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21)

배가번드 2021. 6. 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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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내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모종의 일들이 소리 없이 진행된 일 중에는 캄보디아의 일도 있었고 내 개인의 신상문제도 있었는데 먼저 캄보디아에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어.

연일 중계되다시피 소식들이 도착했는데 비관적인 일들이 계속되고 보니 국내모금 역시도 지지 부진한 상태가 계속되는 중이었고 결정적으로 아쉬람 건설계획이 무산되게 된 것은 그때까지도 호의적이던 캄보디아정부의 태도가 돌변한 때문이었지.

계약서를 이중으로 해놓았는데 우리와는 별도로 다른 이들에게도 계약을 했었던 가봐.

사람들의 욕심은 정말로 끝도 없는 것 같았어.

그 당시 우리단체가 그곳에서 아쉬람을 만들게 되면 학교, 병원은 물론이고 조그마한 소도시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그들이 너무 일찍 열매를 따려고 했던 것 같아.

결국 아쉬람 계획이 근본적으로 뒤틀어지게 되었고 아쉬람보다 더욱 큰일이 벌어진 것은 대만이었는데 아쉬람건설이 무산되자 이주에 참가해서 금전적인 손해를 본 사람들이 소동을 벌인 것이었어.

이러한 소식을 대만선 행사때 내게 채식 햄을 팔았던 J사형이 말해주었지.

내가 손 크게 햄을 20박스씩이나 구매해가자 돈이 많고 주위에 아는 분이 많은 줄 알고서 한국 나온 차에 나에게 차를 팔러 왔기에 이런저런 얘기 끝에 캄보디아에 이불공장을 할 계획이라고 얘기했더니 말을 해 주더구나.

시후센터에다 불을 지르고 난동이 벌어졌는데 장주자들이 피신을 하는 등 폭동수준의 난리법석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하고 말았고 이불공장 건은 물이 건너가고 말았는데 공교롭게도 센터일과 비슷한 시기에 우리공장에서도 어려운 일이 터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내가 문제를 안고 다니는 것이 맞는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부도의 위협에 압박감을 느끼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서 캄보디아로 향했던 분들이 돌아오기 시작하였고 그들로부터 캄보디아 현지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듣게 되었는데 죽음까지 생각해야 할 정도의 긴박감과 스승님에 대한 신심을 시험 받게 된 일까지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처음 아쉬람건설 선봉대로 갔을 때부터 장년층들과 청년층들이 마찰을 일으켰는데 그 역시 금전문제 이었었어.

아쉬람 건설에는 각 국가별로 지정된 구역들이 있어서 땅 매입을 하도록 한 것이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 이유였는데 상대적으로 돈이 많은 측에 속한 장년들은 각자가 땅을 매입하여 타운을 건설하자는 쪽이었고 맨몸으로 가다시피 한 청년들은 돈이 없는 만큼 공동구매를 해서 공동으로 건설하자고 하니 시작부터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던 거야.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타당성이 있는 만큼 누구 편도 들기가 어렵지만 그 모든 생각들이 스승님의 근본취지와는 무관하리라고 생각해.

나는 처음 아쉬람으로 떠나는 대구 동수들에게 게시판에 글을 써서 올린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어.

떠나기 전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살펴보고 내가 그러한 부름에 적당한 역할을 할 자신이 있는지 살펴보고 난 후에 떠나라는 것이었고 아쉬람에 가서 적당히 놀면서 하인이나 거느리고 평생을 힘 안들이고 명상이나 하면서 지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살피고 난 후 떠날 것을 간곡하게 얘기했건만 다들 어디 여행이나 가는 것처럼, 대학생들이 농촌 봉사하러 가는 것 마냥 떠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었지.

돈을 목적으로 사는 세상이 싫어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위험하고도 먼 땅까지 가서 돈 때문에 옥신각신 하지를 않나 돈이 많은 분들은 그들대로 재산의 반은 한국에 남겨두고 나머지 반은 들고 갔으니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아주 당연하리라고 보는데 그러한 마음으로 가서 스승님께 얼마나 많은 짐을 안겨 드렸나가 더욱 큰 문제임을 아무도 모르고 있더구나.

