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살불살조(殺佛殺祖).

배가번드 2023. 12. 14.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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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요한복음이 예수님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기록했다 보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보는 이유는 4복음서 모두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요한복음은 자신의 영적체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복음서도 영적체험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긴 하지만 특히 요한복음은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령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놓은 것을 볼 때 이는 본인이 체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을 올곧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영적체험이 주어져야 합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가까운 제자들조차 성령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으니 오늘날의 기독교도들이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16:15)

All things that the Father hath are mine: therefore said I, that he shall take of mine, and shall shew it unto you.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요16:16)

A little while, and ye sha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e shall see me, because I go to the Father.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요16:17)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 이라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요16:18)

 

첫 구절부터 엄청난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말은(All things that the Father hath are mine)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며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떠나고 보혜사를 다시 보낸다는 말씀 후에 나온 말이지요.

여기에서 언급된 그는 보혜사(메시아)를 가리키며 성령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로서 모든 것의 주인인데 그것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알려준다고 하니(he shall take of mine, and shall shew it unto you) 그 또한 하나님과 하나 된 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 된 빛이신 성령으로 제자들에게 임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지만 아버지께로 돌아감으로 인해 또다시 볼 것이라 했습니다.(ye shall see me, because I go to the Father)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은 육신을 버린다는 말로서 영혼의 몸이 된다는 것이며 빛이신 성령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제자들이 당장은 볼 수 없지만 또다시 보게 된다고 말씀하신 거지요.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말씀의 깊은 뜻을 모르는 제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영적체험을 못해보았으니 당연히 이러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16,17절)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좀 더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요16: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at ye shall weep and lament, but the world shall rejoice: and ye shall be sorrowful, but your sorrow shall be turned into joy.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16:21)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22)

And ye now therefore have sorrow: but I will see you again, and your heart shall rejoice, and your joy no man taketh from you.

 

영혼의 세계에 대해 모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됨을 당연히 슬퍼할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기뻐한다 했는데 이 말씀인즉 물질 세상에 반하는 영적가르침을 주던 스승이 죽게 되는 것을 세상은 반긴다는 거지요.

사실 이 내용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반긴다는 뜻도 되지만 그보다는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 구도자의 내면에서 성령이 죽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육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내면에서 항상 걸림돌로 작용하던 성령이 죽어버리게 되면(잠들어버리면) 세상을 마음껏 즐기게 됨으로 기뻐할 거라는 겁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이들은 당연히 곡하고 애통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며 영적으로 보면 슬픈 일이 아니라 기뻐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0절)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믿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죽음은 그야말로 슬프고 애통해 할 일입니다.

하지만 슬픔은 즐거움이 되어 돌아온다고 하지요.(your sorrow shall be turned into joy)

이 같은 일은 마치 산통을 경험하는 산모와도 같아서 아이를 낳고나면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겁니다.(21절)

지금 당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일로 슬퍼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내면에서 성령이 되살아나게 되어 오히려 기뻐할 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2절에서 제자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제자들의 마음이 즐거울 것이며(your heart shall rejoice) 그러한 즐거움을 누구도 뺏어가지 못한다 한거지요.(your joy no man taketh from you)

이것이 만약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 같으면 누군가 뺏어갈 수도 있겠지만 내재하신 성령을 뺏어갈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불가(佛家)에서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살불살조(殺佛殺祖)”

 

풀어보면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가 나타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이지요.

조사는 스승을 가리키며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준다고 해도 결국에는 본인의 육신에 내재하는 빛이신 성령을 만나야 한다는 예수님가르침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리 성경책을 후비고 파보아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성령을 강제로 주입시켜 주었다는 말은 없지요.

본인의 강한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행동이 따라야 비로소 빛이신 성령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겁니다.

예수의 육신을 하나님처럼 여기고 따르는 것이야 자유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성령을 드러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마7:21)

만약 예수님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면 2천 년 전에 모든 사람을 영생의 하늘로 들어 올렸겠지만 그렇지 않았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 겁니다.

2천년동안 예수님이 보혜사를 보내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봐야하며 아직까지 예수의 공중 재림을 기다리는 모순점을 깨달아야한다는 말입니다.

본인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은 육신의 자유겠지만 무엇이 합당한 믿음인가라는 판단은 자신의 영혼이 합니다.

 

겸손의 미덕(美德)을 아는 영혼은 들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