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125)

배가번드 2022. 3. 1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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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벌써 파타야 행사장에 도착한지가 이틀을 넘기고 있었지만 도무지 행사가 시작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고 있었어.

그때까지도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었기 때문으로 행사는 시작이 되었는데 불구하고 동수들은 세계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는 것 같더구나.

지금껏 내가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선행사가 시작되는 날 이후에 들어오면 입장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일단 행사장에 들어오게 되면 절대 그곳을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었는데 이곳은 휴양지의 호텔이어서인지 그러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가 보았지.

이 같은 일 역시 우리들이 황금시대를 맞이하여서 달라진 수행촌의 모습이 아닐까 해.

이제는 통제된 규율보다는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스스로의 영적 발전을 가지라는 신의 뜻이라 여겨졌어.

98년을 마지막으로 국제선은 참석을 하지 않았던지라 조금은 낯설기까지 한 선행사의 분위기 탓에 나 역시 명상위주보다는 그저 그 자리를 즐긴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었던 것 같아.

가끔씩 명상을 하러 갈라치면 끝없이 늘어서 있는 줄을 보며 머리가 절로 흔들렸는데 길게는 몇 시간 짧게는 30분줄을 서야했거든.

며칠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중 이번에는 호주동수들을 만나게 되었어.

앞서 너와의 대화에서 브리즈번 동수 중에 한국인 사저가 있었다고 말했지?

바로 그 사저가 남편과 함께 나를 만나러온 거야.

네가 어렸을 때 보았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겠지만 이들 부부에게 많은 신세를 졌었거든.

우리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 남편을 데리고 와서 함께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하겠더구나.

센터가 옮긴 일과 내가 머물렀던 마 선생님이 집을 팔고서 캔버라에 있는 자녀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일, 나와 함께 지내던 폴이 일본에서 영어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등…….

많은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지금껏 듣고 있던 유언비어와는 달리 정확한 소식을 하나 접하게 되었어.

사저의 남편 되시는 분이 호주에 사는 베트남인인데 스승님께서 베트남 동수들을 따로 만나는 자리에서 어떤 여자동수 한분이 스승님께 보고를 드리더라는 거야.

베트남의 현재 대통령에게 따님이 두 분 있는데 그중 둘째 따님이 입문을 하여 동수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겠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어.

어쩌면 중국보다 더욱 통제된 사회라고도 볼 수 있는 베트남에서 그렇게나 많은 분들이 올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이유가 있었던 거지.

사저를 만나고 얼마 후에는 함께 살게 될 뻔한 여자동수 줄리도 만나게 되었는데 내소식이 궁금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더라는 사저의 말을 전해 듣고 난 다음날인가 만나게 되었어.

남편 되시는 분이 나와 함께 지냈던 레이아저씨인데 두 분의 결혼소식을 벌써 알고 있었지만 소식을 전할길이 없다가 거기에서 만나게 된거야.

레이아저씨는 홍법차 타스매니아에 머물고 있다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대로 여생을 홍법으로 마치실 작정인 것 같더구나.

서로가 무척이나 반가웠는데 불구하고 몇 마디 할 수가 없었던 것이 무척 아쉬웠어.

영어가 되었다면 좀 더 많은 대화가 있었을 텐데 버벅거리다 보니 대화가 여의치 않았고 그저 인사 몇 마디로 만족해야만 했어.

그 말조차도 옆에서 다른 분들이 수고를 해주시는 바람에 가능하였는데 이 기회에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더구나.

부끄럽기도 하고 당장 의사전달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거야.

여담이긴 하다만 너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반드시 공부를 하기 바라.

나처럼 이러한 경우를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열심히 해놓아야 하거든.

알았지?

이들 외에도 호주의 동수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곳곳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브리즈번의 연락인인 제리비숍은 명상 홀에서 만나게 되었고 나를 그토록 못살게 굴던 말레이시아 동수인 캔은 돌아가는 차편 등록처에서 만나게 되었으며 총 연락인은 일찌감치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베트남 연락인 을 만나게 되었으니 신의 안배에 따라 이번 선에서는 만나야 할 모든 이들을 만난 것 같아.

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까지 만났었는데 어찌 보면 이번 선에서는 모든 이들의 화합을 스승께서 원하셨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아들아!

그런데 말이야.

