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심은대로 돌아온다.

배가번드 2023. 9. 23.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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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모든 이들의 내면에 불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 같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는 책만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성령을 깨닫고 나면 모든 이의 내면에 성령이 있음을 알게 된다는 말과 같은 겁니다.

바울은 성경을 통해 이 같은 일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Servants, obey in all things your masters according to the flesh; not with eyeservice, as menpleasers; but in singleness of heart, fearing God;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골3:23)

And whatsoever ye do, do it heartily, as to the Lord, and not unto men;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3:24)

Knowing that of the Lord ye shall receive the reward of the inheritance: for ye serve the Lord Christ.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골3:25)

But he that doeth wrong shall receive for the wrong which he hath done: and there is no respect of persons.

 

22절에 종들아 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무리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성령의 내재함을 믿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진정 우리가 성령이 내재함을 안다면 모든 사람의 내면에도 성령이 있음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일을 도모함에 있어 상명하복의 원칙아래 놓이게 되었을 경우 육신적인 면만 보지 말고 성령의 작용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는 성령을 생각해서 양심에 어긋남 없이 행하라는 거지요.

이러한 말을 하면 어떤 이는 이렇게 할 경우 상대방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 이용당한다 싶으면 이직을 하면 되는 것이며 최선을 다하면 상대방 내면에도 성령이 있기 때문에 성실함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양심이 굳어버린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만 어지간하면 모두가 상대방의 진심을 알기마련입니다.

내가 일을 함에 있어 주님(성령)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억울하다거나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지요.(23절)

무엇보다도 성령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육신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영적인 보상이 따른다는 사실을 압니다.

상속의 상을 받는다는 말은(ye shall receive the reward of the inheritance) 영생을 상속받는다는 예수님 말씀과 정확히 일치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19장29절)

그런데 25절은 번역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영어성경을 읽어보면 외모로 사람을 취하신다는 말은 없으며 사람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요.(there is no respect of persons)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불의한 일을 지시하고 행하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함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양심에 어긋남이 있는 행위 모두는 불의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점을 불의함으로 돌려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doeth wrong shall receive for the wrong which he hath done)

가끔씩 이런 성경말씀을 이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열심히 일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지요.

25절은 이와 같은 이들을 향해 무서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하고 있는 일들이 훗날 자신에게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또한 열심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든 이들은 보상이 돌아온다는 희망을 가져도 됩니다.

지금은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정말 성심성의껏 하게 되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올 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사이비 교주에게 속아서 전 재산을 탕진한 것은 어쩌라는 것이냐는 항변을 하지만 그조차도 그저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사이비교주에게 속은 것도 자신이 어리석어서이며 그 또한 업식(業識)의 작용으로 인한 일이지요.

이생이던 전생이든 지어놓은 불의한 일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 거라는 겁니다.

이 같은 일은 내가 속한 단체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신이 이용만 당했다 생각해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도 이용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면 쓰레기차를 피하고 똥차하고 박치기를 한 것과 같은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지어놓은 업이 돌아온 것인데 피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지요.

만약 본인의 업이 소멸되었다면 사이비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법입니다.

모든 이들의 내면에 성령이 있음을 알았는데 부처 아닌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남들이 사이비라 부르는 단체에서 95년 이후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으며 스승을 신과같이 모시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를 다니면서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확인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스승이나 목사님이 육신적인 말씀을 하실 때면 사람들로부터 존경심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일은 세상일이라 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직을 하면 되겠지만 이직을 해도 나에게 만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또다시 불만을 하게 됩니다.

사람을 사귀어도 똑같지요.

이 사람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고 저 사람은 저런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 문제없는 사람은 없으며 불만이나 불평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장이란 없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경을 통해 전도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And I have seen that nothing is better than that man should be happy in his activities, for that is his lot. For who will bring him to see what will occur after him?

 

 

자신의 일에 만족을 하더라도 육신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는 구분되어져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깨닫고 있는 이의 만족은 영원할 수 있지만 육에 속한 이는 만족이 제한적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그의 훗날을 보게 하여 데려 올 자가 누구냐를 묻고 있는 겁니다.(who will bring him to see what will occur after him?)

 

 

육에 속한 이의 만족은 그 자체로 보상받은 것이요 영에 속한 이의 만족은 보상받을 일만 남았으니 이비밀이 참으로 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