서 금방 돌아왔을 때 두부류의 사람들이 나를 반겼어.

한 부류는 내가 목숨처럼 아끼던 명상단체사람들이었고 다른 부류는 교회를 다니는 가족들이었는데 그들은 나를 보고 자신들의 스승이, 자신들의 하나님이 한국으로 나를 오게 만들었다고 하였지.

내생각과는 전혀 별개로 자신들의 신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으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지경이 아니겠어?

내가 만일 외형적인 스승을 따른다는 사실에 입각하면 명상단체사람들의 말이 맞을 것이고 성경속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인정하는 상태에 머문다면 교회 다니는 분들의 말이 맞을 거야.

하지만 내 생각은 그들과 한참 달랐거든.

나를 움직이는 힘은 그들처럼 어느 한곳에 머무는 하나님이 아니었어.

그렇다고 내 생각 속에만 머무는 하나님도 아니었는데 그들 모두를 충족시키는 하나님이어야만 했던 거지.

만약 나처럼 생각하지 못하면 어느 한쪽은 부정되어야만 하고 그들 사이에 영적인 전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해.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자신이 속해져있는 종교의 벽을 허물지 않고서는 절대로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기 때문이야.

어떤 이들은 이러한 내말에 또다시 반론을 제기하기도해.

당신이 단체에 속해져있다면 그곳에서 원하는 규칙이 있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을 이행 해야만 하지 않겠냐며 센터 나오기를 권유하거든.

사실 이렇게 말해버리면 나도 할 말이 없어져버려.

이미 내면적으로 머무는 바가 없으니 구태여 갈 필요도 없다고 말하지만 육신적인 일을 말할 때면 그들의 말이 맞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야.

내가 아무리 영적으로 우리들은 하나이며 간 바도 없고 머문 바도 없으며 떠나지도 않는다 말해도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몸뚱이인지라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몸으로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거든.

솔직히 지난 세월동안 이러한 상태로 지내온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느 한곳에 머물고 싶지가 않아.

게다가 누구에게 속해져서 누구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싶지도 않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남들과 동조하기도 싫어.

교회 다니는 일도 지금 내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건물이 완성되고 나면 그만둘 작정이야.

이미 말을 했듯이 중국에 머물 때 동생에게 물질적인 피해를 입힌 잘못으로 교회 말씀도 들어보고 성경공부도 하겠노라 약속을 했기에 시한부로 다니는 것뿐이거든.

물론 이것도 지금의 내생각일뿐 그때는 또 다른 상황이 나를 어떠한 곳으로 몰아갈는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고 그때 나를 움직이는 힘이 바로 신의 뜻이 될 거라 생각해.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누군가는 또 다른 반론을 제기 하기도 하더구나.

 

그렇다면 당신에게 있어서 신의 뜻이란 무엇입니까?

당신은 지금껏 사람의 뜻이 하늘의 뜻이라 하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뜻이 하늘의 뜻이 아닌가요?”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결정짓는 존재를 자신들의 신이라 여기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긴 한데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어.

각자가 믿는 신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는 거야.

진정 그들의 말대로 자신들이 믿는 신이 최고의 신이라고 한다면 결코 그 신은 나에게만 머물지 않으며 우리들에게 공통적으로 머문다는 사실이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이 자신들만 위한다 생각한다면 아직은 과정에 머물고 있다는 말인 동시에 아직 영적으로 걸음마 상태라 할 수 있어.

다시 말해서 자신들 인식만큼의 신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해.

바로 이러한 말에 따라 사람이 하늘이라 하는 말은 한사람이 깨달아서 그 사람 말이 하늘의 뜻을 대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해서 우리 앞에 놓인 결과를 가져오는 전체과정이 하늘의 뜻이거든.

막연하게 말을 하니 이해가 되지 않지?

아무래도 한 가지 예를 들 필요가 있을 것 같으니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해보기로 해.

처음 내가 호주 행을 결심할 때 분명 이민을 목표로 삼고 갔었어.

그렇다면 분명 나의 의지는 나에게 있어서 신의 뜻이라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호주에서 나에게 이민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돌아와야만 했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만약 내가 생각했던 것은 신의 뜻이 아니고 그저 육신의 소리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면 내안에 머무는 신은 없다고 해야 하겠지만 그럴 경우 삼라만상 안에 신성이 담겨져 있다는 말은 부정되어야하는지라 이치에 합당하지 않게 되거든.

이민이 충분히 가능한 상태인데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순전하게 나의 외삼촌 때문이었는데 외숙모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찬성을 하는데 불구하고 외삼촌 혼자서 반대하시는 바람에 우리의 이민이 무산되고 말았어.

교회의 장로님이신 외삼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반대한 이유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거야.

이러할 때 내 입장에서는 내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신의 뜻에 반대하는 외삼촌이 대적이 될 것이 아니겠니?

아마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외삼촌을 무척 원망하게 될 것이 분명해.

조금도 원망스럽지 않았다고 한다면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 될 테니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되겠지만 원망보다는 신의 뜻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했어.

지금껏 살아나오면서 나를 움직이는 그 무엇이 신이 분명한데 그때도 신은 또 다른 장면의 연출을 나에게 원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던 거지.

인간적인 면의 나는 외삼촌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온 세상을 움직이는 신의 뜻에 순종하리라 마음먹었던 거야.