다들 자신들이 피해본 사실만 볼 줄 알았지 스승님의 고통은 생각지도 않은 거지.

그때 당시 시후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일들이었고 나중에 언급하게 될 또 다른 일들 역시 그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일임은 물론이야.

나는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 왜 다들 선택은 자신들이 하고 나서 스승님 원망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한마디로 나무에 달린 과일은 먹고 싶고 나무는 심기 싫은 도둑놈 심보라고 생각해.

스승님의 법문 어디를 봐도 스승님이 제자들에게 금전적인 부를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없고 스승님을 믿으면 모든 물질적인 풍요가 보장된다는 말씀 또한 어디에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실망들을 하고 센터를 떠나고 불까지 지르는가 말이야.

간혹 스승님을 따른 후 물질적인 풍요와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체험들은 잡지에 더러 나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로서 스승님 가르침과는 무관함을 알아야해.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그 모든 것이 더해진다는 말씀은 있지만 그것은 본인들이 깨닫고 나서의 일인 것이지 입문만하면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냐 말이지.

모르긴 해도 깨달음을 얻고 나면 금전은 물론이고 세상의 일 따윈 쳐다보지 않을 거라 여겨져.

우리가 입문을 하고 스승님을 따르기까진 여러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누군가는 스승님의 사진이나 책 또는 잡지책이나 비디오 영상물, 그도 아니면 아는 분을 통해서 입문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있어.

그러한 여러 가지 경로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본인의 선택 없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은 없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고 스승님은 그 누구에게도 강요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을 알아야 해.

본인이 수행하는데 있어서 수많은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스승님을 원망한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으며 본인이 걸어가는 삶 속의 수많은 갈림길마다 자신의 선택으로 길이 열어지는데 어떻게 스승님을 원망할 수가 있냐는 것이지.

그때 당시 돌아온 동수들에게 얘기를 들으면서 스승님의 안위가 걱정이 많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미국으로 건너가셨단 소식에 졸이던 마음이 놓였고 캄보디아의 일은 그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듯했는데 정작 내 개인에게 있어서의 큰일은 그때가 시작이었어.

누군가 말했듯이 걱정은 걱정거리를 불러들인다고 우려하던 일이 터진 거야.

그 무렵 원단공급이 자꾸 차질이 생기는 것이 이상해서 수소문해보니 누군가 귀띔을 하길 내가 거래하던 원단업자가 곧 부도가 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주더구나.

하지만 마음속으로 망하게 해달라는 기도까지 했던 터라 태무심하고 있었던 것인데 사실로 드러나 버린 거지.

아들아!

이 같은 일은 정말이지 당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감정들이야.

내심으로 기도를 한 것과는 별도로 정말 그러한 일이 사실로 나타나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은 누구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어서 도저히 실감이 가지 않으리라 생각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를 하게 되면 주제 한 가지만 생각하게 되지 그 외의 다른 일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막상 기도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는 자신이 바라던 것과는 전혀 형태가 달라진 상태로 나타나는 바람에 기도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여길 뿐 사실은 누구나 가 원하는 데로 나타나게 되어있거든.

이러한 기도가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어떤 법칙이 작용을 하게 되는데 실타래처럼 엉킨 수많은 연결고리를 헤집고 형상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의식적이던 무의식이 바라고 있었던 모든 상황들이 합쳐져서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봤을 때는 내가 바라던 것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인 거지.

나 역시 망하게 해달라는 기도만 했을 뿐 부도가나서 일어 날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충분히 고려치 않았거든.

아들아!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법칙은 몰라도 되고 알 필요도 없어.

실타래처럼 엉켜져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서 물질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 스스로 현실에서 일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욱 빠르고 힘이 덜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해.

많은 도인들이 금전적인 이로움을 쓰레기 취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돈 자체를 쓰레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행태에 대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행위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이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돈 버는 형태는 비슷비슷하고 국가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만큼 한마디로 돈과 도는 물과 기름 같다고 볼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은 모든 관심사가 돈을 버는데 집중이 되어있으며 가치관 역시 그렇게 형성이 되어있기 때문에 돈이 잘 버는 것은 좋은 일이며 물질에 대한 손실이 생기는 것을 안 좋은 일로 여기거든.