참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평상시 나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스님 한분이 있었거든.

이분이 어느 날인가 나에게 토라진 일이 있었어.무슨 이유때문인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인가 태도가 돌변해 버린 거지.

영문도 모른 체 이분과의 대화가 단절된 어느 날인가 대전센터에서 이분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 식사를 하던 이양반이 일어나 나가버리지 않겠니?

얼마나 사람이 무안하던지 참으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더구나.

그때 이후로 나 역시 그분을 보지 않을 거라 마음을 먹고 이곳저곳에서 마주쳐도 억지로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내오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번 선에서 만나게 된 거야.

처음 몇 번은 그냥 지나쳤는데 한번은 모퉁이에서 마주치게 되었어.

우연하게 마주치게 되자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고 말았지 않겠니?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다음 장면이었어.

그분은 그야말로 무심하게 내 인사를 받지도 않고 지나친 거지.

결국 내가 지고 말았던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니?

서로가 반목을 하고 지낸 던 중 나 스스로의 결심을 깨는 실수를 한 것 일수도 있지만 그런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거든.

사람마다 개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을 억지로 하다 보니 결국은 밑천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는 것은 쓸개도 없이 헐헐거리는 것이 어울리는 것인데 누구처럼 샐쭉해져서 말도 않고 지내는 것이 어울리지가 않았다 이 말이거든.

너도 생각을 해보렴.

내가 그토록 심하게 모욕을 당했다 생각을 했더라면 그분을 미워해서 다시는 만나지도 않아야 할 테지만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돌발적인 상황에서 밑천이 드러나고 말았지 않니?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본성인거야.

그분은 성품자체가 타고났기에 그런 행동을 해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더라는 거지.

이래서 사람마다 역할이 따로 있는 거다 이 말이 아니겠어.

이것은 결코 그분이 잘못하고 내가 잘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사실 그분이 내게 토라졌을 때는 내가 모르는 나의 잘못이 반드시 있으리라 여겨지거든.

아직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지만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분을 화나게 했을지도 몰라.

어찌되었건 내가 그분을 진정 미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으니 그동안 그분을 억지로 외면하던 일이 일시에 해소가 되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어.

그가 어떻게 생각하던 관계없이 내가 다른 이들을 진정 미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던 만큼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던 거야.

이것 역시 이번선이 내게 가져다준 하나의 크나큰 기쁨이었음은 물론이지.

이번 선에서 맛볼 수 있었던 기쁨은 이것만이 아니었어.

우리와 함께 자리를 함께하던 사형과는 아주 소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

이분은 98년 내가 부식 조에 속해져 있었을 때 팀장이기도 하였기에 과거를 회상함에 있어 공유할 부분이 무척이나 많았어.

98년 국제선에서 스승님께 쫓겨 내려와 봉고차 뒤의 짐칸에서 눈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서로를 쳐다보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있었으며 축복과자를 사러 모두가 미친 듯이 영동시내를 헤맸던 일이 엊그제처럼 떠오르고 있기에 참으로 많은 공유의 시간이 있었거든.

우리들이 선을 시작한지 며칠 후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분과 밤을 새워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지.

지금껏 너와의 대화 속에 나오던 몇몇 사형들과 함께 이었는데 모두들 감동어린 청취자가 되고 있었어.

그동안 수행을 해나오며 겪어야만 했던 가족들과의 갈등과 자신의 수행 관을 담담하게 말씀하시는데 참으로 몰랐던 일을 많이 알게 되었지.

아들아!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너와 나만이 세월의 아픔을 겪었던 것은 아니더구나.

이 세상 어떤 인생도 고통을 겪지 않은 인생이 있으랴 만은 수행자의 그것은 진정 특별한 것 같았어.

부잣집의 아드님이신 이분이 살아나오면서 겪었던 일들이 가난한집 아들로 태어나서 걸어야했던 내 삶과 별다르지 않았으며 어찌 보면 내가 더욱 호강한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

이쪽 산에서는 저쪽 산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은 그 순간 진리가 되어 우리들 대화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거야.

그분이 살아나온 성장의 시기를 이 자리에 모두 옮길 수는 없겠지만 최근 그분의 가족들이 겪었던 수행상의 어려움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선에도 가족들의 대부분이 그 자리에 참석을 하셨는데 특히 아드님과 무척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어.

