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구도자는 고행을 자초한다.

배가번드 2024. 8. 6.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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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회 다녀온 보고서(?)를 쓰느라 잠시 덮어두었던 사도행전을 다시 펼쳐보겠습니다.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행27:12)

 

이 내용은 앞의 내용을 모르고서는 해석이 안 됩니다.

거기서 떠났다 한 것은 8절에서 언급된 미항(The fair havens=아름다운 안식처)이라 불리는 곳으로부터 떠났다는 말이지요.

지난시간 보았듯이 바울은 영적항해에 있어 숱한 어려움이 있을 것을 말했으므로 이 내용은 영적항해를 가리킨다고 봐야 합니다.

뵈닉스의 뜻은 “종려나무”로서 에덴동산에 최초로 심어진 나무를 비유한 것이고 그레데의 뜻은 “방언”이므로 둘 다 영적인 여정을 뜻하며 선택에 따라 방향이 갈라진다는 점을 동남과 동북으로 묘사한 겁니다.

다 같이 영적인 길을 걷지만(동쪽= 해 뜨는 곳= 에덴동산 동편에 심어진 영생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과정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영적인 항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행27:13)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행27:14)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행27:15)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행27:16)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행27:17)

Which when they had taken up, they used helps, undergirding the ship; and, fearing lest they should fall into the quicksands, strake sail, and so were driven.

 

동남풍은 계절풍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비유한 겁니다.

처음 영적인 길을 걷게 되면 매사가 순풍에 닻을 단 듯 순조롭게 흘러간다는 뜻이지요.(13절)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역경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라굴로는 헬라어로서 유로(동풍)과 아퀼로(북동풍)의 합성어이며 폭풍을 가리킵니다.(14절)

즉, 영적인 여정에서 돌발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항거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지게 되면 세파에 몸을 맡겨둘 수밖에 없다는 점을 15절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16절에 거루는 돛이 없는 배를 가리키며 가우다는 그레데의 반대방향인 서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영적인 길과 반대되는 길을 선택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17절을 직역해보면 그들은 모래톱에 빠질까 두려워(fearing lest they should fall into the quicksands) 항해의 배밑판을(strake sail) 뒷받침하는(undergirding the ship) 도움을 주기(they used helps) 시작하며(they had taken up), 운전 했다(so were driven)입니다.

육신(배)을 도우는 일을 하며 영적인 길을 걸었다는 점을 말하기위해 이렇게 기록해놓은 것인데 [NIV]성경을 번역한 탓에 이런 내용으로 번역이 된 겁니다.

영적인 길을 걷는 사람이 해 뜨는 동쪽(빛=성령)이나 순풍이 부는 동남쪽을 향해야하는데 고행을 자초했음을 말하고자 한거지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러한 해석의 타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행27:18)

And we being exceedingly tossed with a tempest, the next day they lightened the ship;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행27:19)

And the third day we cast out with our own hands the tackling of the ship.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행27:20)

 

풍랑으로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반발심에 고개를 쳐들고(being exceedingly tossed with a tempest) 배를 가볍게 했다고 합니다.(they lightened the ship)

하나님이 주시는 역경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반발심을 가졌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19절에서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밧줄을 그들 스스로 버렸다고 했는데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크고 작은 빛조차 보이지 않고 풍랑은 여전했으며 구원의 희망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20절)

그렇지만 이배에는 성령과 하나 된 바울이 함께 하고 있었지요.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행27:21)

But after long abstinence Paul stood forth in the midst of them, and said, Sirs, ye should have hearkened unto me, and not have loosed from Crete, and to have gained this harm and loss.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행27:22)

And now I exhort you to be of good cheer: for there shall be no loss of any man's life among you, but of the ship.

 

21절 내용은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조차 성령은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오랜 금욕 끝에 그들의 중심에서 바울이 서서 말했다는 것은(after long abstinence Paul stood forth in the midst of them) 내재하신 성령이 말해준다는 거지요.

또한 성령과 하나 된 영적스승의 말씀을 따라야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바울이 기운 내라 말하고 있으며(to be of good cheer) 손상되는 것은 오직 육신(배)일 뿐 영혼이 아니라 말하고 있습니다.(no loss of any man's life among you, but of the ship)

이것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점을 다음 내용에서 정확하게 밝혀줍니다.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행27:23)

For there stood by me this night the angel of God, whose I am, and whom I serve,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27:24)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5)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행27:26)

Howbeit we must be cast upon a certain island.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는(the angel of God) 성령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두려워 말라 했으며 가이사 앞에 서야만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사람의 시종역할을 하는 존재일 것 같으면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요.

바울이 성령과 하나 된 인자는 맞지만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물질세상의 법칙아래 놓여있게 됨을 비유한거지요.(가이사=세상권력)

그렇지만 바울과 함께 하는 이들은 영혼의 구원을 받을 것인 만큼(함께 행선함=구원의 방주에 올라탄 것과 같음) 걱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 섬에 걸린다 했는데 이는 배가 섬에 표류하여 정박한다는 뜻이 아니라 역경을 함께 함을 비유한 겁니다.

바울을 믿고 따르는 이상 성령과 함께 하는 것이며 고난과 역경도 같이 헤쳐 나갈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인즉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