그러다보니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현실을 만족 할 수 없는 것이고 신의 축복도 볼 수 없으며 신의 사랑도 느끼지 못하는 거야.

이러한 이야기야말로 정말 중요하지만 지금은 아직 이러한 말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아.

나중에 기회 있을 때 다시 한 번 논의하기로 하고 지금은 내가 격은 여러 가지의 일들에 집중토록 하자구나.

누군가 귀띔 해준 대로 원단업자가 부도를 내고 잠적을 해버린 것이었는데 부도규모가 90억이나 된다고 하고 방송국에서 취재가 나오고 난리가 났었는데 곧바로 내게도 연락이 왔었지.

나와 손잡고 장사한지가 몇 년 되었는데 워낙 내가 원단을 많이 소비시키는 관계로 원단업자와 나와의 관계를 알 사람들은 모두 다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수표가 원단업자를 통해서 사채업자들 손에 들어가 있었던 터라 그들로서는 나의 안부 역시 중요한 관심거리일수밖에 없었든 거야.

혹시라도 내가 연쇄부도를 낼까 봐 사람을 시켜서 감시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러한 상태에서 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보통이 아니었어.

말은 안 해도 내심으로 부도가 날걸 예상을 하고 있었지.

명상을 통해서 미리 비전을 보았었지만 설마 하기도 했고 내심으로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던 터여서 차라리 잘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거든.

캄보디아를 가기 위해서 망하기를 바랐던 것인데 아쉬람 건이 무산된 이상 캄보디아 행은 의미가 없었고 부도나서 될 상황이 전혀 아니었지만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일은 진행이 되고 있었던 거야.

일반적으로 부도가 난 경우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원단업자와 나와는 모종의 계약이 되어있다는 것이었어.

네 할머니 집을 원단업자에게 저당을 잡아둔 체 개인어음을 통용시켜주기로 약속이 되어있던 터라 원단업자가 내 도장도 예사로 사용을 하고 있었기에 작은 문제가 아니었어.

게다가 수표까지도 서로 빌려주기도 하고 현찰까지 서로 이용하는 관계였던 만큼 연쇄부도가 날 가능성이 다분했었기에 남다른 고민이 많았지.

우선 당장은 시간이 있는 만큼 기다려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애간장이 타는 그 안타까움은 말로 다 못할 지경이었고 타는 마음을 해소할 길이 없었는데 누구는 명상으로 해결하라고 권유를 했지만 내막 모르는 소리였어.

명상을 하면 할수록 더욱 빨리 상황전개가 되는 통에 명상조차 하기가 겁이 나고 날짜는 자꾸만 흘러서 수표마감 기한은 다가오지 꼭 뭔가 뒤따라오는 것만 같았지.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다들 욕을 하는 원단업자를 감싸며 기다린 지 10여일 후 잠적한 원단업자로부터 연락이 와서 밤늦은 시간을 이용하여 은밀하게 만났더니 사채업자로부터 10억 정도의 자금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욕탕을 짓게 되어서 돈을 회수해가는 바람에 고금리 돈을 쓰게 되면서 일이 꼬였다는 얘기와 방송에서 말하는 내용과는 너무나 달라서 억울한 나머지 사실여부를 밝히기 위해서 나타났다는 거였어.

그분의 사정도 사정이지만 당장 내가 부도위기에 몰려있다는 얘기와 빌려간 돈과 수표를 주셔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만큼 마감 기일 전으로 해결해 주십사 했더니 원래 마감해야 할 돈과 밀린 원단결재를 제한 나머지만 돌려주더구나.

수표마감보다 그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두 달 이상을 원단공급이 끓긴 것이 더욱 큰 문제였었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원단업자는 내 사정을 봐줄 형편이 못되니 자기의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나대로 그간에 원단공급이 끓긴 후유증으로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있었던 관계로 부도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어.

세상의 일들이 그렇듯이 한번 내리막을 타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내려가게 되어있는데 그때 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던 거야.

일단은 그분을 구슬려서 최대한의 돈을 회수하고 나머지 돈도 말일까지 주셔야만 해결을 하는 만큼 그때까지 돈을 주시기를 당부를 했지만 아무래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으므로 그때부터 이미 결정이 나있는 부도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들어갔지.

