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정신과 의사이신 이 근후박사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90년 인생을 돌아보며 가장 후회되는 일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무척 감동을 받게 되었지요.
하나는 선생님을 반대하여 자기주장을 강하게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께 향을 사다드리지 못한 점이라는 겁니다.
교수님 이름까지 불렀다는 점을 볼 때 사제 간에 심한 언쟁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불자이신 어머님에게 네팔에서 팔고 있는 향을 가격흥정을 하느라 못 사 드렸다는 점을 보면 물질적 가치관으로 인해 사람들과 숱하게 상처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두 가지만 말씀하셨지만 박사님의 성품상 한 두 사람에게 상처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 대든 일로 학교로부터 자퇴를 권유받을 정도면 보통 강직한 분이 아니며 룸비니동산에서 어린아이가 파는 향을 가격흥정 때문에 못살 정도면 이해타산(利害打算)이 정도를 넘어선다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결국 인생말년에 서고 보니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점이 후회로 남더라는 말입니다.
이 같은 일은 비단 90세가 넘어서 일어나는 자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삶의 끝자락에 선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애플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이런 사람 중에 하납니다.
그가 남긴 말이 성공적인 삶을 살기보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를 먼저 찾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한다 말했음을 볼 때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찾는 것은 그야말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Wherefore I perceive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than that a man should rejoice in his own works; for that is his portion: for who shall bring him to see what shall be after him?
자신의 일이라 하지 않고 구태여 자기 자신의 일이라(in his own works) 말한 것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의 일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복(分福)이란 타고난 복을 가리키므로 맡은바 역할을 뜻합니다.
자신이 지어놓은 복덕에 따라 이생에서 역할이 주어진다는 말이지요.
지난 생에서 영적인 길을 닦아 놓았다면 이번 생에서 또다시 그러한 길을 걷게 될 것이고 이번 생에서 영적인 길을 걷게 되면 다음 생에는 영생을 상속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자신의 역할에 즐거워하는 것보다(than that a man should rejoice in his own works) 더 좋은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better) 말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전생에 무엇을 하고 지낸지는 지금현재의 상황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감에 있어 자신도 모르게 영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전생에 영적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는 거지요.
영적인 길은 걸었으나 완성을 이루지 못하였거나 혹은 다음 생에는 구도자의 삶이 아니라 물질적인 삶을 살아보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또, 어떤 이가 물질적인 가난이 뼈에 사무치게 한스러워 원망하며 살다 죽었을 경우 오로지 물질을 최고로 여기는 삶을 살 것이 분명합니다.
지어놓은 복덕은 없고 물질에 대한 욕망만 가득할 경우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지요.
이러한 전생에 대한 일들은 예체능계의 인사들의 삶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절대음감을 가졌거나 타고난 운동신경과 끼를 발산하는 사람들은 이번 생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역할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생이란 있다고 봐야하는 겁니다.
다만 전생은 참고할 상황일 뿐 그것이 인생의 연장선상에 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망치는 꼴이 되고 말지요.
예를 들어 누군가의 전생이 왕이었다고 쳤을 때 현실에서의 삶과 비교하게 되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어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타인들을 자신의 신하정도로 생각하게 되어 뭇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되고 사회생활이 어렵게 되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전생이 누군가의 하인이었다고 했을 때 의기소침하여 무엇이든 자신감 없이 대하게 됨으로 본인으로 하여금 나락으로 떨어진 삶을 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자신의 분복(역할)에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심어놓은 복덕으로 인하여 지금의 역할이 주어졌다는 점을 인식한다는 것은 영혼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인식했다는 뜻이지요.
왕의 역할이 되었건 하인의 역할이 주어졌건 상관없이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세계를 알 때뿐이라는 점을 볼 때 전도자는 육신의 덧없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눅7:28)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더 큰 선지자는 없다고 말합니다.(not a greater prophet than John the Baptist)
이는 선지자 중에 크고 작은이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보면 크고 작은 것이 있지만 진정한 영혼의 세계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빛이신 성령을 설명하기위해 육신적인 일을 비유로 든 것일 뿐 선지자 중에 크고 작은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만약 영혼의 세계에도 크고 작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특정한 한사람밖에 없어야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하나 된 이들이 무수하게 많으며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하나님이 존재 한다 성경은 말하고 있으므로 진정한 영혼은 성령이며 성령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의 속성과 동일한 빛의 존재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영혼의 크기에 있어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있다는 말은 전체와 하나 되지 못한 인식에서 나온 거라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같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는 하나님이 만드신 토기와 같으며 그릇 안에는 어김없이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있음은 물론입니다.
이러할진대 짐승과 사람의 영혼이 다르다 말하는 이는 영적인식이 아직 온전하게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경우 성경의 다음말씀을 통해 이 같은 인식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눅20:38)
하나님이 모든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모든 생명체에 성령이 담겨있음을 뜻하는 겁니다.
만약 이것이 사람에게만 적용된다면 만물을 만드셨다는 성경말씀에 위배(違背)됨으로 이렇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경우 그 어떤 생명체도 경시하지 않으며 나름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여깁니다.
같은 맥락으로 나의 전생이 스님이었을 수도 있고 신부님이었을 때도 있었으며 무지렁이 백성이나 노예였던 적도 있었을 것이라 여기고 있으며 심지어 짐승이었을 수도 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성령이 깨어나 사물을 밝히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과거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뿐이지요.
하여 아직도 전체적인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면 성령이 드러나지 못한 것이며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는 겁니다.
짐승이었을 때는 벌을 받는 중이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기도하지도 못한 채 지냈던 것이며 지금은 벌 받는 시기가 지나 하나님도 알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범사에 감사하고 있으며 그 어떤 순간조차 하나님이 주신다는 점을 확신합니다.
다른 이의 경우는 내 알바 아니고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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