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holy)하신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여러분을 홀로(holo)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나
홀로목사의 성경강해시간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건강과 행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가복음의 마지막 시간을 시
작하겠습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
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막16:1)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16:2)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막16:3)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막16:4)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막16:5)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
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드디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 같습니다.
분명히 무덤을 막아놓은 돌이 있었는데 옆으로 치워져있었고 흰옷 입은 청년이 우편에 앉아
있었다고 했으니 의심의 여지없는 기적이 일어났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내용을 기적이라고 말하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서에는 이와는 달리 기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보고난 후 기적여부를 판단해도 늦지 않을 거라 여겨지는바 먼저 마태복음을 보겠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마28:1)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마28:2)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마28:3)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마28:4)
And for fear of him the keepers did shake, and became as dead men.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
는 줄을 내가 아노라(마28:5)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6)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마28:11)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마28:12)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
라(마28:13)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마28:14)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
라(마28:15)
예문을 보니 마가복음은 기적도 아닙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며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왔으니 사람들이 혼비백산(魂飛魄散)했습니다.
두 복음서가 완전히 다른 장면을 기록한 것 같은데 어느 것이 사실일는지요.
아마도 성경을 맹신하는 분들은 마태복음내용이 사실이라 할 것이고 좀 더 현실감 있게 받
아들이려는 이들은 마가복음을 신빙성 있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뭔가 담겨진 뜻을 헤아리려는 이들은 두 가지 복음 모두를 같게 볼 겁니다.
왜 그런가하면 마가는 마태복음에 담긴 뜻을 헤아리고 난 후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천사라고 기록한 것을 마가복음에 흰 옷 입은 청년이라 바꾸어놓은 것만 보더라
도 나 홀로목사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는 마태복음 내용이 비유의 내용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던 겁니다.
성경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나 홀로목사의 말을 믿지 않겠지만 여러분도 지금당
장 마가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위내용 중 4절을 보면 수직하던 자들이 무서워 떨었다(the keepers did shake)했지요.
수직하던 자들이란 보초병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그때까지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오는 일부러 보초병들이 이러한 일을 목격했다는 것을 말해놓음으로서 이 내용이 비유
의 말이라는 것을 알리려했던 겁니다.
이 말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11절부터 이어지고 있지요.
여러분도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보초병들이 그때까지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할 틈이 없다는 말과 마찬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는 무덤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물론 이럴 수 있기는 합니다.
경비병들과 예수님 및 제자들이 공모(共謀)를 했을 경우입니다.
아니면 영일 때라야 가능하지요.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성경은 이두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 홀로목
사의 생각입니다.
여기에 대한 증거의 말씀으로 요한복음을 제시합니다.
함께 보시죠.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
겨간 것을 보고(요20:1)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요20:2)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요20:3)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요20:4)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요20:5)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요20:6)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요20:7)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요20:8)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
더라)(요20:9)
이 내용을 읽어보신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때까지 무덤 앞을 지키던 보초병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없었을까요?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몰랐다고 한다면 보초병이 없었다는 말이며 마태복음에 기록된
대로 경비병이 있었다면 묵인 하에 옮겨갔다는 말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결정적인일은 9절 내용 안에 담겨있습니다.
요한이 말하고자한 것은 제자들이 아직까지 영의 부활에 대해 못 깨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뜻을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거지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육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다음내용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말이 어떤 뜻이란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요20:11)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요20:12)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요20:13)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못하더라(요20:14)
And when she had thus said, she turned herself back, and saw Jesus standing, and knew not that it was Jesus.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
져가리이다(요20:15)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
라)(요20:16)
Jesus saith unto her, Mary. She turned herself, and saith unto him, Rabboni; which is to say, Master.
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 아주 중요한 순간이 다가와 있습니다.
앞서 여러분은 요한복음 20장 9절을 통해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들이 영의 부활에 대해 몰
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마리아는 무덤 안에서 천사를 만났다고 했지요.
이 말씀인즉 막달라 마리아는 영의 세계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마리아가 천사를 볼 수 있었다고 기록했던 겁니다.