먼저 채권자들을 찾아다니며 돌아오는 수표마감일을 몇 달 뒤로 돌려주면 절대부도를 내지 않고 공장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노라고 협조를 구하러 다녔는데 상대적으로 액수가 적은 몇 분은 협조를 해 주마 했지만 액수가 큰 몇 사람은 반응들이 냉담했었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미리 선수를 치는 분들까지 있더구나.

그 분들로서야 당연한 권리행사를 하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겠지만 나로서는 부도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막바지로 몰리는 상태가 되었던 거지.

시간이 흘러가도 전혀 대책이 없는 가운데 마침내 말일이 다가왔지만 원단업자가 나머지 돈을 보내지 않게 되어 일차부도가 났는데 각오는 했지만 막상 눈앞에 다다르고 보니 사정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겠니.

먼저 가족들이 당해야 하는 아픔을 생각하니 이대로 넘어져서는 너와 네 엄마가 많은 고통을 당하겠다 싶어서 다가온 부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비가 오는 밤길을 몇 시간인가를 돌아다니다 얻은 결론으로 그때까지 넣고 있던 적금통장과 여러 가지 보험들을 모아보니 일차부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더구나.

그것을 들고 평소 알고 지내던 분께 찾아가서 담보로 맡겨놓고 돈을 부탁했더니 어렵게 승낙을 해주셔서 다음날 일차부도 난 수표를 겨우겨우 회수를 하고 부도를 막을 수가 있었어.

일단 마음의 결정이 난 후부터는 빠르게 정리를 시작했지.

아들아!

너도 기억나지?

멀쩡하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호주로 전학을 가게 된 일말이야.

네가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니게 되면 보낼까 하던 호주를 많이 앞당겨 보내게 된 것이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어.

부도에 앞서 너희 모자를 호주로 피신시키고 하청공장 사장들을 하나씩 불러서 계산을 해주고 거래처마다 통보해서 어떤 분들은 현찰로 어떤 분들은 물품으로 한집씩 해결을 해 나갔던 거야.

남의 일을 해주신 분들이 무슨 죄가 있겠니.

그분들을 우선적으로 계산을 해주고 나와 제일 많은 거래관계에 있던 자수공장사장에게 의논을 했더니 사정얘기를 듣고는 자신이 해결을 해주겠노라고 하면서 급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공장 옆으로 공장을 옮기고 값이 나가는 물품들을 자기창고에다 넣어두라고 하더구나.

우선은 내가 피신하고 네 삼촌이 장사를 계속하면서 한편으로 합의를 해나가면 수월하게 해결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말을 하기에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싶기도 하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식으로 그분이 하자는 데로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는 그분에게 고스란히 빼앗기게 되었지만 그때야 그런 내막을 전혀 알 수가 없었지.

사실 그분 역시도 채권이 있는 만큼 채권확보를 해야 했으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

대책마련을 하느라 그분과 동네어귀의 식당에서 얘기를 하는데 눈물이 핑 하고 도는데 무일푼으로 지금껏 열심히 이루어놓은 것을 한꺼번에 무너뜨려야 하는 참담함이 물밀 듯 밀려오고 무엇보다도 네 할머니 집을 날리게 된 것이 얼마나 죄스럽던지 정말이지 그날은 술 한 잔 진하게 하고 싶었지.

내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보며 자수공장사장이 술을 권했지만 마실 수는 없었어.

목숨처럼 여기는 계율이 있었고 내가 원했던 결과가 온 것인데 하는 자책감이 있었던 지라 눈물은 흘릴지언정 계율까지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계율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나에게 또 다른 분은 보험을 타기 위해서 불이라도 내자고 하였지만 그러한 유혹은 나에게 통하지 가 않았던 거야

내가 그때 당시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것은 쓰레기차를 피하면 똥차와 박치기를 하게 된다는 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운명론이 있었거든.

한마디로 겪어야 할 어려움은 겪어야 한다는 거지.

아들아!

어떠한 상황도 두려워하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우리가 알건 모르건 이미 많은 실패를 거듭하였고 또다시 이 세상을 온 이상 부딪치며 헤쳐 나가야 하지 않겠니.

언젠가 내가 꾸었든 꿈은 내게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함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어.

