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사랑은 자발적인 구속.

배가번드 2023. 5. 13.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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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너무나 절실하면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집착이란 소유욕의 산물이라 누군가를 속박하려듭니다.

어찌 보면 이 같은 일은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당연한일인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을 사랑함에 있어 소유하고자하는 마음이 없다면 관계설정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집착까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게 되면 이러한 마음조차 변화를 일으킵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할 때는 어떤 계기가 있어서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만남의 과정을 통해 결혼까지 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로 결합한다는 의미와 사랑이 맺어진다는 뜻이며 이자체가 속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고 상대방에게 나를 속박시키는 행위가 결혼이라 말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소유와 속박은 자발적인 것이어서 서로를 상대방에게 묶어두는 행위입니다.

일방적으로 소유당하고 속박당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유의지로 상대방에게 예속(隸屬)되기를 선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진정한 뜻을 깨닫기도 전에 결혼부터 하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결혼생활을 얼마하지 않아 후회를 합니다.

막상 살아보니 성격이 맞지 않는 것은 물론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지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지요.

이 같은 현상을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라 하고 권태기로 인해서라 말하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속박당하고 소유당하는 것이 싫은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노래도 생기고 결혼은 감옥이라는 말도 생기게 됩니다.

결혼한 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식이 아니라면 벌써 헤어졌을 것이라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는걸 보면 진정으로 상대방에게 소유당하거나 속박당하기를 스스로 즐겨하는 이가 드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뭔가에 홀리듯 결혼을 서둘러서 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콩깍지가 둘러씌워져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영혼의 선택 때문입니다.

육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에 우리의 영혼은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면서 완성을 향해나가게 만드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 하지만 반드시 이렇게만 여길 수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내가 아무리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할지라도 상대방이 싫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사랑을 주기만 하는 것이라고 하고 상대방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라는 말도 하는 겁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사랑의 정의를 내리는 것조차 쉽지가 않음을 알 수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사랑받기를 좋아하며 귀하게 여김 받는 것을 즐겨합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나를 구속시키고 소유하려 들면 싫어하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것은 좋지만 너무 과하게하면 구속당하는 것 같고 소유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도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사랑의 첫출발점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렇게 나와 상대방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만약 상대방이 내가 싫다고 한다면 주저 없이 떠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까닭입니다.

이것은 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겁니다.

이것이 쉬울 것 같지만 육신의 범주아래 놓인 인식하에서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세계를 알게 되면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으로서 본의 아닌 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러할 때 대부분은 슬퍼하며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자신을 힘들게 만듭니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대부분의 경우 죽기 싫어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이들은 죽기 싫어 몸부림을 칩니다.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한동안 망자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되며 심한 경우 본인의 건강까지 해치게 되지요.

하지만 영적으로 보자면 영혼이 죽음을 원해서 육신을 떠난 겁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육신이 죽는 것이라 여기지만 알고 보면 영혼이 육신을 버리는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상대방의 영혼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머물기 싫어서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며 나를 버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잔인한 것 같지만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우리육신이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할 인식입니다.

꼭 이렇게 영적인일을 말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사랑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같은 일은 당연시 되어야하는 일이지요.

내가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한다면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하는 겁니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준다는 의미에서도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개념이며 구도자들로서는 반드시 받아들여야할 인식입니다.

집착된 사랑을 하되 언제든 놓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우리가 자유롭게 되는 동시에 타인도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거지요.

흔히들 사랑하는 이를 속 깊이 간직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말하며 가슴에 품고 살아가지만 이렇게 되면 상대방의 영혼이 떠날 수가 없습니다.

사랑했던 마음만 간직하면 되는 것이지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상태를 집착이라 하는 것이며 육적인 인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마음상태인겁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게 되면 영혼이 육신을 버리지를 못하게 되며 때가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해도 영혼이 높은 세계로 올라가지 못하게 됩니다.

천당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귀신의 세계에 머물게 되는 거지요.

상대방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떠나지 못하는 영혼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그 무엇이든지간에 집착이 되어버리면 놓기가 어려워집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어머니가 그러합니다.

내가 어떻게 낳은 자식인데 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심각한 집착현상을 보입니다.

이모두가 신의 뜻에 따른 일이긴 하지만 당사자들로서는 무척 힘든 일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의 연극무대로 봐야하는 겁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사람을 만나 이러한 역할을 했으며 다음 생에는 또 다른 이를 만나 또 다른 연극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 생에도 같은 사람을 만나 연극을 한다 해서 안 될 것도 없지만 다른 이를 만나 역할을 한다 해서 안 될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한 쌍이라 할지라도 다음 생에서는 다른 사람을 만나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고 나도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이렇게 살고 있으며 다만 내재하신 성령이 우리의 눈을 가려 못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