여기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14절에 나옵니다.
마리아가 뒤로 돌이켜(she turned herself back) 예수의 서신 것을 보았다고 한 것은 마리
아가 자신의 영적인 눈으로 예수를 보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랬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며 예수님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자 그때서
야 알았던 거지요.(16절)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대목은 16절에 나옵니다.
예수가 마리아를 부르자 또다시 돌이켰다했지요(She turned herself).
이 말인즉 영적인 시각에서 육적인 시각으로 돌이켰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요한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뭔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기록한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두 여자가 무덤에서 천사를 만
난 걸로 기록한 반면에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 혼자서 천사를 보고 예수님을 만났다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액면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아직도 나 홀로목사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다음구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요20:17)
나를 만지지 말라는 말은 정말 살아났는지 확인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다는 말은 그때까지 영의 세계로 올라가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자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이며 하나님의 숨결을 나누어받은 형제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인즉 육신은(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육신들) 결코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며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숨결을 나누어받은 다 같은 자녀라는 거지요.
이제는 보다 확실해 졌으리라 생각하며 마가복음으로 눈길을 돌려보겠습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막16:7)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
하더라(막16:8)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 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16:9)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해놓았다는 것을 우
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7절 내용은 자신이 죽지 않을 경우 만나자고 한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는 것을 제
자들에게 전하라는 말이지요.
몇몇 분은 아직까지도 나 홀로목사의 말이 믿기지 않겠지만 9절을 보면 확실하게 믿어질
겁니다.
분명히 마가복음 1절에는 세 명의 여인이 무덤으로 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앞 구절에 여자들이라고 해놓고 막달라 마리아가 먼저 보았다고 기록한 것은 분명 담겨진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담겨진 뜻이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 같이 영의 눈을 뜨게 되면 영을 보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을 말하는 겁니다.
세 명의 여인이 함께 있었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먼저 영안을 열었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거지요.
이 같은 나 홀로목사의 말을 뒷받침해줄 내용이 이어지고 있으니 함께 보겠습니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막16:10)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16:11)
분명히 세 명이 함께 했는데 이일을 전하는 이는 마리아 혼자이며 예수님을 본 것도 마리아
혼자라고 합니다.
사실 세 명이 보았건 두 명이 보았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영을 볼 수가 있으며 사람은 물론 사물을 통해서조차 영적인면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일을 마리아가 해냈던 것이며 그것을 마가는 말하고자 했던 겁니다.
이 같은 일을 마리아 혼자서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 당시에도 몇 사람 더 있었
다는 것을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
시니(막16:12)
After that he appeared in another form unto two of them, as they walked, and went
into the country.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막16:13)
말씀드린 데로 제자들 중 두 사람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들 또한 영안을 열었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여러분께 묻고자 합니다.
제자들이 본 것은 예수님의 육신일까요?
아니면 영일까요?
만약 육신이었다고 한다면 다른 모양이라고 기록하지 않았겠지요.
다른 사람 안에 들어앉은 성령이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다른 모양(in another form)이
라고 기록한 겁니다.
이제는 이해가 가십니까?
모르긴 해도 아직은 이해가 가지 않겠지요.
스스로 영안을 열지 않고는 이 같은 일을 믿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당시 12제자들 중 대다수가 믿지 않았다고 했으니 여러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예수께서 제자들을 다음과 같이 나무라셨지요.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
라(막16:14)
Afterward he appeared unto the eleven as they sat at meat, and upbraided them with their unbelief and hardness of heart, because they believed not them which had seen him after he was risen.
이 내용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이 믿지 않았기 때
문에 화내신 것으로 알게 되지만 담겨진 뜻이 따로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육적인)을 제자들이 믿지 않았더라면 함께 모이지도 않았겠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 없는 것을 나무라셨다 했는데 이는 육신으로서의 예수님에 대
한 믿음이 아니라 성령에 대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삼라만상 안에서 작용하는 성령의 능력을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 하
며 편재하는 하나님, 즉 성령을 깨닫지 못했음을 꾸짖은 거지요.