동물원처럼 철조망으로 된 우리 속에 악어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악어들을 놀리느라 철조망을 넘나들며 우리 안에 있는 악어들 약을 올리고 있었지.

몇 번을 약을 올려도 악어들이 본체만체 하기에 이번에는 아예 우리 속에 들어가서 악어 약을 올리기로 작정하고 우리 안에 발을 들여놓았지 않겠니.

잠시 안쪽으로 눈을 돌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

이럴 수가!

어느새 악어 한 마리가 나의 퇴로를 막고 있는 거야.

큰일 났다 싶어 싸워서라도 앞으로 나갈까 하다가 상대악어가 덩치도 큰데다가 사나워 보이기까지 해서 멈칫멈칫 뒷걸음질 치다 보니 어느새 여러 마리의 악어들이 에워싸고 점차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하기에 자꾸 뒷걸음질을 치게 되었어.

바위언덕으로 조성된 벽 쪽으로 몰려가다가 어느새 천장에 거의 붙다시피 하는 순간 이제는 팔다리도 움직일 공간조차 내게 허용이 되지 않더니 마침내 악어 밥이 되려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지.

얼마나 생생했던지 꿈에서 깼을 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는데 이 꿈을 통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어.

처음 악어와 마주쳤을 때 죽기 살기로 해보았더라면 마지막에 꼼짝도 못하고 잡아먹히진 않았을 것이 아니겠냐 말이야.

이 꿈을 꾼 뒤로 어떤 경우라도 정면 돌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

그러면 왜 그때 정면 돌파를 하지 않았냐고?

왜냐하면 그때 내가 선택한 정면 돌파가 그 당시 내가 행했던 방법이었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냥 그럴 수가 있어.

너도 생각해보렴.

길을 가다가 양 갈래 길이 나왔고 어느 쪽도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어떤 길이 정답이고 어떤 길이 오답일수 있겠는지 너는 알 수가 있겠니?

많은 사람들은 내가 호주로 가게 된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판단들을 하더구나.

왜 피신을 했느냐고 하면서 채권자들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았나를 말하지.

그러한 돈이 있다면 합의를 하는 것이 좋았지 않느냐하면서 말이야.

그러나 그것역시 그 당시 내가 처한 현실을 당해보지 않은 이들의 판단이라 할 수밖에 없어.

내가 호주를 가야한다 마음먹었던 것은 그곳에 이민을 가있는 외가식구들이 있었기에 우선당장 소낙비를 피하자는 심정이었을 뿐 돈이 많아서 빼돌리거나 호주에서 편안하게 살고자 한 것은 아니었거든.

이렇게 내가 마음을 먹게 된 동기가 주변의  부도난 타 업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나서였어.

채권자들이 몰려와서 자신들과의 채무관계가 전혀 없는 가족들에게 손찌검과 욕설을 퍼붓는데다가 심지어 얼굴에 침을 뱉는 경우를 봐야 했기 때문이었지.

나로서는 절대 내 가족들에게 그러한 아픔을 겪게 만들 수는 없었던 거야.

내가 호주로 가족들을 피신시켰다고 해서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도 없어.

호주에서 살았던 시기동안 내가 겪어야했던 여러 가지 일을 보자면 결코 순탄하고 즐겁지가 않았다는 것을 앞으로 너와의 대화를 보게 되면 알게 될 거야.

하나님이 이 길이 정답이라고 한다면 그때는 그것이 정답일수 있겠지만 어느 누구의 인생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다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일 뿐이지.

나 역시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따랐을 뿐이었어.

사실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라 불리는 그분의 음성이 맞기도 한 거야.

우리가 알거나 모르거나……

아들아!

이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결코 우연이란 없으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연속이며 모든 선택들은 모두가 정답이란 거야.

그러면 도둑질도 선택이냐고?

그래 맞아!

그 또한 선택이고 정답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정답에 따른 결과는 선택한 자신이 받아들여야만 해.

그러한 점을 불교에서는 연기론을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뿌린 데로 거두리라 하고 말하며 속담에서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는 거야.

아들아!

이렇게 선택된 나의 인생길이 또 한편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여 삶의 영화가 이어지고 있었으니 우리는 또 다른 장면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의 상연은 여기에서 마무리하도록 하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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