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회 목사님께서 나에게 성경말씀에 대해 물어오셨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제대로 된 뜻을 알 수 없다며 특별히 간청해 오신 겁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목사님의 육신이 내게 물어 온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혼이 나에게 질문을 한거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목사님이 제대로 된 뜻을 모르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나더러 바로잡아주라는 말씀을 목사님 내면의 성령께서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목사님의 내재하신 성령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육신과 직접적인 소통이 되지 않으므로 내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도록 부탁한 겁니다.
아마도 이러한 내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 드물겠지만 예수님도 나와 똑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Nevertheless I tell you the truth; It is expedient for you that I go away: for if I go not away, the Comforter will not come unto you; but if I depart, I will send him unto you.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요16:10)
Of righteousness, because I go to my Father, and ye see me no more;(KJV)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11)
7절에서 예수님은 진실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I tell you the truth)
그리고 자신이 가는 것이 너희들에게 하나의 방책일수 있다고 합니다.(It is expedient for you that I go away)
보혜사에 해당하는 the Comforter는 위로자로서 메시아를 뜻하지요.
그런데 예수자신이 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는 육신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보혜사가 육신을 가리킬 것 같으면 이미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다시 보낼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제자들이 육신 예수를 하나님이라 믿고 따름으로 인해 스스로의 몸 안에 내재하신 성령을 일깨우지 못하게 되는 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봐야 됩니다.
이렇게 감안하고 보게 되면 8절 내용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되살아나게 될 때 일어나는 일을 말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 성령을 믿지 않기 때문에 죄가 있다 말하고 있는 거지요.
성령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에 속한 자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설하고 있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을 깨닫게(드러나게) 되면 죄와는 무관한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의(義)에 대한일도 성령이 되살아난 이상 모든 것은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며 스스로가 의로워지게 된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빛이 드러나면 한 점의 어둠도 남아있지 않음)
더 이상 예수님에게 속해져 있지 않고 자신이 독립된 또 하나의 성령과 하나 된 육신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했으며 제자들이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않게 된다는 뜻으로 더 이상 예수님을 볼 수 없다 말해놓은 거지요.(10절)(ye see me no more)
뿐만 아니라 성령이 드러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권세들은 그 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금권(金權)이 통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빛이신 성령을 깨닫게 되면 물질로도 권력으로도 협박을 할 수가 없으며 그러한 일들은 하나의 살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해놓았습니다.(11절)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내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성령을 깨닫고 나면 의식의 변화가 분명하게 일어난다고 성경은 말해줍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한 이 내용은 성령이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또한 성령이 드러난 이는 삼라만상 안에 하나님의 품성인 성령이 들어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공의 영역이 무너지고 너와나의 구분이 없어져 만물동일체의 인식상태가 됩니다.
육신을 가진 이상 정보 공유의 법칙에 따라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거지요.
이러한 까닭에 예수님과 같이 성령이 드러난 분을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라 말하는 겁니다.
그가 성령으로서 우리들의 내면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을 감당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죄를 짓게 되면 성령도 함께 벌을 받는다는 거지요.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성령은 이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기에 7절과 같이 말해놓은 겁니다.
이러한 점을 불가(佛家)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생존당시에 재가(在家) 수행자 중에 부처를 이룬 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유마거사입니다.
어느 날 그가 심한 감기에 고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제자를 보내 병문안을 다녀오라 말했다고 합니다.
유마거사에게 다녀온 제자에게 상태가 어떠한가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이러한 답을 전해 받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유마거사가 부처를 이루었음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이미 견성을 하여 성불을 한 상태이지만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이사야서와 완전히 일치되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도들은 내말을 인정하지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령을 깨닫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또한 당면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신 성령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내재함을 알았고 하나님이신 성령이 내 인생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아는데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내린다 할지라도 그조차도 축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잘못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니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담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눅20:38)
하나님은 생명이시니 산사람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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