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영생을 향한 길은 고난의 연속.

배가번드 2023. 6. 24. 04:09
728x90

사람들의 기도는 정말 이상합니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게 해 달라 기도해놓고 막상 시험이 찾아오고 곤란지경에 빠지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을 바꿉니다.

몸에 병이 찾아오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영생을 얻지 않아도 좋으니 몸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며 부자로 살게 해 달라 기도하지요.

이렇게 수시로 바뀌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신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기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진짜인지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마음 중에 어떤 것이 참된 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데 신인들 오죽하겠냐는 겁니다.

이래서 성경은 변치 않는 마음을 말해주고 있지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Trust in the LORD with all thine heart; and lean not unto thine own understanding.

 

내재한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으면 육신에 의한 본능적인 생각들은 접어두라는 뜻입니다.

가난에 처해졌거나 육신이 병든 것도 하나님이신 성령이 주신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면 기도제목을 바꿀 이유가 없는 겁니다.

영생을 향한 여정에서 어려움이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신이 주시는 축복이지요.

무거운 업장의 무게를 줄여주려는 하나님의 안배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가진 이상 물질적 욕구와 육신적 욕망을 뿌리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일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1:3)

But Jonah rose up to flee unto Tarshish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went down to Joppa; and he found a ship going to Tarshish: so he paid the fare thereof, and went down into it, to go with them unto Tarshish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다시스의 뜻은 “금속의 정련”이며 욥바는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로부터 달아나려 했다는 것은(to flee unto Tarshish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영적인 길에서 내려서려 했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내용을 볼 때 요나는 한때 세상의 아름다움에 취해 하나님으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나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가 않았으며 오히려 격정과 풍랑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욘1:4)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욘1:12)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욘1:13)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욘1:14)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욘1:15)

 

영적인 길을 가야하는 인생길에는 고난과역경이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정련(단련)시키기 위해 이러한 시험을 주는 것이며 영적인 길로 돌이키라는 경고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을 요나는 알기 때문에 12절에서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 한 겁니다.

이 내용은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지요.

육지로 돌이킨다는 것은 온 곳으로 가고자하는 마음을 비유한 것으로 우리의 영혼의 출발점인 하나님 왕국을 가리킵니다.

영생의 하늘로 돌아가려하면 그만큼의 시련과 어려움이 따르는 법인데 견디기가 어려워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내용은 험한 세파를 이겨내려면 마음에 평정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요나의 뜻이 “평화” 라는 점을 볼 때 이는 곧 우리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성령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며 그만이 험한 세파를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지요.

아마도 어떤 이들은 영적인 길을 포기하면 세파의 시달림을 받지 않게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겠지만 막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영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은 영혼이 깨어났다는 의미이며 성령과 하나 되는 선택을 했다는 뜻입니다.

성령과 하나 되는 선택을 영혼이 했으므로 또다시 물질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시간의 지체는 있을지언정 목표가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해보면 알겠지만 결국에는 또다시 영적인 길을 걷게 되며 요나와 같은 과정을 겪기 마련이지요.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2:4)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욘2:7)

When my soul fainted within me I remembered the LORD: and my prayer came in unto thee, into thine holy temple.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욘2:10)

 

7절에 나오는 요나의 영혼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우리 육신 속 깊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의식을 잃은 상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my soul fainted within me)

하지만 결국 요나가 기도를 멈추지 않자 하나님이신 성령의 축복으로 약속의 땅에 도달하고 말았지요.

성경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영적인 길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내용을 기록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힘이 든다는 것인데 우리가 알아야할 일이 있습니다.

구도의 길을 걷거나 그렇지 않거나 인생길은 누구에게나 힘들다는 겁니다.

오히려 믿음을 가진 상태가 유리하며 마음에 만족을 얻기가 쉽다는 거지요.

그래서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호랑이를 만난 사람이 피할 나무를 찾은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있다는 것은 본인을 위해 좋은 것이며 기도는 믿음을 가진 이들의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