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한 후 오토바이를 세울 때 현장입구에 세우게 됩니다.
될 수 있으면 동선을 짧게 하려고 현장출입구 가장 가까운 곳에 세우는데 여기에도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입구에서 먼 쪽에 대다가 내가 세우고 나면 다들 따라와서 대기 시작합니다.
이러다보면 처음 내가 대던 자리를 누군가 차지할 때가 있지요.
이럴 때면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매일같이 내가 세우던 곳에다가 자신의 오토바이를 댄다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같은 자리에 누군가 매일같이 오토바이를 세운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자리에 임자가 따로 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겠지만 당하는 나로서는 서운한 겁니다.
지금이야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처음 이런 일을 당할 때만 하더라도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한 달 이상 같은 자리에 세워두던 곳을 어느 날인가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던 거지요.
어차피 공사장 인근의 도로 옆이라 주인이 따로 있을 리 만무하고 기득권을 주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섭섭한 마음에 화가 났지만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반대편에 오토바이를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차지하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노상주차인지라 먼저 오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생각에 다들 이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결국 내 자리를 지키려면 그 사람보다 일찍 출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또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다보면 경쟁적으로 일찍 출근하게 될 것이고 서로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경쟁하며 살았던 세월이 싫어서 단순노동을 하는 것인데 여기에서조차 경쟁을 한다는 자체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누군가 자리다툼을 한다싶으면 약간 먼 곳에다 오토바이를 세웁니다.
이렇게 되면 누구도 내 자리를 넘보지 않게 되지요.
이런 식이다보니 이제는 빈자리가 있어도 앞자리에 세우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멀찌감치 세워놓으면 누구에게도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모르긴 해도 누군가 세워두던 곳을 내가 또다시 세우게 되면 그 사람 역시 과거에 내가 했던 원망의 마음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사실 알고 보면 누군가 내가 세우던 곳을 비집고 들어오게 되는 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 내가 장사를 다닐 때 거래처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지요.
기존의 거래처가 확보되어 있는 상태에서 내가 비집고 들어가 거래처를 가져왔기에 내가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잔머리에 능했기에 빠른 시일에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한때는 제법 알려진 업체로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거래처를 빼앗긴 누군가는 파산을 하게 되었고 가정이 파탄지경에 처해지는 것을 목격한 후부터 세상의 덧없음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세상이 이런 식으로 유지되고 있기에 이 같은 일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은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내가 가지고 있다 보니 이제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세상과 부합하는 인생을 살기 어렵게 되었으며 어찌 보면 출가자의 삶을 내가 이해하게 된 셈입니다.
한때는 출가하려는 마음을 먹었던 적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세상에 적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자 하는 거지요.
사람들은 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정반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두고 세상에 알려지고 싶어서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알리지 말아 달라 부탁합니다.
영생에 대해 관심도 없는 이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비난만 쏟아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일반인들에게 소개하기를 극구 사양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내 글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또한 내재하신 성령에게 부여받은 임무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것을 표본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맡은 거지요.
이러한 점에 대해 성경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Take heed that ye do not your alms before men, to be seen of them: otherwise ye have no reward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
Therefore when thou doest thine alms, do not sound a trumpet before thee, as the hypocrites do in the synagogues and in the streets, that they may have glory of men. Verily I say unto you, They have their reward.
1절 앞부분을 직역해보면 사람들 앞에서 너의 구제를 행하지 않게 주의하라 입니다.(Take heed that ye do not your alms before men)
여기에서 말하는 구제(救濟)는 영혼을 구한다는 뜻이지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세우기위해 영혼을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위선자들이 하는 짓이라고 합니다.
외식하는 자는 위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교회나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여 영혼구제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너희 앞에 트럼펫 소리를 내지 말라는(do not sound a trumpet before thee) 것은 요란하게 과대선전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성령이신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육신 예수가 유일한 구원자라는 식으로 말하는 이는 위선자라는 뜻이지요.
이렇게 해서 예수를 신처럼 만드는데 성공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상은 받을 수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ye have no reward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한마디로 표현해서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해주겠노라 떠들어대지만 정작 자신들은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유명해지는 것으로 이미 상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정말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오늘 이 말씀은 우연히 알게 된 내용으로 의도하고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성령이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성경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이 내용을 보게 된 겁니다.
지금껏 수행자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를 알게 된 거지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영생을 얻으려면 물질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처럼 부자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온 세상이 성령이신 하나님 품안에 있고 성령은 내안에 있음으로 내가 온 세상을 품고 있는 거나 다름없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무엇인가를 거머쥐기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는 겁니다.
손에 무엇인가를 쥐는 순간 그것이 나를 제한시키기 때문이지요.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점을 내가 알기에 언제나 나는 자유롭습니다.
가장 높은 이보다 결코 낮지 않으며 가장 낮은 이보다 전혀 높지 않은 이는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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