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지체(肢體)와 같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누군가는 항문(肛門)의 역할을, 누군가는 입의 역할을, 혹은 누군가는 머리의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손과 발의 역할을 하며 그 모두는 없어서는 안 될 역할들이라 했지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 대부분은 입이나 머리의 역할을 중시여길 뿐 항문이나 손발의 역할을 중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신체의 그 어떤 부분도 소중하다 말하고 있으며 나 홀로목사 역시 말하는 입과 듣는 귀가 둘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듣는 귀가 없는데 입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입이 없다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냐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서 분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종(警鐘)을 울립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고전12:24)
For our comely parts have no need: but God hath tempered the body together, having given more abundant honour to that part which lacked.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12:25)
That there should be no schism in the body; but that the members should have the same care one for another.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our comely parts) 성령을 가리키며 곧 하나님을 뜻합니다.
즉, 사람들 눈에는 귀하고 천하며 중하고 경한 것이 있어서 억지로 의미부여를 하여 가치를 높여야하지만 하나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24절)
우리가 만약 간만 위하면 다른 장기들이 손상을 입을 수 있고 위만 소중하게 여기게 되면 다른 장기가 손상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신체 각 부위를 상호보완관계로 만들어 놓았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25절에서 몸 가운데 분립(分立)이 없고(no schism in the body) 지체가 서로 돌보게 하셨다 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우리가 왜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12:26)
And whether one member suffer, all the members suffer with it; or one member be honoured, all the members rejoice with it.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7)
Now ye are the body of Christ, and members in particular.
우리가 손가락 하나가 부러지면 손가락만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아프며 발이 따뜻하면 온몸이 따뜻하게 여겨지는 것과 같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면 고통이나 영광도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26절)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을 때라는(ye are the body of Christ) 겁니다.(27절)
즉, 하나님 품안에 들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자각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 말씀을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적용을 하겠지만 확장된 인식으로 보면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들지 않는 이가 없으므로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모든 사람의 인생에 적용된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자신들만의 것이라 주장하겠지만 바울의 다음말씀을 들어보면 그렇게만 여길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전12:28)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고전12:29)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고전12:30)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But covet earnestly the best gifts: and yet shew I unto you a more excellent way.
우리가 이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분명 교회에만 적용 된다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2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신 거라는 사실을 볼 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똑같은 성경을 배우지만 많은 종파가 생긴 것만 보더라도 이 같은 나 홀로목사의 말은 틀린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종파의 어떤 교회를 다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욱 중요한 겁니다.
바울도 말씀하셨다시피 모두가 사도가 되거나 선지자 및 교사일수는 없으며 기적을 행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병 고치는 은사와 방언을 말하며 그것을 통역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지요.
이 말씀인즉, 각자가 맡은 바 직분과 역할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31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으므로 이 대목에 주목(注目)해야 합니다.
기적과 이적 및 병고치고 방언하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갈망하는 최고의 선물이라(covet earnestly the best gifts) 했으니 성령의 역사하심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뒷부분에서 보다 좋은 길을(a more excellent way) 보여준다 한 겁니다.(shew I unto you)
바울이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으로서 성령을 앙망(仰望)하는 이들에게 성령(바울)이 나타나 가장 좋은 길을 보여줄 거라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적이나 이적을 좋아하지만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성령의 임하심이야말로 기적(奇蹟) 중에 기적이요 이적(異蹟) 중에 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던 모르던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신다는 점을 확신해야한다는 거지요.
비록 우리자신이 육신적으로는 보잘 것 없고 물질적으로 빈곤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신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으며 현실에 만족하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바 있지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1)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2)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이 말씀은 믿음의 길을 걷지 않는 이들처럼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성령으로 내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두 아심으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이미 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먼저 구해야할 것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보다 하나님 왕국이라 말하고 있는 거지요.(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그러므로 하나님 왕국을 찾은 이는 맡은바 직분이 돌멩이에 불과하다해도 만족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부잣집 장식장에 진열된 수석은 못되더라도 지구를 장식하는 돌멩이라는 인식을 할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 홀로목사는 약속의 땅 가나안(뜻: 낮은 지대)을 좋아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12장의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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