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중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경에 나오는 무소는 인도코뿔소를 가리키는 말로서 수행자의 굳건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아프리카코뿔소와 달리 인도코뿔소는 뿔이 하나밖에 없지요.
그래서 이 말씀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믿음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여겨집니다.
스승이 나타나면 스승을 죽이고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선사들의 가르침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상에 매이게 되면 가르침의 핵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에서 이런 말이 생겨난 겁니다.
우리가 처음 영적인 길을 걷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듯이 혼자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야하지요.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을 하게 되면 반드시 혼자서 일어서야 하며 혼자 걸어갈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부모가 아이를 평생 업고 다녀야하고 아이는 성장을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경계하기 위해 법구경의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합니다.
성경에도 이런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지요.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
Then if any man shall say unto you, Lo, here is Christ, or there; believe it not.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For there shall arise false Christs, and false prophets, and shall shew great signs and wonders; insomuch that, if it were possible, they shall deceive the very elect.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24:25)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6)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그때라는 것은 성령이 드러날 때입니다.
24장 전체내용이 성령이 드러날 때 일어나는 일을 말해놓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본인의 영혼이 성령과 하나 되었을 때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그때껏 잠들어 있거나 죽어있던 성령이 예수님과 같은 인자의 가르침을 통해 이심전심이 이루어져 깨어날 때를 말하는 거지요.
이렇게 내재한 성령이 깨어나는 것은 육신과는 별개라는 뜻에서 사람이 말하는 것을(any man shall say unto you) 믿지 말라 한 겁니다.(believe it not)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진정한 성령이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24절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적 스승이 있어서 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여 기적과 이적을 행사할지라도 참된 성령으로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재한 성령이 깨어났다면(성령이 내재함을 안다면) 외부에서 전해지는 형상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게 된다는 거지요.
예수님처럼 성령이 드러나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이 말씀하시더라도 그 사람 자체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아니라 만약 예수님만이 구원이고 그리스도라면 이런 말씀을 남길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이니 나만 믿고 따르라고 말하면 그만일 것인데 광야에 있다 해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해도 나가지 말라 한 것은 그리스도가 어떤 형상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인자의 임하는 것이 빛과 같다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이를 가리키는 것이며 인자가 곧 그리스도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빛과 같아서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에서 질 때까지 하늘에 떠있듯이 우리 삶을 보살피며 인생을 보호합니다.(27절)
이 같은 내말은 사사로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인식할 수 있는 일이지요.
우리 안에 성령이신 하나님이 살아있다고 가정할 때 내 삶을 주관하는 이는 멀리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나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성령인 겁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이 성령이 드러난 분을 따르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잘못하면 심각한 오류가 발생함으로 예수님께서 이런 가르침을 남겨야만 했습니다.
내재한 성령을 깨워야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육신예수)을 믿고 따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이신 예수이자 인자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라는 거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요한복음 14장 전체내용은 성령에 대한 설명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크리스천) 알고 있는 성령과 하나님, 그리고 인자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액면대로 보자면 16절에 나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그가 다른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것을 하나님아버지께 구한다는 말이 됩니다.
보혜사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인데 액면대로 보게 되면 예수님이 다른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준다는 말이 됨으로 예수님은 성령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고 말지요.
이런 해석을 하게 되면 보혜사가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더라도 예수님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성령은 어느 육신 안에만 거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봐야합니다.
시공간을 넘어선 존재인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 세상 사람들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성령이 내재함을 아는 제자들의 몸 안에서 되살아나고 있음을 17절에 설명해 놓았습니다.
지금 당장은 성령이 되살아났음이 가슴에 와 닿지 않겠지만 육신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면 초점을 예수의 육신에 맞추지 않고 성령에 맞추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예수님육신을 성령이라 생각하고 따르던 믿음의 형태에서 내재한 성령을 깨우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성직자들의 가르침을 따르되 초점을 내재한 성령에 맞춰야합니다.
이것은 종교를 떠난 진리이며 영원한 생명의 가르침입니다.
종교의 벽을 허물고 육신의 고정관념이 무너진 이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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