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3장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여러 말 필요 없이 곧바로 바울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3:13)
But ye, brethren, be not weary in well doing.[KJV]
And as for you, brothers, never tire of doing what is right[NIV]
좋은 일을 함에 있어(in well doing) 싫증내지 말라고(be not weary) 합니다.[KJV]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는(of doing what is right)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완성에 이를 때까지 노력하라는 말이지요.[NIV]
지금 이 말씀은 지난 시간의 연장으로 바울이 성령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영적 여정을 완주하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겁니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살후3:14)
And if any man obey not our word by this epistle, note that man, and have no company with him, that he may be ashamed.
이 말씀을 육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형제들에게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상대하지 말라는 말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바울이 사이비교주나 다름없으며 성경이 진리를 담고 있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말씀은 바울 및 사도들이 성령의 입장에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하며 그러한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불꽃을 나누어받았다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봐야 합니다.
앞서 우리가 보았듯이 바울처럼 모범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성령과 하나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도들 모두가 한 치의 욕심도 없이 오로지 형제들을 위한 헌신과 봉사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워 할 일이라(he may be ashamed)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아직까지 성숙하지 못한 어린영혼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살후3:15)
Yet count him not as an enemy, but admonish him as a brother.
비록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더라도 그에게 조차 성령이 내재함으로 형제처럼 그를 충고하라 했습니다.(admonish him as a brother)
이 말씀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생활에서 무척 중요하게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다보면 간혹 실망스럽게 행동하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상식 밖으로 행동하는가 하면 이치에 맞지도 않는 주장을 하며 주위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도저히 형제라고 여겨지지 않지요.
이 같은 일은 지난 30년 동안 경험했던 일로서 지금까지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같은 단체에 속해져 있는 이들을 통해 이러한 일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일반인들과 더불어 이런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형제의 범위를 넓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성령을 담고 있는 그릇이고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형제처럼 여기게 된 겁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이 아무리 막 되먹었다 해도 그 안에는 성령이 담겨있으므로 동등한 형제의 입장에서 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좋은 말로 충고를 하게 되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충고조차 하지 않으며 아직 어린영혼이라 철없이 구는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저 나 자신이 솔선수범(率先垂範)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본인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며 속으로 기도만 합니다.
본인의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이 스스로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이끌지 않게 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이러한 내 마음과 같이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16)
Now the Lord of peace himself give you peace always by all means. The Lord be with you all.
평강의 주가(the Lord of peace) 틀림없이(by all means) 항상 평화를 주신다고 합니다.(give you peace always)
그리고 그 주님이 너희모두와 함께 하라고 했습니다.(The Lord be with you all)
이 말씀을 분석해보면 엄청난 속뜻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주는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전체의 하나님이 한 개인의 몸에 들어오게 될 때는 객체가 되어야함으로 그자신이라고(himself) 말해놓았으며 이는 곧 성령을 뜻하는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부인하려고 해도 성령은 누구에게나 들어있음으로 어떤 경우에라도(by all means) 평화를 주신다고 했지요.
다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에게 평강이 항상 있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주님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한 겁니다.
그러므로 본인에게 항상 평강이 없다면 주님이 성령으로서 자신 안에서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봐야 합니다.
진정 본인이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바울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살후3:17)
The salutation of Paul with mine own hand, which is the token in every epistle: so I write.
직역을 해보면 나의 자신의 손으로(with mine own hand) 바울이 인사 한다(The salutation of Paul) 이것은(which) 모든 서신에(in every epistle) 징표이고(the token) 나는 이렇게 쓴다(so I write) 입니다.
그저 나의 손이라 하면 될 것을 이렇게 말한 것은 내재하신 성령의 역사하심에 힘입어 편지를 쓴다는 뜻이지요.
즉, 바울의 모든 편지는 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써졌음을 알라는 겁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바울의 편지가 사람에 의해 써진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작성되었음을 알거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놓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살후3:18)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Amen.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시점은 예수가 영생의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과 하나 되었을 때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언급된 예수는 성령을 가리키는 겁니다.
성령이 너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했으므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성령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며 데살로니가 후서를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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