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령이 임하면 내가 한일을 꾸짖는다.

배가번드 2026. 4. 1.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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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음 공부하는 분의 동영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명상수련을 해온탓에 이러한 동영상이 내 관심을 끌기는 하지만 성경연구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람으로 그저 스쳐 지나듯 보고 말았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환갑은 족히 지난 듯 보이는 여성한분이 참 나를 발견하는 모순점을 말하기에 깊이 있게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던 겁니다.

육신인 내가 인식을 하지 못하는데 참된 나를 발견하려는 것은 무의미하며 이치에 맞지 않다는 말을 하므로 이분의 영적수준이 어떠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으며 그분의 주장이 무엇이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을 내가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말과 같으므로 기독교인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며 영성공부를 위해서는 필수로 알아야 할 일입니다.

이분의 주장은 영혼에 대해 모르고 육신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의 전형적인 마음가짐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구약의 대부분 내용이 하나님과의 대화이거나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어 말해놓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되며 읽더라도 속뜻은 알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믿음의 크기만큼 성경은 그 속살을 내비치게 됨으로 본인이 성령을 영접할 수 있어야 성경의 속뜻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공부를 시작하여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라야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참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영성공부를 시작조차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인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할 경우 이러한 말을 할 수가 없으며 영혼의 세상을 알아야 참 나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이 둘은 하나입니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성령을 영접하려면 먼저 성령을 믿어야한다는 말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본인이 영혼을 경험한일도 없고 성령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면 경험자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조차도 않으면서 무조건 영혼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나 역시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의 말씀과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그분과 같은 주장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중에 한분이 바로 내 어머니라고 할 수 있으며 사촌누님들 중에도 이러한 경험을 한 이들이 있으므로 영혼의 세계는 실존하며 참 나는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빛이신 성령이며 불교식으로 말하면 무량광부처입니다.

지금은 치매에 걸려 고생하고 있지만 내 어머니는 한때 불교신자였으며 백일기도를 한 끝에 나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이모님의 권유로 성당을 다니게 되었으며 약30년 전 부터는 동생의 강권으로 말미암아 개신교로 개종을 하여 성경에 밑줄을 쳐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이러한 내 어머니께서 어느 날인가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을 내게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귀에서 빨리 내리라는 소리가 들려 급하게 내렸는데 지금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택시를 탄 순간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내면에서 소리가 들려왔고 내려주지 않으려는 기사를 겁박을 하다시피해서 겨우 내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모의 권유가 있기 전이었기 때문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므로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도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체험을 귀신의 것이라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성경을 공부한 이후에 나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으므로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빛이신 성령이 시공을 초월하여 만물 안에 거하신다 하였으므로 내 어머니 안에서 말씀하신 이는 성령이라고 봐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야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교회에 안착을 하여 올바른 신앙생활로 이끈 이가 하나님이 되는 거지요.

결국 내 어머니께서 성경을 읽어본 후 일생동안 성령의 보호아래 놓여있음을 깨닫게 된 것으로 봐야합니다.

만약 내 어머니께서 성경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그저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는 것으로 끝이 났을 테지만 성경공부를 함으로 인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솔직히 나로서는 두꺼워진 어머니의 성경책을 보면서 그저 읽기만 하고 밑줄만 쳐놓은 것으로 여겼으며 속뜻을 안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연구를 하고보니 어머니의 말씀하나 행동하나가 성경에 의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성령을 영접하셨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치매가 심해지기 전 어머니가 동생 집에서 생활하는 중에 넘어져 팔이 부러진 적이 있었지요.

그때 하신말씀이 한쪽 팔이 불구인 큰 이모님 흉을 본 바람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치매에 걸린 이유도 이웃사람 흉을 봐서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성찰을 통한 죄 사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어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지요.

인과응보의 법칙상 이것은 불변하는 진리라고 할 수 있으며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13:10)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발은 살아오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족적(足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는 동안 지은 죄는 살아있는 동안 씻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죽기 싫어 몸부림을 치는 것이며 지은 죄가 큰 사람일수록 정도가 더욱 심합니다.

그래서 살아생전 고통과 고난이 있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동시에 담겨있는 겁니다.

하나는 내 죄가 씻어지고 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세상 죄를 공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드러나게 되면(온몸이 씻어서 깨끗해지면, 성령으로 거듭나면) 본인이 사는 동안 지어놓은 죄를 씻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기에 이렇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6장8절에 그가 온다는 것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가 임하게 되면(드러나면, 거듭나면) 내가 한일에 대해 꾸짖게 된다는 말이지요.

내가 타인을 함부로 심판한일과 내행동이 정의로운 것인지, 혹은 육신으로 죄를 짓지 않았는지, 정확하게 지적을 할 거라는 뜻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 같은 경우 이러한 일을 확실하게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술 취한 행인이 도로가에 주차해놓은 내차 백미러를 깨고 도망가기에 붙잡았고 경찰서로 끌고 가려는데 갑자기 청년시절 술 먹고 남의 차 백미러를 깨고 도망갔던 기억이 나는 겁니다.

기억에서 지워진지 오래였으며 생각조차 않던 일이 왜 그 순간에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풀렸으며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이 같은 일은 매순간 일어나는 일이며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일입니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한다 싶을 때마다 내가 했던 과거의 말과 행동이 떠오르며 항상 용서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18: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2)

 

성경에 언급되는 7은 완전의 숫자로서 영원한 안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완전한 영생의 하늘에 오를 때까지 인내하고 참아야한다는 말이지요.

아마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겠지만 빛이신 성령을 영접한 영혼은 이 말을 올곧게 이해하며 어떤 고난의 순간도 기꺼이 참고 견딥니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모두가 자신으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앎으로 기꺼운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다른 이의 경우에는 내가 상관할 바가 없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말씀이니 오해 없기를 바라며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