지금은 누가 보아도 다정한 부자사이로 보이고 있지만 그분들은 엄청난 아픔을 겪어 나오셨던 거지.

몇 해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드님이 고3 이었을 무렵 학교를 다녀온 아들이 분노에 몸을 떨더라는 것이었어.

어떤 연유로 그런지 모른 체 아들을 나무라게 되었고 화가 난 아들과 심한 다툼이 벌어진 모양이야.

뒤에 알게 된 사실은 이랬어.

부모님들 모두가 입문자이다 보니 자녀들 모두가 채식을 해야 했는데 이러한 채식이 아이들은 무척이나 스트레스 받을 일이었던 거야.

나는 잘 모른다 해도 너는 아주 잘 알거라 생각해.

너희들이 학교를 가게 되면 누군가 특별한 음식기호를 가진 아이들을 놀리는 일이 있지?

바로 이러한 일을 사형의 아들이 겪게 된 모양이었어.

자신이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왕따라는 것을 당하게 되자 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그러한 일이 부모님 때문이라 생각하니 야속하게 여겨졌던 모양이야.

그것이 가족 간에 갈등을 일으키게 만든 중요한 이유가 되었던 거지.

이 같은 일을 겪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내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껴야했어.나 역시 너와 겪었던 일이 있었던지라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거든.

내가 너에게 채식을 강하게 권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이유때문이기도 한데 어쩌면 이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를 것 같아.

대부분의 동수들이 말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많은 동수들의 가정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도 같으며 수행자들로서는 아주 중요할 수도 있는 문제인거지.

사형께서 겪어 나온 일을 들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

과연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서 입문을 시키고 채식을 권해야 옳은 일일까 아니면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한이 있어도 어려서부터 완전 채식을 시켜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쉽게 나지를 않더구나.

너는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어려서부터 하기는 어려우니 아이가 크면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래.

네가 아직까지 채식을 하고 있지 않으니 당연하게 그렇게 말하겠지.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너에게 강요하지 않고 있다만 만약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겠니?

네가 정말 채식이라는 것이 좋다고 여기고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이 해야만 하는 지구사랑임과 동시에 수행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경우 어떠하겠냐는 거지.

육식이라는 것이 진정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주며 하나의 독을 먹는 거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안다고 했을 경우 자식이 그것을 먹는 것을 내버려 두겠냐는 거야.

또 지금 당장은 모든 여건 때문에 육식을 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수행을 해나가면서 육식을 금해야 하는데 그때 가서 끊는 것은 지금 먹지 않는 것보다 얼마나 힘들겠냐는 것을 보모로서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

비록 그러한 일들로 인해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일이 생긴다 해도 부모로서는 자신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일을 자식에게 권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말이야.

이것은 수행자가 안고 있는 슬픔이 되어 내 가슴을 때리고 있었어.

누군가는 이 말을 들으면서 간단하게 해결할 것을 무슨 고민인가 할지도 몰라.자식은 자식대로 갈 길이 따로 있고 내 몸을 빌어서 태어났을 뿐 나와는 별개의 객체라 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고 하겠지.

하지만 아들아!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날수도 있어.

내 아들이 내가 독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먹는다고 했을 때 너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겠니?

게다가 수행자로서 그러한 일을 하게 되면 수행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어쩔 것인가 말이야.

지금 우리들이 가고자 하는 수행의 길은 철저한 오계 지키기를 요구하고 있거든.

이것은 각자의 수행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거야.

까짓것 못하면 안하면 되고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될 것 아닌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겠지만 죽는 한이 있어도 계율만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진 수행자에게는 결코 가벼운 일이 될 수가 없는 거지.

대다수의 스님들이 한 달에 한두 번은 정기적으로 고기를 먹고 심지어 담배를 피운다는 것과는 질적으로 달라.

만약 우리단체가 그런 것들을 허용했더라면 입문자수가 벌써 수십만 명은 넘길 수 있었어.

법이 전해진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 전체 입문자수가 천명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절대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청정한 계율 때문이거든.

계율이 왜 중요한가는 지난시간 충분히 설명을 했으므로 다시 되새기진 않겠지만 채식을 하는 것이 절대 간단하지가 않아.

