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162)

배가번드 2022. 6. 1.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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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늘은 낮 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을 하였어.

매일같이 매여져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묶여서 지내면 스트레스로 인해 사나워 진다고 하기에 가끔씩 풀어놓거든.

아이들을 핑계로 운동도 할 겸해서 풀어주곤 하는데 오늘은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어.

나이로는 강산이가 제일 많지만 덩치는 원보(元寶)가 자장 큰데 지금껏 둘 사이가 무척 좋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한바탕 일이 벌어진 거야.

가끔씩 아이들 운동을 시킬 겸 개 사료를 공중으로 던져주는데 강산 이는 잘 받아먹지 못하지만 원보라는 수놈은 아주 잘 받아먹어.

그 모양이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운동도 될 것이라 생각해서 늘 그렇게 해 나왔는데 오늘따라 사료가 제 앞에 오지 않는다 여긴 원보란 놈이 강산이를 물어버린 거지.

지금껏 서로 사이가 좋았고 수놈이라 원보에게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대하던 강산이 이었는데 먹이 앞에서는 그러한 것쯤은 소용이 없나 보았어.

서로 물고 뜯는데 무서울 정도로 싸우는 거야.

내가 소리를 심하게 지르고 나서야 싸움을 멈추었는데 이 둘의 싸움을 보는 순간 이 세상의 일들이 떠오르더구나.

과거 내가 살아나온 일들이 생각나는데 인간들이라 해서 이와 같은 개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생각이 들었던 거지.

때마침 인터넷 뉴스에서는 F.T.A. 협상 때문에 분신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세상에 만연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

분으로서야 우리나라를 위해서 분신을 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세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어?

이 모두가 자신의 나라를 잘살게 만들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말이야.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농민들을 잘 살도록 해야 할 것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실무자들은 국민들에게 무엇이 득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지라 적게 주고 많이 받기위해 노력을 하는 거지.

이 같은 일을 놓고서 잘 잘못을 따진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거든.

이쪽 편에서 보게 되면 이것이 옳게 되고 저쪽 편에서 보게 되면 저것이 옳게 되는지라 어느 것도 틀리다고 할 수도 없고 맞는다고도 할 수 없는 거야.

경제논리상 어떻게든 상대방보다 내가 득을 봐야 마땅한지라 그 같은 행위로 시비를 가리는 짓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다 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들의 목표점이 만약 물질적인데 있지 않고 영적인데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들은 이와 같은 일 모두를 부질없다 여기게 될 거라 생각해.

경쟁업체보다 좀 더 많이 팔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리는 일을 당연시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그러한 일을 잘하는 것으로 상을 받기도 하는데 그 같은 행위를 영적인 측면에서 보게 되면 판단이 많이 틀리게 될 거라는 거지.

물론 이 같은 일도 얼마나 범위를 넓히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를 만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일거라 여겨지거든.

다시 말해서 스스로의 행위를 만족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인 거야.

이 같은 점 때문에 늘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데 누군가와 거래를 하게 될 경우 마음 깊숙한 곳의 내 욕심들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것을 항상 보고 있어.

나에게 거래를 청해오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득을 볼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게 되는 거지.

처음 내가 중국을 들어오게 되었을 때부터 이와 같은 마음들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내게 늘 주어져 왔거든.

다들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이득을 볼 것인가를 놓고 보이지 않는 암투들이 벌어졌는데 너무나도 심각하게 나를 압박하고 있었고 그 일로 내 어금니가 두개나 빠져야 했어.

특히나 중국의 식구들은 더욱 정도가 심하였는데 나를 단련시키고자 하는 신의 임무를 너무나 충실히 하는 바람에 애를 먹어야 했던 거야.

이 모두가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인데 나또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는 그들과 별 다를 바 없었던 것 같아.

다만 나로서는 내가 해줄 만큼 해주었다고 여기고 있고 그들은 받을 만큼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인식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수입원이 중단된 지 오래된 공장을 유지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로서는 충분 이상으로 해 준 것이 되거든.

그러나 사람들의 욕심이라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좋아하는지라 내 어려움 따위는 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았어.

이것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임을 물론이야.

다들 자신의 행위를 이해해 주기만을 바랄뿐 남들의 어쩔 수 없는 행위를 이해하려고 들지는 않아.

나를 고발하겠다고 말을 했던 중국의 동수도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거나 찾아오는데 그 같은 일을 가능케 만드는 신의 손길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거든.

누군가는 자신이 남에게 한 일들은 전혀 생각지도 않으면서 타인을 비난하는 것을 보는데 그 같은 일이 가능한 것도 욕심에서 비롯된 일인거지.

이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인식의 폭 때문이기도 하며 그가 그 사람답게 이생을 살아가도록 안배한 신의 손길 탓이기도 해.

이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하나님은 나에게 자신의 욕심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장악을 하고 있기에 그러한 일이 발생되는 것인데 이 같은 일을 이상하게 보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탓인데 누구를 원망하겠냐는 거야.

그렇다면 항상 손해만 보고 살아야 하는 거냐고?천만에 말씀이지.

아들아!

우리들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아니?바로 이러할 때 써 먹으라고 있는 거야.

상대방이 나를 이유 없이 때린다 여겨지면 피 터지게 싸워 보는 거지.

 

잠깐!

스톱!

뭔가 이상한데요.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만 때리면 참으라가 아니라 함께 피 터지게 싸우라니요.

예수님은 왼쪽 뺨을 맞거든 오른쪽 뺨을 마저 내밀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아들을 상대로 교육적인 말씀을 하시는 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씀을 하시는군요.뭔가 착각을 하신 것이 아닙니까?

 

 

글쎄?

과연 그럴까?

만약에 말이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행동을 해보렴.