그래서 제자들이 다른 육신 속에 들어앉은 성령이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겁니다.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니 당연히 믿음이 없었으며 믿음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마음
이 완악해서라고 말씀하셨는데 완악하다는 말은 (hardness of heart) 단단하다는 뜻도 되고
무겁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마음이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있어 새로운 인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하고 물질적인 가치
관과 육신적인 판단으로 인해 영적인 인식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말이지요.
물질은 무겁고 영은 가벼우니 성령을 제대로 알기위해서는 육신적인일보다 영적인일에 관심
을 기울여야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크리스천들은 교회나 성당엘 가실 겁니다.
그곳에서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성경속의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께 전하지요.
그럴 때 그분들이 개인의 생각으로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신 성령이 그분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까?
믿지 않는 이들은 성직자들 개인이 한다 말할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당연히 성령의
힘이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말씀을 전달하게 만든다고 할 겁니다.
바로 이와 마찬가지의 일이 범위를 넓히게 되면 삼라만상 안에서 성령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지라 타인의 몸 안에서도 성령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이며 마리아뿐만
아니라 예수님 제자 중 일부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가요?
이제는 나 홀로목사의 말이 믿어지십니까?
아직까지도 아리송하신분들은 예수님의 다음말씀에 귀 기울려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And he said unto them,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He that believeth and is baptized shall be saved; but he that believeth not shall be
damned.
웬만하면 번역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싶은데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5절에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은 분명 잘못된 번역입니다.
정말 만민이었으면 every people 이라 했겠지만 every creature라는 단어를 쓴 것은 생명
(성령)을 담고 있는 모든 피조물을 가리키기 위해서지요.
달리표현하면 모든 피조물 안에 성령이 담겨있다는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고 믿지 않으면 정죄를 받는다 한 것은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16절)
먼저 세례에 대해 알아야 이 뜻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으니 잠시 세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요.
요즘의 크리스천들은 세례를 아주 간소화하기도 하지만 옛날의 세례는 주로 물에 잠기는 침
례입니다.
왜 이러한 관습(慣習)이 생겼는가하면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순간 다시 태어난다는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은 생명을 담고 있는바 성령을 나타내며 성령으로서 거듭나는 것이 세례의 진정한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뜻을 알고서 세례를 받는다면(거듭난다면) 구원받게 될 것이며 믿지 않으면(육신에
머물러 있으면)정죄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무턱대고 물에만 들어갔다 나온다고 해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어떠한 존재이고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육적인
자아의 상태에 머물게 되는지라 육신이 지은 죄는 육신이 받아야한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적용받게 됩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이들이 성령을 깨닫지 못한데 대한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겠지만 영어 성
경을 보면 그렇게 안일하게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정죄에 해당하는 영어 damned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뜻인데 성령을 깨닫지 못하면 미망(迷
妄)의 세계에 빠지는지라 이렇게 무서운 단어를 사용한 겁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실체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알아야겠지요.
다음내용에 주목해봅시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16:17)
And these signs shall follow them that believe; In my name shall they cast out devils;
they shall speak with new tongues;
오늘날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내용을 오해하고 있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사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자면 그렇지 못하지요.
중국에 살 때 이러한 일을 직접목격한일이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몇몇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을 에워싸고는 이 같은 일을 실천했는데 결국 귀
신을 쫒아내지는 못하고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켜야했습니다.
예수님이름으로 명하니 물러나라고 그렇게 말해도 듣지 않자 급기야 손찌검까지 했고 아이
를 다치게 만들었던 겁니다.
더러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기도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해프닝으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이 내용의 참뜻을 모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령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면 귀신이 범접하
지 못하며 새로운 언변(言辯)의 능력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tongues를 방언이라고 번역해도 안 될 것은 없지만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말씀하고자한 진
정한 뜻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성령이 자신 안에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서게 되면 인식이 바뀌는지라 새로운 세상이 열리
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평소에는 알지도 못하던 일을 알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말을 하게 되는데 이
같은 일이 바로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목사가 말하는 방언은 일반적으로 교회 다니는 분들이 하는 방언이 아닙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으며 상대방이 알아듣게 말합니다.
