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장하면 스스로 걷기 마련이다.

배가번드 2023. 2. 14.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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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센터에서 나 홀로 명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혼자 명상을 하는데 갑자기 시커먼 기운이 나를 덮쳤지요.

아무리 허리를 바로 세우려 해도 몸을 일으킬 수 없었고 사람이 이렇게 해서 압사를 하는구나 생각할 무렵 갑자기 온화한 손길이 내 가슴을 떠받치고 일으켜 세우는 겁니다.

오불을 외우고 스승의 명호를 외워도 도무지 통하지 않았는데 내재한 신이 나를 떠받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과거 지옥을 방문했을 때 스승이 나타나 나를 구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이한 거지요.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이 말을 듣고 스승의 힘을 의심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석가모니 부처가 자신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구하다 비유한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단계에는 스승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달을 보는 것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점을 안다면 이러한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이 같은 일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아이를 키워보면 압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항상 보호하고 감싸주어야 하지만 어느 정도 크면 저 혼자 걸어갈 수 있게 내버려두어야 하지요.

처음에는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다리가 아프다면 업어주기도 하며 애지중지 키우다가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넘어져도 혼자 일어나게 내버려둡니다.

물론 어떤 부모는 아이가 너무나 귀한 나머지 성장한 후까지 품에 안고 돌지만 이 같은 짓은 아이의 장래를 망칠뿐 아니라 주위사람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칩니다.

신이 우리를 보살피는 것은 일반적으로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욱 확실하며 믿음의 크기에 따라 정확하게 시기적절한 보살핌을 주십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지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마16:2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24절에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육신이 자신이라는 인식을 넘어 진정한 영혼이 따로 있음을 알라는 뜻입니다.

육신으로 지은 죄는 본인이 감당하고 성령이신 예수님을 따라야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목숨(육신)을 구원코자하면 영혼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으로 잃는다는 표현을 한 겁니다.

또한 25절에 성령(예수)을 위해 목숨(육신)을 잃으면 찾게 된다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어야합니다.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어버리면 소용없는 것 같이 물질세상에서 아무리 영화를 누리고 살아도 성령을 모르고 죽게 되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26절은 말하고 있습니다.(영생은 극락이나 천국의 개념과는 다름)

지금 당장은 육신에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살아가는지라 모르고 있지만 사람의 몸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시면(인자가 임하시면) 본인들이 살아있는 동안 저질러놓은 일들을 무두 갚게 만들 거라는 말이지요.(27절)

평생을 죄짓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본인이 토해놓은 음식을 싫더라도 먹어야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자신과 함께 있는 자들 중에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도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28절)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으며 자신의 십자가를 철저하게 자신이 져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기독교도들은 다음구절을 떠올릴 것이 분명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of me; for I am meek and lowly in heart: and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30)

이 말씀역시 성령이신 예수님이 하신말씀으로 육신 예수님에게로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면 또다시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예수님말씀에 정확히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신으로서 예수가 부활하길 기다리는 어리석은 믿음에 빠지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 내용은 세상살이에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성령이신 예수님께 맡기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28절)

그래야 29절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배우라는 것은 자신(육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성령이 육신의 멍에를 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배우라는 겁니다.

삶의 주재자(主宰者)가 육신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점을 깨달아 알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성령)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했으며 이러한 점을 배우게 되면 영혼이 안식을 얻게 된다 한 겁니다.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이 말씀을 바꾸어 보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에 성령이 임한다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워지기 마련입니다.(30절)

성령은 육신과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인지라 멍에가 쉽고 짐이 가벼운 것은 당연하지요.

아마도 나를 아는 많은 이들은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이가 성령이라는 점을 아직도 알지 못할 겁니다.

영적 체험을 한 나 같은 사람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체험조차 없는 이들이 이점을 깨닫는다는 것은 실로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영생을 얻고 못 얻고 보다 내 삶을 어느 쪽이 유익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성령이 내재(內在)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과 육신이 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낫겠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는 말입니다.

아직도 엄마젖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인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살필 수 없다면 영생의 하늘은 아직도 멀리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질 자신이 있는 이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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