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놀라운 일을 확인하게 됩니다.
인과응보의 법칙이 살아있음을 새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성경말씀이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을 하게 됨으로 놀랍다는 말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뜬금없이 말을 해서는 알아들을 수 없으므로 관련내용이 기록된 성경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And Samuel grew, and the LORD was with him, and did let none of his words fall to the ground.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3:20)
And all Israel from Dan even to Beersheba knew that Samuel was established to be a prophet of the LORD.
사무엘의 뜻은 ‘구하다’ 이고 여호와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있는 자 그로다’이므로 19절 내용은 구도자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내재하신 성령이 드러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20절에 기록된 단의 뜻은 ‘심판, 재판장’이고 브엘세바의 뜻은 ‘일곱 우물, 맹세의 우물’이며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서 하나님을 믿고 영적전쟁에 나선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영적인 길에 들어선 이가 인과응보의 법칙을 깨닫고 성령과 합일이 되어 완성에 이를 때까지의 전체과정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여 성령이 드러나게 되면 믿음아래 있는 모든 이들이 내적으로 알아본다는 뜻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거지요.
이 말씀은 선지자 사무엘을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구도의 길을 걷는 모든 이에게 주는 가르침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일단 믿음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알기를 원하고 영생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사무엘=구하다)
이렇게 진정으로 구하는 마음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 마련이고 그때부터 내가 하는 말과 행동과 생각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는 것이 되므로 신중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 이르면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한 심판은 즉각적으로 주어지게 됨으로 하나님자녀에게는 징계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한 징계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등식이 성립되며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가(道家)에서는 수행자의 행동거지(行動擧止)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상에서 말하는 영웅들의 말로는 영적으로 보면 저주받은 것이 되며 세상 적으로 저주아래 놓인 것처럼 보이는 삶이 오히려 영적으로는 축복받은 것이 되는 거지요.
물론 세상 적으로 유명해지고 물질적으로 부유해진다고 해서 모조건 저주받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의 삶을 만족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으며 그러한 육적이고 물질적인 축복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그다지 환영할 바가 못 되며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을 상대방이 나에게 가했을 때 나의 반응을 보면 나의 말로가 어떠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잘못은 얼음 알같이 지적하다 못해 저주를 퍼부으면서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다는 점도 모르는 인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봐야 쓸데없지만 타인에 대한 심판은 곧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
Then saith Pilate unto him, Speakest thou not unto me? knowest thou not that I have power to crucify thee, and have power to release thee?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19:11)
Jesus answered, Thou couldest have no power at all against me, except it were given thee from above: therefore he that delivered me unto thee hath the greater sin.
빌라도의 뜻은 ‘창을 가진 자’로서 본명은 본디오 빌라도이고 본디오는 ‘다섯 번째’를 뜻하며 성경적으로 5는 하나님의 은총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권력을 가졌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빌라도는 자신에게 권한이 주어졌음을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너를 십자가형에 처하게(to crucify thee) 할 수도 있고 너를 놓아줄 힘이 있음을(have power to release thee) 알지 못하느냐(knowest thou not) 했는데 아는 빌라도의 영적수준을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본인에게 권력이 주어졌음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세상권력을 가진 모든 이들이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자신에게 부와 명예와 권력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나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위로부터(from above) 당신에게 준(were given thee) 것을 제외하고는(except it) 나의 모든 것에 대한(at all against me) 힘을 가질 수 없다고(couldest have no power) 한 겁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예수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님이 모두 아시며 세상모든 것들을 관장(管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나를 당신에게 데려온 자는 그 죄가 더욱 크다고 했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예수 같은 사람을 세상권력에 넘겨주었다는 것은 영적인 길을 포기하고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단순하게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가 죄가 크다는 말이 아니라 선하신 성령을 선택하지 않고 악한 육을 선택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뜻이지요.
아마도 이 말을 오해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지금 이 장면을 사복음서는 모두가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해석을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며 그래야 성경의 근본목적을 상실하지 않게 되며 예수님의 숭고한 목적 또한 훼손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세상권력을 가지고 함부로 휘두르면 본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판사가 판결을 할 때 자신이 그 입장에 서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인이 똑같은 상황에서 그러한 판결을 받았을 때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러한 심판은 잘못된 겁니다.
따라서 어떤 이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오히려 축복으로 작용할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지은 죄를 갚아주기 위해 하늘이 나에게 축복을 내려주셨다는 거지요.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내가 죄를 지었는데도 아무런 심판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영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한 것인지, 혹은 사람의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또는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깨닫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상대방을 향한 나의 판단이 곧 나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때가 돌이킬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매일같이 내신구의를 상대방을 바라보는 내 눈을 통해 확인하고 있으며 항상 뉘우치고 돌이키며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으로 나를 용서받고 있는 겁니다.
부디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이 같은 점을 깨닫고 세상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완벽을 보시기를 바라며 일요일 예배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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