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말씀과 성령에 초점을 맞추라.

배가번드 2025. 4. 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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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덮어두었던 성경을 다시 펼쳐보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고후3:1)

Do we begin again to commend ourselves? or need we, as some others, epistles of commendation to you, or letters of commendation from you?

 

3장 첫머리부터 재미있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자신이 또다시 추천하기를 시작하거나(we begin again to commend ourselves) 다른 이들처럼(as some others) 너희에게 명령하는 사도나(epistles of commendation to you) 너희에게서 추천서 받는 일을(letters of commendation from you) 필요로 하는가를(need we) 묻고 있지요.

이 말씀은 성령의 내재함을 모르는 일반인들처럼 외형적인 일로서 교훈을 주고받는 일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뜻입니다.

육신이 성전이고 성전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들어있는데 어찌 외부에서 해답을 찾고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후3:2)

Ye are our epistle written in our hearts, known and read of all men: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3:3)

Forasmuch as ye are manifestly declared to be the epistle of Christ ministered by us,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in tables of stone, but in fleshy tables of the heart.

 

너희는 우리사도들의 마음에 썼기에(our epistle written in our hearts)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다(known and read of all men) 했지요.(2절)

고린도후서 2장에서 보았듯이 사도들은 하나님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성령과 하나 되었으므로 성령으로서 모든 사람들 안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록 육신은 다르지만 내적으로 성령이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3절에서 우리로 말미암아(by us) 그리스도 목자인 사도가 되어(to be the epistle of Christ ministered) 분명히 선언되어졌다(manifestly declared)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사도들로부터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내재하신 성령이 깨어났음으로(연결고리가 형성되었으므로) 사도와 동일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잉크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라 했고(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돌 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 안에 썼다고 합니다.(in fleshy tables of the heart)

진정으로 성령의 내재하심을 믿고 확신한다면 더 이상 외부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고후3:4)

And such trust have we through Christ to God-ward:

 

그리스도를 통하여(through Christ) 하나님이 내린 것이라(to God-ward)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매달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모범을 보여준 것처럼 우리역시 성령으로 거듭났음을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3:5)

Not that we are sufficient of ourselves to think any thing as of ourselves; but our sufficiency is of God;

 

모든 것들이 우리의 것인 것처럼(any thing as of ourselves) 스스로 충분하다 생각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만족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라고(our sufficiency is of God) 합니다.

물심양면으로 풍족해지면 교만에 빠져 육신으로 신이 된 것처럼 행동하게 됨으로 스스로 경계하라는 뜻이지요.

진정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이렇게 교만할 것이 아니라 겸손에 겸손을 거듭하게 될 것이며 주어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욱 머리를 조아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서 우리에게 잣대로 삼을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3:6)

Who also hath made us able ministers of the new testament; 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eth, but the spirit giveth life.

 

한글성경은 “the letter”을 성경조문으로 번역했지만 이는 문자를 가리키는 동시에 물질적인 것들을 통틀어 비유했다고 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의 직분을 주시는 것은 영에 따른 일로서 문자나 외적으로 주어지는 물질적인 일들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지식적으로 아무리 뛰어나고 명석한 두뇌로 성경을 달달 외운다 해도 소용이 없으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명예를 얻는다 할지라도 그 모두는 영원하지 않아 사라질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고후3:7)

But if the ministration of death, written and engraven in stones, was glorious,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behold the face of Moses for the glory of his countenance; which glory was to be done away:

 

돌에 새겨져 쓰인 죽음의 직분도(the ministration of death, written and engraven in stones)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the children of Israel) 영광되었다고(was glorious) 합니다.

영적으로 초보자인 경우 외부의 가르침을 영광되게 여겨 스승의 육신조차 함부로 보기 어려워한다는 뜻이지요.

이 말씀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난일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일은 초보자의 경우에는 있을 수 있으나 영적으로 성장하여 내재하신 성령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7절 마지막 부분에 없어질 영광이라 말하고 있습니다.(glory was to be done away)

사람의 육신이 아무리 영광되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임으로 썩어질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말씀과 성령에 초점을 맞추라는 뜻입니다.

이런 일을 불가(佛家)에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 말하고 있지요.

이렇게 해서 3장의 첫째시간을 마쳤으니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