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간은 구약연구에 몰두를 했습니다.
로마서 10장에서 바울이 인용한 구약 내용이 너무나 중요하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로마서 강해를 하는 동안 느꼈던 점은 예수님을 비롯한 사도들 모두가 구약성경에 정통(正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신약내용이 구약을 인용하거나 근거하여 기록되고 있으므로 구약과 신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므로 구약에 대해 제대로 된 해석을 할 수 없다면 신약의 말씀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볼 수 없으며 신약의 예수를 구약의 하나님과 동일시한다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같다 말하지만 여전히 구약속의 여호와와 신약의 그리스도를 다른 차원의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예수와 사도들의 복음전파가 이스라엘의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 나름 성경에 정통하다 생각하는 지도급 인사들을 상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신약의 가르침이 구약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으로 성경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구약에 대해 제대로 된 해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판의 자리에서 결코 내려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유대교 모두가 구약성경을 믿는데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구약을 제대로 아는 이는 신약의 예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신약의 예수를 하나님처럼 여긴다면 구약을 믿는 모든 이들을 형제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따라서 타 종교인을 원수처럼 여긴다면 아직은 영생의 하늘에 오를 자격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봐야하며 심판의 하늘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심판의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만 있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깊숙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예수의 제자도 하나님의 제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고 있는 겁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33절)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신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하며 그보다 앞서 성령과 하나 되어 인자가 된 이들의 말씀을 믿어야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재촉하여 바울로부터 성령과 하나 되는 방법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11:1)
1절 말씀은 10장의 연장으로 내재하신 성령은 결코 우리를 버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몸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성령은 우리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한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이자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다 말하고 있는 거지요.
또한 베냐민 지파라 했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열두 번째 아들로 그 뜻은 “오른손의 아들”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3)과 사람(4)이 완전히 연합(3×4=12)되었으므로 바울자신이 정의로운(오른손) 사람, 즉 인자가 되었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점을 모르면 바울이 자신을 로마사람이라 밝힌 점을 두고 무의미한 논쟁을 벌일 겁니다.(행22장8절 참조)
진정한 하나님 백성이라면 민족은 물론 국경과 혈통을 넘어서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께 불경을 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롬11:2)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롬11:3)
Lord, they have killed thy prophets, and digged down thine altars; and I am left alone, and they seek my life.
이 말씀은 열왕기를 인용한 내용임으로 잠시 보겠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0)
And he said, I have been very jealous for the LORD God of hosts: for the children of Israel have forsaken thy covenant, thrown down thine altars, and slain thy prophets with the sword; and I, even I only, am left; and they seek my life, to take it away.
jealous는 질투의 뜻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지키려고 애쓴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는 이들 가운에 성령에 대해 모르는 이들은 육에 속하여 있기에 심판의 칼을 함부로 휘둘러 선지자들은 물론 하나님과의 언약도 훼손한다고 합니다.
이 말인즉, 직접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아니라 단절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과 하나 된 엘리야만 남았다고 한 것이며(I, even I only, am left) 그들이 생명(성령)을 찾아 없애려한다 한 겁니다.(to take it away)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야의 인자됨을 몰라보고 공격하는 것처럼 바울 및 사도들 역시 공격당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공격당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롬11:4)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11:5)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11:6)
이 내용역시 열왕기를 인용한것이지만 시간관계로 올리지는 않겠습니다.(열왕기상19장 참조)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물질 세상에(바알=소유, 주인) 무릎 꿇지 않은 사람을 자신에게 남겨둔다 했습니다.(4절)
칠천 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나타내는 7과 완전한 숫자10(0)의 연합을 나타내는 숫자로서(7×1000=7000) 성령을 가리킵니다.
물질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성령과 하나 된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해놓은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과거 엘리야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성령과 하나 되는 이가 있었다는 뜻이지요.(5절)
그런데 6절 말씀은 심도 있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성령과 하나 되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말하고 있음으로 그 속뜻을 헤아려야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잘못 받아들이면 노력하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노력은 하되 결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은 하되 결과는 하나님께 올곧게 맡기라는 거지요.
내가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여길 것이 아니라 그저 일상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따르며 범사에 감사하기를 생활화 하다보면 하나님은혜는 저절로 주어지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일에 대해 다음시간에는 바울이 좀 더 상세하게 말해줄 것이므로 기대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여기에서 쉬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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