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도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물어보면 무소부재(無所不在)하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라 말합니다.
나 역시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독교도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막연하게 이렇게 생각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다는 말의 뜻을 알아야할 것 같다는 겁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의 뜻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라는 것과 전지전능(全知全能)의 뜻이 무엇이든 알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보편적 진실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뜻을 알고 나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어디에도 있는 하나님이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면 육신으로서 하나님과 하나 될 방법이 없지 않겠냐는 겁니다.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내 생각은 물론 상대방생각도 알고 세상사람 모두의 생각을 안다는 것이며 모든 것을 행한다는 것도 내가 하는 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나를 상대하는 이의 행동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되기에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보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고 큰소리쳤던 예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이라 말하고 있으며 그것은 진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의 합의점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어졌다 했으니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몸 안에 하나님의 숨결인 생명이 들어있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빛이라고 했으니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되면 만물 안에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있다는 말이 되며 그 숨결은 곧 생명이고 빛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결국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빛으로서 우주만물 안에 거하신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게 된 것 같은데 어째서 우리들은 아직도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지 또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물을 생동케 하신다 했으니 나를 생동케 하는 이도 하나님일진데 어째서 우리는 아직도 그러한 점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가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 알려면 하나님과 하나 되신 예수님의 경험을 통해 해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4:2)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4)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마4:5)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마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마4:7)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마4:8)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1)
Then the devil leaveth him, and, behold, angels came and ministered unto him.
이 내용이 예수님께서 시험받은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 내면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과 하나이신 성령이 예수님을 마귀에게 데리고 갈수는 없는 일이지요.
게다가 마귀가 성전에 함부로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내용을 통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역시 예수님과 같이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세 가지의 시험을 받으셨는데 첫 번째가 굶주림이었고(1~4절) 두 번째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일이었으며(5~7절) 세 번째가 물질세계의 영광이었습니다.(8~10절)
우리가 현실 속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먹고 사는 일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먹고사는 일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궁핍해서라기보다 비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대로 먹고산다면 그다지 힘들게 여겨지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한 듯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잘 먹고 잘살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나면 남들과 심한 경쟁을 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기에 이 같은 시험은 가볍게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영적인 길에 들어설 때 경험하는 시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광야로 가심)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처음 영적인 길로 접어들어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게 되면 하나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진정 영생을 향한 길이며 자신이 선택한 신이 하나님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영적인 길을 걸어갈수록 현실이 점점 더 힘들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그릇됨이 크면 클수록 시련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할 때 누구나 한번쯤은 기적을 바라게 되지요.
하지만 이러한 상황조차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더 이상 기적이나 이적을 바라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함께 하는데 따로 기적을 바랄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강하다면 이러한 시험은 당연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 번째의 시험은 내재한 성령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의 마음가짐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성령이 내재함을 알게 되면 내 마음 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져야함을 생각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것은 인식이 육신의 범주에 머물고 있기 때문으로 하나님을 내안에 가두려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영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아직도 영생의 하늘에 도달하지 못한 겁니다.
빛이신 성령이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며 이를 알게 되면 예수님과 같이 마귀(육적인 욕망, 욕심)를 향해 꺼지라고 말하게 됩니다.
성령이신 하나님을 내안에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됨으로 얻어야할 영광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하늘의 천사들이 성직의 임무를 주게 되는 거지요.(angels came and ministered unto him)
이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인자라고 부르는 것이며 우리 또한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귀와 성령이 내재(內在)함을 아는 이들만 들으시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0) | 2023.05.03 |
---|---|
인종과 종교를 달리해도 신은 하나. (0) | 2023.05.02 |
장래사를 보이고 과거사를 진술하라. (0) | 2023.04.30 |
신의 뜻과 시험. (0) | 2023.04.29 |
불이법문(不二法門). (0) | 2023.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