자신이 이러한 모든 의미를 알고 있는 이상 자식을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기가 쉽지 않는 것이 문제인거야.

그러나 우리들이 대화를 하는 그 시간 이미 아들은 성장을 하였고 이제는 자신이 스스로 모든 판단을 해나가는 어른이 되어 있었어.

과거에 자신의 가족들이 겪어 나온 일을 회상하는 것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리들 모두가 그분들의 가족이 되어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던 거지.

참으로 넘기 힘든 일을 격어 나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더구나.

아들아!

이일에 대한 결론은 내가 내리지 않겠어.

이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틀리기 때문에 이것이 정답이라 할 수 있는 절대적인 해답은 없거든.

그렇지만 이것은 네가 알아야해.

지금 사형의 일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너와 내가 겪어 나온 아픔만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야.

너에게 내가 채식을 권하거나 수행을 권하지 않는 이유도 네가 다른 이들이 걸어가는 수행의 길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너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고 있어.

네가 겪어 나온 여러 가지 일도 이분들이 겪어 나온 일보다 결코 가볍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네가 많은 것들을 얻었으리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거든.

그러면서도 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네게 채식의 유익함과 중요성을 말하고 있어.

그리고 수행을 권하기도 하고 말이야.

네가 나를 비롯하여 많은 수행자들처럼 세상의 지독한 아픔을 맛보지 않고서도 수행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하기에 이렇듯 너와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기도 하고…….

정말이지 그날 그분들 가족들은 부러워 보이더구나.

많은 풍랑을 겪고 나서 평온한 바다에 도달한 조각배처럼 안온함이 대화의 마지막에는 묻어나고 있었어.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 되고 있었는데 사형께서는 또 다른 말씀도 해주셨지.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94년의 시후 선에서 있었던 카메라 사건을 말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일이 있었더구나.

내가 알기로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지시를 어긴 것 때문에 스승님께서 화가 나셨고 급기야 카메라를 부수기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일이 있고난 후  스승님께서는 골프차를 좌충우돌 몰면서 숙소로 돌아가셨다는 거야.

그런데 숙소로 돌아가신 후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앰프를 통해서는 스승님의 활기찬 노랫소리가 들려오더라는 거지.

금방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하시던 양반이 금방 노래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사형은 전율을 느꼈다더구나.

 

"아! 이분은 크게 미친 분이 아니면 엄청난 힘을 가진 분이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그토록 감정변화가 빠를 수 있느냐는 것이 사형의 말씀이었는데 나는 스승님의 그러한 감정변화보다 사형의 관찰력이 오히려 더 대단하게 여겨졌어.

다른 이들은 그 일로 스승을 등지게 되었는데 사형은 그일 때문에 스승을 더욱 높이 떠받들게 되었거든.

이것이 바로 똑같은 사건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아니겠니?

이래서 인연이라는 것을 말하게 되는가 보았어.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들이 알아야할 중요한 일이 있거든.

스승님의 이 같은 점을 우리들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그러한 일을 실생활에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이야.

 

그게 무슨 소립니까?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있는 자들로서 그러한 법문이 생활에 젖어들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말입니다.

 

아들아!

네 말이 맞긴 하지만 한 가지 네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그것은 말이야.

우리들의 수준이 모두 같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그날 사형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전적으로 맞긴 하지만 그 같은 일이 스승이 제자를 상대로 보여준 일이었지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거야.

나 역시 생활가운데 스승님의 말씀을 적용시키며 살아가고 있고 스승님의 행동을 따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그 같은 일도 아주 조심스럽게 행하고 있어.

평상시 이분을 내가 만날 때마다 이제 더 이상 센터의 일에 관여를 하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거야.

분의 말씀이 전적으로 맞고 옳긴 하지만 센터의 대다수 동수들이 이분의 주장을 소화시킬 수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지.

사형께서 주장하시듯이 스승님의 폭력성속에서도 가르침을 볼 수 있고 그것이 제자들의 고정관념을 깨어주기 위한 스승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맞는다고 할지라도 그 같은 사실을 소화시킬만한 인식들이 드물거든.

사형이 지금껏 동수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어.

이 말은 그분이 절대 수준이 낮거나 수행력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냐.오히려 너무나 넘쳐서 도가 넘었다고 봐야해.

