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하늘도 사람에게 변명할 기회를 준다.

배가번드 2024. 7. 12.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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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성경은 사람이 썼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머리로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반드시 영적인 세계를 경험해야만 쓸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책을 읽듯이 해서는 속뜻을 알 길이 없으며 영적인 체험을 했을 때라야 그 속살을 드러냅니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기분나빠하겠지만 실상을 보자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액면대로 보자면 너무나 밋밋해져버리지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사도행전 내용도 그저 바울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겪었던 일을 기록해놓은 것으로 보이며 이사람 저 사람에게 심판받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속 깊은 뜻을 보면 성령과 하나 되는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얻어야할 것도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오늘도 변함없이 영생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여 바울의 족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수일 후에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샤랴에 와서(행25:13)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행25:14)

아그립바의 뜻은 “독자”이고 버니게의 뜻은 “승리자”이며 베스도의 뜻은 “기쁨, 즐거움”입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여 보면 물질세상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찾던 사람이 하나님의 독자로서 승리자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13절)

지난시간에 바울을 가이사에게 데리고 갈 것처럼 말해놓았으므로 또다시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는 것은 이 내용을 액면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것도 왕이 도착하자마자 보고 한 것도 아니고 여러 날이 지난 후에 말을 했다는 것은 담긴 뜻이 따로 있음을 알라는 뜻입니다.(14절)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것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점을 좀 더 확실하게 알게 될 거라 여겨집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행25:15)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행25:16)

액면 적으로 보면 예루살렘의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고소한 걸로 보이지만 성령에 비추어 바울의 죄상을 밝혀보려 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15절)

로마의 뜻은“세력, 힘, 강함”으로 물질계를 다스리는 힘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16절 내용은 물질계에 속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심판을 받기 전에 자신에 대한 변론을 할 자유가 주어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무턱대로 하늘의 심판을 논할 것이 아니라 물질세상의 방식대로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뜻이지요.

자신들의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함부로 심판하는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들어야할 말씀입니다.

물질세상의 법도 이러할 진데 어찌 하늘이 사람에게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겠느냐는 말이니 영적체험을 하였다는 바울과 같은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베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 왔으나(행25:17)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행25:18)

Against whom when the accusers stood up, they brought none accusation of such things as I supposed: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행25:19)

But had certain questions against him of their own superstition, and of one Jesus, which was dead, whom Paul affirmed to be alive.

17절에 여기에 왔다는 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이사랴에 내려왔다는 말이지요.

성전으로부터 세상에 내려왔으니 성령의 입장에서 심판의 자리에 임했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에 비추어 바울의 죄를 심판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을 반대하여 일어선 사람들이(Against whom when the accusers stood up) 성령의(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베스도) 입장에서 죄 되는 일을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18절)

이 대목은 물질계의 일로도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가이사랴에 있는 베스도)

베스도를 성전에서 내려왔다 생각하면 성령이 심판하는 것이 되고 가이사랴에 머물고 있다 여기면 육의 심판이 됨으로 영육모두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영육 양면으로 보더라도 바울의 가르침에 문제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하여 문제 삼은 이유는(had certain questions against him) 자신들의 미신과 죽은 예수 때문이라고 합니다.(of their own superstition, and of one Jesus, which was dead)

바울이 죽은 예수를 살았다고 단언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반대하여 일어섰다는 거지요.

결국 다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은 확실히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음내용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행25:20)

And because I doubted of such manner of questions, I asked him whether he would go to Jerusalem, and there be judged of these matters.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두라 명하였노라 하니(행25:21)

But when Paul had appealed to be reserved unto the hearing of Augustus, I commanded him to be kept till I might send him to Caesar.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행25:22)

Then Agrippa said unto Festus, I would also hear the man myself. To morrow, said he, thou shalt hear him.

베스도 역시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난 일에 대한 질문의 방식이 궁금했다 말하고 있습니다.(I doubted of such manner of questions)

그래서 성전(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늘의 심판을 받아볼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겁니다.(20절)

부활에 관한 일은 영적인 문제인지라 하늘의 심판이 마땅하다는 것인데 바울은 오히려 물질세상의 법도에 따르겠다 말하고 있습니다.(21절)

황제의 들음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다고 했으니(Paul had appealed to be reserved unto the hearing of Augustus) 물질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복음전하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아우구스투스와 가이사가(둘 다 로마황제의 칭호) 한꺼번에 등장한 것은 이 내용에 담긴 뜻이 따로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22절에 아그립바는 독생자를 뜻하므로 성령과 하나 되려면 바울을 말을 들어야한다는 뜻이 됩니다.

즉, 기쁨과 즐거움(베스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항상 성령 깨닫는 일을 다음으로 미룬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을 감안하여볼 때 다음시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이며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과 물질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시각 차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다음시간을 기약하며 오늘 강해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