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고난은 영혼이 깨어나기 위한 몸부림.

배가번드 2024. 4. 26.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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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이비 종교에 빠져 사람이 달라진 걸로 압니다.

음주가무에 능하던 사람이 갑자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명상을 하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러한 일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며 내가 걸어야할 길이 때가 되어 주어졌던 것뿐입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30대 중반에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인지 그 무렵 정말로 엄청난 일이 내게 생기게 되었던 거지요.

연거푸 부도를 세 번이나 당하고 머리가 갈라지는 고통이 온 것도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님을 훗날에야 알았던 겁니다.

알고 보면 인생길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괴로움의 순간마다 깊은 고민을 하고 사고(思考)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일들 모두가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밑거름이었던 셈이며 번뇌는 보리라는 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오던 일로서 어느 날 문득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어릴 때 마약장사를 하는 친구가 있었던데 가끔씩 집에 놀러오곤 했지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히로뽕이 전국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그 친구가 장사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씩 집에 놀러오면 다락방에서 팔에다 주사를 맞곤 했는데 나에게는 절대로 경험하지 못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이는 모르겠지만 나만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같이 어울려 다니며 패싸움도 하고 못된 짓을 일삼던 친구가 마약만큼은 하지 말라기에 이상했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압니다.

그때 친구가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친구의 입을 통해 내게 말을 해준 거라는 사실을 먼 훗날에야 알았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성장하여 결혼을 한 후에도 삶이 평탄치를 못했으며 항상 내면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영적갈망이 있었지요.

17살에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92년에 끊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담배를 쉽게 끊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며 십년이상을 꿈속에서 피우곤 했습니다.

95년에 명상단체에 입문을 하고나서도 꿈속에서 담배를 피웠으니 담배하나를 끊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꼴란 담배하나가 아니라 내 육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크게 보면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내의지의 표방(標榜)이며 습관과 관념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어느 날 내 눈앞에 놓인 책자하나를 집어 들게 만들었지요.

 

“즉각 깨닫는 열쇠”

 

이 책을 들고 무려 두 달간을 고민했었습니다.

작은 소책자에 담긴 글은 집중하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분량이었지만 내용만큼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 이었지요.

고기는 물론 술, 담배, 마약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하루 두시간반 이상을 명상해야한다는 것은 세상을 버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겼기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 책을 집어든 순간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 순간이 온 것을 직감할 수 있었기에 그 고민은 더욱 컸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입문을 한 후 내가 처음 계획했던 것은 가족들과의 여행이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전국여행길에 나섰던 것은 단순하게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걸어가야 할 험난한 길을 앞두고 가족들과 이별하는 심정으로 다녀왔던 겁니다.

얼마나 많은 아픔을 가족들에게 주어야할지 내면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요.

지금이야 많이 안정이 되었지만 환란의 순간들이 있었고 엄청난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언제나 하루 6시간 이상의 관음명상을 했으며 영육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지속했습니다.

꿈속에서조차 명상을 했을 정도였으니 24시간 깨어있으라는 성경말씀을 실천한거나 다름없었지요.(눅21:36절)

이러한 과거가 있어서인지 중국으로 호주로 다니면서 겪어야했던 모든 순간들조차 한 치의 오차 없는 하나님의 안배였음을 이제는 압니다.

내가 만약 사업이 번창하여 중국에서든 호주에서든 물질적으로 성공했더라면 성경을 연구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의 나 홀로목사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동생이 내게 성경공부를 권유한 것은 성령이신 하나님이 내게 전해준 선물이자 축복이라 여겨집니다.

또한 이것은 깊은 묵상(黙想)중에 보았던 비전(Vision)에 대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전거 뒷좌석에 누군가를 태운 체 절벽 길을 걸었던 것은 내가 해야만 하는 임무와도 같은 것이며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맞이해야하는 운명과도 같은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모든 과정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2:3)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2:4)

Then I said, I am cast out of thy sight; yet I will look again toward thy holy temple.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욘2:9)

But I will sacrifice unto thee with the voice of thanksgiving; I will pay that that I have vowed. Salvation is of the LORD.

 

우리가 세파에 시달리며 온갖 환란의 시간을 맞이할 때는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께서 깊은 바다 속에 던지셨다 말하고 있는 겁니다.(3절)

그렇지만 요나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조차 하나님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4절)

겉보기에는 하나님 눈 밖에 난 것(I am cast out of thy sight) 같아 보일지라도 내적으로는 하나님이신 성령이 함께함을 믿고 있었다는 말입니다.(I will look again toward thy holy temple)

그렇기 때문에 감사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거지요.(I will sacrifice unto thee with the voice of thanksgiving)

이렇게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숱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빛이신 성령이 드러나게 되면(빛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환하게 보게 되며 자신이 심어놓은 것들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에 서원을 갚겠다고 한 겁니다.(I will pay that that I have vowed)

매순간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을 하는 거지요.(Salvation is of the LORD)

이 같은 일은 요나만이 겪었던 일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많은 선지자들이 공히 같은 길을 걸었으며 영적완성을 이루었던 겁니다.

삶의 형태는 달라보일지라도 얼개는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도착지점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던 것처럼 우리네 인생의 고통과 고난은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믿음을 유지해야만 하며 늘 깨어있어 기도해야 됩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절)

 

인자는 예수님과 같이 성령과 하나 되신 분을 가리킴으로 성령자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빛이신 성령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 누군가의 앞에 선다는 말이 아니라 내재하신 성령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어떤 부끄러운 순간도 없어야하거나 있어서는 안 될 일은 아니며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 일입니다.

이 비밀은 실로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