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문을 열고자 하면 두드리라.

배가번드 2023. 6. 2.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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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려면 운동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렇지만 막상 힘들게 운동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정말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매일 몇 시간씩 공을 들여 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담배를 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담배를 끊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것이 결코 쉽지가 않으며 육신의 욕구를 본인의 의지가 이겨냈을 때 끊게 됩니다.

의지력이 강한 사람일수록 끊기가 쉬우며 육신의 욕구에 충실한 사람은 끊기가 어렵지요.

그런데 담배를 끊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 에는 두 가지 인식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담배를 끊으려는 나와 담배를 피우고자 하는 내가 서로 투쟁을 벌이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몸 안에는 다양한 인식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영육이 따로 구분된 존재임을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영향에 따라 생성된 본능과 원래의 내모습인 영혼이 있기 때문에 갈등을 하게 되는 거지요.

만약 우리 안에 한가지의 인식 체만 있다면 갈등을 할 까닭이 없으며 마음을 먹는 순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 몸 안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한다 말하게 되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이를 가리켜 깨달음을 얻었다 말합니다.

물론 깨달음이 담배하나 끊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육적인 욕구와 본능을 넘어서게 되면 영이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는 차원에서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시적으로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피우게 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드러났다가 다시 잠든 것과 같은 겁니다.

이 같은 일은 어디까지나 목표에 대한 비유이며 담배하나에 국한시킬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주어지는 갈등의 순간은 항상 있으며 그때마다 주저앉는다는 것은 육과 영의 전쟁에서 진 것으로 봐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려다가 온갖 핑계로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육신의 소리에 영혼이 굴복을 한거지요.

흔히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일상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갈등의 순간들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일은 일어나고 있으며 자신의 영혼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는 상태라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본능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따를 것이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인생의 목표점까지 알게 될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일을 성경을 통해 몸소 보여줍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마4:8)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같은 갈등을 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목표가 생기는 순간 거짓말같이 이러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과 잠을 더 자야겠다는 마음이 갈등을 일으킬 것이고 운동선수들은 연습을 더 많이 하고자 하는 마음과 쉬고 싶은 마음이 투쟁을 일으킬 겁니다.

명상수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 같은 일은 나에게 매일같이 일어났습니다.

하루 6시간의 관음명상을 목표로 삼은지라 잠자는 시간을 극도로 줄여야했지요.

게다가 일을 해가며 이렇게 살았으니 육신을 완전히 죽이는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에 따른 문제일 뿐이며 깨닫기 위한 절대적인 방법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에게는 깨달음이 목표가 아니라 명상이 목표였던 겁니다.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진정한 영혼이 깨어나는 것을 이름인데 구태여 자신의 몸을 학대할 이유가 없음에도 이렇게 했던 것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함이며 더 잘하겠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담배나 운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영혼을 깨달을 수 있으며 드러낼 수 있는 것인데 고생을 사서한 셈이지요.

그렇지만 분명히 알아둘 것은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양심과의 투쟁이 시작될 것이며 또 다른 목표점이 다가옵니다.

영혼이 드러난 후부터는 성령과 하나 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담배를 끊고자 해서 얼마간 끊었다가 다시 피우는 일이 반복되고 언젠가 자신이 담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자각하게 될 때 육신의 한계점을 깨닫고 신에게 의지하게 될 겁니다.

그때 비로소 내 마음 안에 성령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영적으로 성장이 시작되는 거지요.

어느 정도 성장이 되고나면 자신이 했던 갈등이 영혼을 살릴 것인가 육신을 선택할 것인가를 시험받는 순간이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스스로가 담배가 좋다고 생각한다면 끊어야할 이유가 없으며 갈등할 필요조차 없지요.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자신이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은 건강에 이상이 생겼거나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온갖 핑계를 대고 담배를 끊지 못하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짓인 동시에 영이 육에 굴복한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래서 많은 이들이 돈을 내고 휘트니스 센터에 나가는 것인데 본능을 억제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 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회를 다니거나 명상단체에 나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력만으로 신에게 다가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내재하고 있는 빛이신 성령을 만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보니 종교를 선택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스스로가 성령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어떤 식이 되었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고 성직자들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할 것은 내가 바라고 원해야만 한다는 거지요.

담배 끊기를 원하고 운동하기를 원하며 신을 찾기를 원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신이라도 원하지 않는 이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