이것은 나 홀로목사가 사사로이 말하는 것은 아니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런 일에 대
하여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을 위해 관련구절을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
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13:11)
성령에 대한 믿음이 완전해지면 이러한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이미 나 홀로목사와 함께 하는 분들 중에는 이러한 일을 직접 경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역시 성령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면 경험할 수 있으며 이보다 더한 일도 경험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 같은 말을 좀 더 보충해줍니다.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
라 하시더라(막16:18)
They shall take up serpents; and if they drink any deadly thing, it shall not hurt them;
they shall lay hands on the sick, and they shall recover.
만약 이 내용을 액면그대로 적용시키면 크리스천 중에 어느 누구도 믿음 있다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자신 있게 믿음이 있다 말하는 분은 독뱀에게 물려도 아무렇지 않아야하며 독을 마셔
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야합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은 누구든 고칠 수 있어야하지요.
어떻습니까?
혹시 이런 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누구라도 이런 분을 알고계시면 제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짧은 시일 안에 큰돈을 벌게 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도 자신 있게 대답하지 않는걸 보니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나 봅니다.
이렇게 엄연한 현실은 외면하고 성경을 액면그대로 믿어야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
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 말씀은 성령에 대한 말씀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로부터도
영향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겁니다.
성령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면 육신 안에 자리한 성령이 되살아나고 성령이 깨어나는 순간
잡다한 귀신(삿된 인식)따위는 붙어있지 못하게 되며 이때부터 육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육신과 함께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병든 누군가에게(영이 손상된 자, 영적인 환자) 손을 얹게 되면 그 환자
역시 영적으로 회복된다는 거지요.
물론 이 같은 기적이 일어나려면 상대방역시 성령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을 가진 상태에서 이러한 믿음을 확고히 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성경은 정확
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16:19)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
거 하시니라)(막16:20)
And they went forth, and preached every where, the Lord working with them, and
confirming the word with signs following. Amen.
19절 말씀역시 액면그대로 봐서는 안 되는 내용입니다.
사람이(육신) 어찌 하늘로 들어 올려 질수 있겠습니까.
이때까지 말씀하신 것이 성령에 대한 것이었음을 마가가 밝히기 위해 하늘로 올리어져 하나
님 우편에 앉았다고 기록한 겁니다.
여기에서 여러분께 몇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하늘나라에 오르는 것은 육신일까요?
영일까요?
육신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일까요?
성령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우편에 예수님 육신이 앉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영혼인 성령이 앉으셨습니까?
20절에 제자들이 전파할 때 주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육신입니까?
성령입니까?
뭔가 가슴에 와 닿았지 않습니까?
이 같은 일을 확인하기위해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에서 혹은 성당이나 종교단체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말씀을 시작하기 전 기도할 때 그리스도가 역사하시어 자신의 입을 통
해 천국복음을 증거 해 달라 말하는 것만 보더라도 나 홀로목사의 말은 진실 됩니다.
아직도 뭔가 미심쩍은 마음이 드는 분들을 위해 마태복음의 내용을 잠시 가져와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18절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거지요.
자신이 성령을 완전히 드러내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9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말했던 겁니다.
20절에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제자들과 함께 할 거라고 하신 것은 성령으로서 믿음을
가진 제자들안에서 함께 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어떤가요?
이제는 성령의 실체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육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성령의 실체에 대해 알 수가 없으며 성
령을 모른다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생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 홀로목사는 십자가사건의 비밀과 부활에 관한 일을 여러분께 밝히고자
한 겁니다.
사실 영생은 둘째치고서라도 자신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잠시 왔다가는 인생 신나게 즐기고 놀다가자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요.