사람들 대부분은 명상을 해서 도가 높아지면 사람이 순해지고 착해지는 것만 생각할 줄 알지 엄청난 파괴의 힘을 함께 갖춘다는 것은 생각지 못하거든.

이러한 일을 인도의 요가에서는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어.

창조의 능력의 신인 브라흐마와 유지하고 지탱하는 능력의 비슈누, 그리고 파괴의 신인 시바, 이렇게 세 개의 인격화된 신으로 하나의 신을 나누고 있는데 이것을 보더라도 우리들이 알고 있는  부처라는 개념은 어느 한부분의 의식일 뿐 전체적인 신의 형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야.

흔히들 착하고 자비심 많은 이들을 부처와 같다고 하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맞지 않는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거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 와서 때리더라도 맞고서 좋아라고 하는 바보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되겠지만 이렇게 말할 경우 참된 신을 설명하기는 곤란하지 않겠어?

물론 모든 것이 부처라는 개념이라면 맞는 말이 되겠지만 우리가 말하듯이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 되는 거야.

사형은 내가본 바로는 대단하신 수행자인 것이 사실이라 여겨져.

하지만 그분의 생각이 맞는다고 해서 우리들이 아무에게나 그렇게 한다고 하면 엄청난 마찰이 생기게 되는 거야.

우선 당장 나만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그분의 말씀을 소화시키기가 어려울 때가 많거든.

도대체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있다 하여도 지켜봐 줄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거였어.

그들의 인식이 나만 못하다고 해서 그 당장 나무란다면 반발을 할 것은 뻔 하지 않겠냐는 거지.

때에 따라서는 엄청난 충돌을 빚기도 하는데 그분이 지금껏 수없이 많은 충돌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던 거야.

수없이 많은 비난과 원성을 받았지만 십 수 년을 끄떡없이 버티어 오신 점은 참으로 존경할만한 일이 분명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행동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또 다른 내 시각이거든.

아무리 좋은 법문이라도 쓰일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그분의 용기가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하는 많은 분들에게는 폭력성으로 밖에 비춰지지 못하다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으로 이제는 그만하시라는 충고의 말씀을 드렸던 거야.

아들아!

이분은 사실 우리들이 본받을 점이 많은 수행자라는 것을 알아야해.

누가 이분과 같은 용기를 낼 수 있겠니?

수많은 동수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소신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과감하게 내뱉을 자가 몇이나 되겠냐는 말이거든.

누군가는 이분과의 다툼으로 동수들이 센터로부터 등을 돌린 점을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을 보자면 그렇지도 않아.

어차피 갈 사람들은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등을 돌리게 되어있고 가지 않을 사람은 그보다 더 지독하게 싸워도 가지 않고 지금도 버티고 있어.

이분과의 다툼으로 등을 돌렸다기보다 인연이 다되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간거지.

솔직한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이분이야말로 한국 관음법문을 대표하는 중책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왜 센터 일에 관여 말라고 말씀 드렸냐고?

내가 말하지 않았니?

동수들이 이분을 이해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아직까지 이원성의 벽은커녕 물질적인 면을 넘어서지도 못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이분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겠냐 이 말인 거지.

이것 역시도 그들이 그들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이긴 하겠지만 우리들이 진정 발전을 원하고 있다고 볼 때 이분의 주장이야말로 어찌 보면 상당히 진보된 것일 수도 있어.

부처라는 의미를 오로지 착하고 순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우리들의 고정된 시각만으로는 진정한 부처는 볼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이거든.

그날 우리들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부처라는 것은 편안함과 즐거움만을 주는 이가 아니라 엄청난 파괴의 힘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모든 것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존재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어.

우리들의 부정성을 한칼에 절단을 내버릴 정도의 파워를 갖춘 분이야말로 이 세상을 구할 자격이 있는 것이지 나약하게 순하기만 해서는 남의 영혼을 책임질 그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들이 모시고 있는 스승이야말로 실로 대단하신 분이 아닐 수 없었고 다시 한 번 우리들은 진정으로 위대한 스승을 향해 찬미가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어.

우리들이 스승에 대한 찬양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어느덧 날이 새고 있었고 또다시 우리들은 선행사의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 있었으니 우리들의 대화도 여기에서 멈추었다가 다음에는 또 다른 일로서 새로운 장을 열어보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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