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배가번드 2026. 3. 31. 04:15
728x90

히브리서 4장에는 창세기내용이 인용되었으므로 상고해보겠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2:1)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host of them.

 

지금 이 말씀은 1장의 연장으로 하늘과 땅의 뭇 생명들을 창조하는 일을 마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서(Thus) 하늘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 그리고 그들의 모든 주인들이(and all the host of them) 완성되었다는(were finished) 표현을 하고 있는 겁니다.

1장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인격체로 묘사되어 마치 떡 주무르듯이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거대한 존재가 세상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속뜻을 보면 그렇지가 않으며 우주만물의 생성이치와 그 근원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거지요.

간단하게 말해서 음양의 조화로서 세상이 생겨났으며 만물이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최대한 인간들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해놓았다고 보면 됩니다.

이 내용을 우리인체에 대비해보면 어느 정도 가슴에 와 닿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육신은 분명 각자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는 않으며 내가 만든 것도 아닙니다.

내 눈에 보이는 사지(四肢)는 분명 내가 마음먹는 대로 움직여지는 것 같지만 내속에 있는 장기들은 각자가 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내 자유의지와는 별개로 움직이고 있지요.

게다가 세포단위로 들어가면 내 자유의지는 물론 생각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어 각 세포 하나하나가 생동하며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내 마음조차 한결같지가 않아 시시각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어떤 때는 불가피하게 내가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상만물을 창조한 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며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겁니다.

이 같은 고민을 한 끝에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게 된 것이며 창조주 하나님을 인격체로 묘사하여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하고 있는 거지요.

다음 내용을 보면 모세가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연구하였는지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And on the seventh day God end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그리고 일곱째 날에(And on the seventh day) 하나님은 그가 만드시던(he had made) 일을 모두 끝냈다고(God ended his work) 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기록해놓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비롯해 세상만물을 창조해놓고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그가 만드시는 일로부터(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일곱째 날에 안식을 했다(he rested on the seventh day) 한거지요.

만약 이러한 말을 기록해놓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일에 직접 관여해야 한다 생각하게 될 것이며 왜 하나님은 죄악 넘치는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느냐를 말하게 됩니다.

실지로 성경을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유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만물을 생성하게 만들고 생동케 하는 힘입니다.

나만 위하고 나와 가까운 이들만 보살피는 제한된 존재가 아니라 만물을 보살피게 됨으로 존재하지 않고 관여하지 않아 보일뿐인거지요.

그러므로 완성의 의미인 7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며 전체와의 합일을 이루었으므로 안식에 든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야말로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을 만물동일체라고 하는 것이며 이럴 때 평상심이 도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이 완전히 실현되려면 육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뭔가에 매이거나 소속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유명(幽明)을 달리할 때에 다 이루었다 하신 겁니다.

육신의 임무를 모두 마치고 하늘에 올라 영원한 안식에 들었으며 전체와 하나 되는 영광을 얻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다음 내용은 모세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을 말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3)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sanctified it: because that in it he ha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and made.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축복하시고(God blessed the seventh day)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다고(and sanctified it)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because that in it)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만드시던(God created and made) 모든 일로부터 안식했기(rested from all his work) 때문이라고 했지요.

우리가 만약 이 내용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하나님은 이세상일에 관여를 하지 않고 높은 하늘에 머물러야만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온 세상 만물을 통해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안식에 든다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 속에 머무는 빛의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안식의 날이 축복받은 것이 되며 거룩하게 되는 거지요.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것으로 예수께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었듯이 우리역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노력하자는 겁니다.

이러한 말이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으며 무척 많은 고민 끝에 나온 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보았다시피 바울은 창세기와 시편을 번갈아 가며 인용하였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다들며 성령의 복음을 전해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육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가르침을 전해줌으로서 우리 안에 내재하신 성령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던 거지요.

그런 일을 한다 해서 바울에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오로지 성령이신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다만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성령이 되살아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일을 믿는 이들에게는 천금보다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며 불신하는 이들에게는 시간낭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믿음에 달린 것이고 그 믿음은 자신에 행한 일에서 비롯됨으로 아는 이는 행동하며 실천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상고의 시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