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도(道)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배가번드 2022. 9. 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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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想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想名). (도라고 이름 하면 더 이상 도가 아니듯이 이름 지어진 모든 것은 실제의 이름이 아니다.)

사실 도덕경에 대한 해석도 가지가지 인지라 이것도 제대로 된 해석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느낌이 가는대로 언어로 표현했을 뿐 실제적이고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원문에서 나온바와 같이 도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인지라 사람의 인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름 지어지는 모든 것들도 항상 그 이름을 유지하지는 않습니다.

형상화된 이름은 편의상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여 부르는 것일 뿐 근본적인 것은 아니며 얼마든지 이름이 바뀔 수 있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문이라는 말을 애초에 곰이라 불렀으면 우리가 지금쯤 문을 곰으로 불렀을 것 이고 곰을 문으로 불렀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 부른다 해서 문과 곰의 원래의 모습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니 사물의 실체는 이름지어질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진리가 고정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진리가 끊임없이 변화되는 과정이라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진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종파가 만들어지는 것이며 어느 것 하나 의미 없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소수의 사람들이 만든 종교나 종파라 할지라도 그들만의 진리인 것이며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를 행사하는 거지요.

그런 이유로 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사이비라 할지라도 욕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우상숭배자들에 대해서도 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로부터 멀어지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할 수도 있으며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인데 구태여 욕할 이유가 없지요.

다만 때때로 도는 물 흐르듯이 흘러야한다 말해주고 싶기에 이렇듯 말을 많이 하는 겁니다.

간혹 나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나를 걱정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에 관한 법문을 전해주려는 사람을 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진리가 맞으며 대중적이고 보편타당성 있는 진리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떨 때는 내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지요.

왜냐하면 그때 나에게는 그런 법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법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호미를 써야할 때 쟁기가 필요 없듯이 그것이 참된 진리라 할지라도 쓰임새와 용도가 다를 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도라는 것은 물처럼 흘러야하는 것이고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합니다.

언젠가 어떤 스님한분이 도는 똥 막대기라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야말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도를 그처럼 확실하게 표현한다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지요.

나는 그분처럼 도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생각은 있기에 이처럼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하는 말에 동조를 하면 머물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서면 됩니다.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나가도되고 들어와도 되며 머문다고 돈을 받지도 않을 것이며 떠난다고 자리새내고 떠나라는 말도 않습니다.

다만 침을 뱉거나 오물투척은 말았으면 합니다.

그것만이 내가 요구하는 바입니다.

도덕경은 줄줄 외우지만

자신과 다른 도를 말하면 참지를 못하도다

그럴 바엔 차라리 도덕경을 불살라 버리라 말하고 싶다

이세상천지 도(道) 아닌 것이 없거늘

언제부터 도가 멈추어 섰단 말인가

어느 곳에서 도가 멈추었는지

몸소 왕림하여 폭파시켜 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