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

배가번드 2025. 12. 5.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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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후서 2장에는 직접적으로 구약의 내용이 인용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인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을 인용하였으므로 결국 바울의 가르침도 구약에 근거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오늘은 그 내용을 중심으로 상고(相考)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그러면 먼저 바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살후2:7)

 

이 말씀은 예수님의 다음 가르침과 동일한 겁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24:15)

When ye therefore shall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 stand in the holy place, (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24:16)

Then let them which be in Judaea flee into the mountains:

 

다니엘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인자가 된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 역시 그러한 선지자 중에 하나이며 자신의 신구의 모두를 심판하는 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인물이지요.

그리고 15절에서 말하는 거룩한 장소는(in the holy place) 성전을 가리키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은(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성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게 되면 16절은 하나님 찬양하는 사람은(유대에 있는 자들)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이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산은 물질세상의 높은 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인식의 세계를 뜻합니다.

즉, 육신을 성전으로 만들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물질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높은 의식의 세계로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구약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읽을 자는 깨달으라는 말을 해놓은 거지요.(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그렇다면 다니엘서를 보고 난후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9:26)

And after threescore and two weeks shall Messiah be cut off, but not for himself: and the people of the prince that shall come shall 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and the end thereof shall be with a flood, and unto the end of the war desolations are determined.

 

62주는(threescore and two weeks) 풀어놓아야 이해가 되는 숫자입니다.

6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고 성령으로 거듭난다는(3×2=6) 뜻이고 10은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이며(6×10=60) 2는 사람의 숫자이자 증거의 숫자, 그리고 7은(weeks)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뜻합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확실히 깨달아 더 이상 구원자가 필요 없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메시아와 끊어진다고 했으며(shall Messiah be cut off) 자신 때문은 아니라고 했는데(but not for himself) 내재하신 성령이 드러났으므로 더 이상 메시아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왕자는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서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다가올 왕자의 백성은(the people of the prince) 성읍과 안식처를 파괴할 것이라(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한 겁니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육적속성과 고정관념들이 깨어지는 것을 비유로서 말하고 있는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그 끝은 홍수와 함께 있을 것이며(the end thereof shall be with a flood) 전쟁의 종말이 결정되어질 때까지라고(unto the end of the war desolations are determined) 했습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육적속성과 고정관념들이 무너지는 일이 계속될 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다음 내용역시 매끄럽게 연결이 됩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단9:27)

And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and in the midst of the week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

 

이레(7)동안의 약속이란 완전하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뜻합니다.

그가 한주동안(for one week) 많은 이와 더불어(with many) 약속을 확인한다고(confirm the covenant) 했으니 성령이 드러나면 하나님과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주중에(in the midst of the week) 그가 황량하게 만들기로 한(he shall make it desolate) 혐오감의 과도한 확산을 위하여(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희생과 의무를 멈추게 한다(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 했는데 이는 성령이 드러나기까지는 갖은 고행을 필요로 하지만 어느 정도 완숙의 경지에 접어들면 평화로워 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완성될 때까지(even until the consummation) 황량한자에게(upon the desolate) 쏟아질 것이 확정되어졌다 했는데(determined shall be poured) 이는 영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육신의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일이 지속적으로 주어지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한번 성령을 깨달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돈오돈수가 아니라 성령의 내재하심을 알고난후 지속적으로 닦아나가는 돈오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보니 바울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영생의 하늘로 오를 때까지 계속해서 시험받게 된다는 뜻임을 알게 되지요.

이러한 까닭에 영적 전쟁에 나선 구도자들은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체험과 신통력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시험에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잔재주에 능한 손오공마냥 하나님이 주신 신통력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 무리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들을 위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육신은 성전이요 성전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내재하므로 그리스도는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상고(相考)의 시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