이 같은 생각은 한국을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 이었거든.

나를 반기는 동수들이 스승님의 안배에 따라 돌아왔다며 나에게 채식식당을 운영해보라고 권유했을 때 분명히 말했어.

내 의지로는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면 내가 맡아 하겠노라고…….

그 당시 식당을 나에게 맡기려던 동수는 이러한 내말에 무척 실망을 했겠지만 솔직히 그랬어.

채식식당이 그다지 호황을 누리는 업종도 아니고 전망이 있는 사업도 아니었으니 물질적 시각에서는 안하고 싶지만 단체가 주장하는 채식홍보차원에서 단체의 일원으로서 의무적인 참여를 하겠다는 말이었지.

내 의지를 따르지 않고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신의 뜻이라 생각하겠다는 말이었는데 결과는 내 의사와는 달리 이상하게 발전이 되었던 거야.

식당구경삼아 함께 갔던 동수한분이 자신이 운영해 보겠다고 나서는 통에 우리들이 한발 물러서고 말았어.

신의 뜻은 얼마나 예측불허였던지…….

호주에서 내가 돌아왔을 때 갈 곳이 마땅치가 않았고 돈도 얼마 없었는데 가진 돈으로 방을 얻는다 하더라도 살림살이라고는 전혀 없는데다가 앞길이 막막했거든.

채식식당에 머물면서 앞날을 준비해야겠다싶어 책임자에게 말해보았더니 안된다고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식당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닌데 빈방이 있다 해도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야.

결국 당분간은 동생 집에서 신세를 질수밖에 없었는데 이일로서 사저와 다투기도 했어.

나와는 입장이 다른지라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으로 한시라도 빨리 동생 집을 벗어났으면 했는데 친동생집이라 해도 불편할 터인데 시누이에게 얹혀산다는 것이 무척 싫었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동생의 입장은 완전히 달랐는데 우리가 호주에서 돌아와서 자신의 집에 머무는 것이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 받아들인 거야.

그동안 호주에서 고생을 했으니 쉬면서 천천히 앞날을 걱정하라는 건데 내심으로는 이 기회에 교회에서 주는 구원을 받게 하려는 거였어.

덕분에 두어 달간 성경말씀을 집중적으로 듣게 되었는데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더구나.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 오해조차도 신의 뜻에 정확히 일치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교회 다니는 사람들 대다수는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할 것이 분명하고 나 역시 신의 뜻이라 생각하는 것은 일치해.

그러나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다르거든.

그들은 자신들의 성경말씀이 옳고 그 말씀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테지만 나로서는 성경해석을 여러 가지 각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것이 신의 뜻이라 생각하는 거지.

이것이 바로 같은 목적지를 가진 체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데 내가 선택한 인생길이기도 한 거야.

!

어떠니?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의 뜻이란 무엇인지 알겠지?

아들아!

도덕경에는 이런 말이 있어.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이라

 (말로서 할 수 있는 도는 원래의 도가 아니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은 원래의 이름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신의 실체를 말해놓은 말로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라는 것은 규정지을 수 있거나 한계지어 질수 없다는 말인 거야.

바꾸어 말하면 규정짓고 한계 짓는 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 거지.

진정한 하나님의 참모습을 말한 거라 볼 수 있어.

이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데 도라는 것은 인간들의 말로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우리들이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거든.

이 같은 생각들 모두는 환상에 불과해

왜냐하면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이 인식이 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야.

생각을 해보렴.

우리가 스승을 따르거나 믿을 때 우리생각에 그분의 말씀이 옳다싶어서 따르는 것이 아니겠니?

성경말씀도 우리생각에 옳다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야.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뇌로 인식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환상이라 하는 것이고 그 환상을 걷어 내는 것을 깨달음이라 할 수 있어.

지금까지 너와 대화를 나눈 목적이 바로 이러한 환상 걷어 내기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거지.

아들아!

오늘은 우리가 작별을 고해야겠구나.

처음 너와의 대화를 100회까지만 해야겠다 싶었는데 벌써 250회를 맞이했어.

너와의 대화를 시작한 것이 2005년부터 이었으니 햇수로는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었고 말을 해왔지.

처음에는 재미삼아 시작했던 글인데 나중에는 본의 아니게 내면의 신까지 들먹이고 말았어.

속 깊이 간직했으면 좋았을 내면의 체험까지 말했던 것은 나에게 투자를 하고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던 많은 이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내의도가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 되었던 모양이야.

좀 더 시간을 끌어가며 제4의 눈에 대한 이야기와 적그리스도의 일까지 말하려 했지만 내말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중단하기로 했어.

눈이 밝은이들은 구태여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훨씬 많은 뭔가를 보게 되어 있고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이 있어.

비록 내가 말한 내용이 신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신의 말로써 받아들일 수도 있고 말도 되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는 거야.

그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강요하지는 않아.

단지 내 개인의 생각이라고 생각이 되고 엉터리라 생각이 되더라도 비난은 하지 말기바래.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비난하는 이들이 규정을 짓고 한계를 말함으로 인해서 규정되어지고 한계 지어지는 곳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지 나를 비방하는 것을 내가 나무라거나 벌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야.

부디 여기 오는 모든 분들이 사는 동안 원하는 모든 것이 주어주고 있다는 완벽을 보게 되길 기원하며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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