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육과 영을 함께 벌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몸을 죽일 수 있는 이가 있고 영을 죽일 수 있는 이가 따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요19:11)
Jesus answered, Thou couldest have no power at all against me, except it were given thee from above: therefore he that delivered me unto thee hath the greater sin.
빌라도의 뜻이 “창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볼 때 몸을 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은 엄연히 빌라도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권세를 위에서 주셨다고 하셨는데(it were given thee from above) 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겁니다.
만약 누군가 목에 칼을 들이대고 협박을 할 때 굴복하지 않기란 쉽지가 않으며 육신의 고통과 물질적 어려움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사람은 몇 안 됩니다.
오죽하면 가난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을 통해 달아난다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려면 영혼이 깨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일은 영혼에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이지요.
성경은 여기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마10:25)
It is enough for the disciple that he be as his master, and the servant as his lord. If they have called the master of the house Beelzebub, how much more shall they call them of his household?
제자가 선생과 같고 종이 주인과 같다는 말은 영육이 하나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하는 것은 뒷부분에 등장하는 바알세불이 뜻하는바가 뭐냐는 겁니다.
바알세불은 “거주의 주인”이라는 뜻인데 이는 몸 안의 주인, 즉 영혼을 뜻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 내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뭔가 이상합니다.
마치 집에 거하는 사람과 집주인 모두가 처벌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에서는 바알세불을 사탄으로 보고 있으니 결코 좋은 의미로 이 내용이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바알세불이 사탄이나 귀신들의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스스로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내면에 사탄을 모실수도 있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내재한 신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사탄이 집주인행세를 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럴 경우 바알세불(성령이 아닌 영혼)과 함께 지옥에 떨어진다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겁니다.
아마도 구도자의 상당수가 이런 일에 대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안에 마귀나 사탄이 살 수 있는가를 말하겠지요.
이런 일에 대해 성경에서는 언급한 적이 없지만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서에는 그 내용이 있습니다.
네 안에 있는 것을 내놓으면 네가 내놓은 것이 너를 구원하리라.그러나 네 안에 있는 것을 내놓지 않으면 네가 내놓지 않은 것이 너를 파멸하리라.
우리가 성령을 드러내는 일이 이래서 어려운겁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성령이 제대로 깨어나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마왕을 내면에 키우는 꼴이 되어 자신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만든다는 말이지요.
이런 일이 생기는 근본이유는 우리스스로가 이기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는 하나님을 원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나만 사랑하는 신을 만들어왔던 것이며 이기적인 마음이 마왕을 키웠던 겁니다.
이런 일을 우리삶속으로 가져와보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스승이 제자의 업장으로 인해 제자에게 벌을 내렸다 칩시다.
그럴 때 스승의 몸을 통해 신이 벌을 내렸다는 것을 진정으로 구도의 길을 걷는 이는 아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우 신은 스승 안에도 내안에도 공존하지만 성령을 깨달은 스승은 알고 진아가 드러나지 못한 나는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스승이 만약 벌을 내린 주체가 자신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요.
또한 스승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자신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고 스승을 떠났다 해서 벌을 내린다면 그를 통해 내리는 신을 진정한 신으로 인정해야할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언젠가 어떤 수행자 한분이 아버지의 업장을 자신이 가져올 수 있는가를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신이 받아들인 아버지의 업장이 없어지나 입니다.
이런 말에 내가 즉답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분이 아버지의 업장을 자신이 가져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미 답을 가진 채 나를 시험했기 때문이지요.
정확히 표현하면 내재한 신을 시험한 겁니다.
지금 그분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자면 본인이 아버지의 업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면 줄 수도 있으며 돌아가시면 업장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업장을 가져오면 해줄 수 있다 말합니다.
업장을 들고 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없애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몇 번에 걸쳐 말한 거지만 나에게 벌을 가한 이는 스승의 몸과 입을 빌어 임하시는 성령이신 하나님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이치를 모르고 우상숭배의 그늘에서 내려서지 못하면 끝도 없는 미망의 세계 속에 머물게 됩니다.
세상에 어떤 스승이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골수를 빼버린다고 협박을 한다는 말입니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의 몸과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나에게 닥친 재앙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럴 경우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해도 벌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벌을 주었다고 믿는 스승이 풀어줄 수도 없습니다.
나라면 그나마 내게 주어진 작은 행복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 겁니다.
우상숭배에서 내려서고 싶은 자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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