적어도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하고는 있지만 영혼의 실체에 대해 아
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 영혼에 대해 숙고(熟考)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언젠가 각자 영혼의 차원이 다르다는 말은 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가장 높은 차원에서의 영
혼, 즉 성령에 대한이야기를 하자는 거지요.
성령이라 하면 모든 이들이 하나의 영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을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 같은 말은 육신적인 차원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영의 세계를 설명하기위한 방편의
말일뿐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성경내용이 있으니 잠시 보도록 하지요.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막9:4)
몇 차례 말씀드렸다시피 영의 세계는 시공(時空)이 무너진 세계이기에 시대를 초월하고 있
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자아를 상실한 빛의 세계에서도 각자 고유의 품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이러한 일을 잘 표현한 것이 요한복음 20장의 내용입니다.
영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영혼이 육신과 동일한 모습이라 여깁니다.
그렇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영혼은 육신과 다를 수 있습니다.
왜 이러한가 하면 영혼에는 등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예수님을 비롯하여 아브라함과 다윗 등이 멜기세덱의 반차에 올랐다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을 말해주는 겁니다.
영혼에 등급이 없다면 반차(班次)에 올랐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지요.
따라서 영혼이라 해서 모두가 같지는 않으며 높낮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말한 이유가 이미 완성된 영혼이 마리아
의 몸을 빌려 세상에 왔기 때문인데 이럴 경우 육신의 몸과 영혼의 몸이 완전히 다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예수님을 보았을 때 못 알아본 것은 예수님의 본체인 영혼을 보
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예수님 영혼은 일반인의 영혼과는 많이 다른 성령입니다.
일반인들에게도 성령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겹겹으로 둘러싸인 삿된 인식과 업력(業力)으로
인해 쉽게 깨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육신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함께 영혼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대부분 부모를 닮는 겁니다.
부모가 영적일 경우에는 당연히 자식도 영적일 것이며 부모가 육적이고 물질적인 인식에 사
로 잡혀 있으면 자식 또한 그 영향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높은 영혼이 내려오게 되면 부모의 유전자와는 전혀 별개의 존재로 육신에 거합니
다.
일정기간동안 육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인연을 갖기 위해 눈을 감고 있지만 때가 되면 생령
이 되어 육신과 함께 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계별로 수행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완전하게 온 것이 완전하게 드러나는
겁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누군가 질문이 있다고 하는군요.
지금껏 목사님께서는 사람의 몸 안에 성령이 있다고 했고 성령을 일깨워주기 위해 성경강해
를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성령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하시니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요?
질문을 듣고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시공간을 넘어선 영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런 질문을 하시겠지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성령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무소부재하며 편재합니다.
그러니 사람은 물론 온 우주에 성령이 담겨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온다고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시공간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세상을 설명하기위해 말한 겁니다.
그 말씀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령이 예수님의 진정한 영혼이라면 어째서 성경에 예수님을 일
러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라 말하는지요.
그 말씀을 사람의 인식으로 이해하려들면 안됩니다.
온 우주를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듯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
되었기 때문에 독생자라 부르는 겁니다.
인간세상에서의 외아들을 가리키는 독자(獨子)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이 같은 개념을 완전하게 인식하려면 우리 몸을 살펴보면 됩니다.
사람의 몸은 머리와 팔다리와 함께 오장육부를 비롯하여 신체의 각 기관이 모여서 만들어져
있으며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중 어느 것 하나도 내 몸 아닌 것은 없지요.
이처럼 사람을 비롯하여 삼라만상은 그가 짓지 않은 것이 없는지라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입
니다.
이 같은 사실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 할 수 있으니 독생자라 할 수 있으며 그
렇지 못한 이들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지금껏 나 홀로목사가 주장하고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여러분께 주고자하는 영생과도
이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에 대한 믿음만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드리다보니 어느새 약속된 시간이 다된 것 같습니다.
아쉽긴 하지만 오늘로서 마가복음강해를 마치게 되었군요.
늘 그렇듯이 기한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조만간 다시 만나 뵙게 될 거라 말씀드리며 잠시간
의 작별(作別)을 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