아마도 상대편은 너를 때린 후 오히려 돌아서서 바보 같은 놈이라고 비웃게 될 걸.

결코 너를 성자 같은 분이라고 존경하거나 높이 떠받들지는 않는다는 말이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세상 사람들은 그 같은 말을 이천년이 지난 후까지 진리의 말씀이라 여기고 있는가 말입니다.

 

그 말의 진실은 우리들 각자에게 달려있음을 네게 상기시켜 주어야겠구나.

너와의 대화에서 늘 말하는 것이지만 그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모든 네 행위들은 네게 만족을 가져다주는가 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하는 거야

.네가 누군가의 공격에 대해서 맞대응을 하지 않고 포용하는 태도로 일관하였을 경우 네가 그 일로 만족을 한다면 그야말로 좋은 일이 되겠지만 마음속에서 분한 마음이 들끓는데 불구하고 참게 된다면 너에게는 아마도 좋지 않은 결과가 올 거라 생각해.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그 당시 그 말을 듣는 제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씀을 해주신 거라 여길 수 있으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현실에 맞게 해석이 되어야 마땅한 일인거지.

이것을 마치 불변의 진리라 여기게 되면 누군가가 때리더라도 무조건 맞으라는 말이 되거든.

이래서야 어디 세상 겁나서 살겠어?누군가 예수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때리면 예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는 사람들은 무조건 맞고 살아야 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놓고 본다면 이 천년이 지난 예수님 말씀을 진리의 말씀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짓을 남들이 하게 되길 바라는 얌체들이라 봐야해.

나는 당신을 때리더라도 당신은 참고 맞아 달라는 말인 거지.이 같은 일은 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어.

누군가 때리면 그 일이 전생에서부터 일어난 일이기에 맞으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이 또한 말도 되지 않는다 생각하거든.

만약 누군가가 나를 때리는 일이 전생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면 그 같은 일이 일어난 시점인 전생에서의 그 전생은 어떠할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

사정이 이러하다면 결론은 아주 명백한 거야.부처님의 가르침이 내가 맞는다고 여겨서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좋은 일이 되겠지만 나를 기쁘게 하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분노하게 만든다고 한다면 상대방을 향해 하이 킥을 날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물론 이와 같은 일로인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결과물만큼은 행위자인 내가 고스란히 접수를 해야겠지만…….

아들아!

내가 오늘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말이야.

내 주위의 수행자들이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짓을 하고서도 자꾸만 전생을 팔아먹기 때문이거든.

자신이 남에게 아주 명백하게 피해를 주고서도 반성은커녕 전생을 들먹이고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어.

그러면서 남들에게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거지.

이 같은 일은 나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는데 지금껏 내가 비판한 일들이 과거 내가 저질렀던 일이야.

어찌되었건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갚아야 할 일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일일 경우 그것은 정당화 될 것인데 만약 그것이 정당치 못한 행위라 간주된다면 법적인 투쟁도 불사할 수 있어.

왜 이 세상에 법이 존재하겠니?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불이익의 순간에 참지 못하면 법적으로 해결하라고 그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지 않는가 말이야.

하지만 이러하더라도 우리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어.

이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가 하는 문제인거지.과거 내가 겪은 일들을 볼라치면 이와 같은 일들은 전혀 나에게 이득을 가져오지 못하였는데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였거든.

운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이와 같은 일을 아주 명확하게 볼 수 있어.운이 없어 사고가 나게 되어 시비를 따져보면 언제나 손해를 보는 것은 양쪽 모두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야.

이쪽 편에도 서보고 저쪽 편에도 서보니 결국 누구도 잘한 것도 없고 잘못한 바도 없더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는 거지.

상대편의 잘못이 인정되어서 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의 일을 종합해보면 결국에는 손해를 보게 된다는 말이거든.

그런데 아들아!

우리들이 오늘 전생까지 들먹이면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약간 우스운 일을 말해야 할 것 같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연에 따라 무척이나 많은 일들로 힘이 들어 하고 있는데 개중에는 남의 일에 참견을 해서 힘들어 하는 경우도 왕왕 있거든.

내 주변에서도 가끔 이러한 동수들을 보는데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어.

육신 스승께서도 누차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시는데 불구하고 남의 일에 참견들을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자신 또한 상처를 받는 거야.

타인들이 인과를 가지고 있던 그렇지 않던 그것은 엄연히 타인들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그들만의 문제인데 괜히 끼어들었다가 낭패들을 보는 거지.

이것은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신업(新業)을 짓는 거라 할 수 있는데 남의 일이 자신의 일이 되는 경우거든.

이런 말이 있어.

싸움을 말리다 자신이 싸움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말이야.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인데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짓이 아닐 수 없거든.

누군가 상담을 해올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카운슬러가 될 수 있겠지만 청하지도 않은 일에 끼어들었다가 욕을 얻어먹고는 마치 그 일의 원인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이 일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어.

이래서 이 세상을 다녀간 많은 과거의 스승들은 하나같이 남의 인과에 개입을 하지 말라는 말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거야.

이 같은 점을 내 육신 스승의 경우 더욱 더 심하게 제자들을 단속 시키시는데 자신의 일이 아닐 경우는 질문도 못하게 하셔.

그런데도 왜 그와 같은 제자들이 있냐고?

그게 바로 자신의 에고 때문이지 뭐겠니?

자신이 남들의 일을 모두 이해하고 있고 사랑이 넘치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일인거야.그래서 일찍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

 

"케샤르의 것은 케샤르에게 주라"

 

타인들의 일에 일체 관련하지 말라는 말인 거지.

분명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세금을 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놓고 질문한 내용에 대답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물질적인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한 거야.

정말 영적인 수행의 길을 걸어가는 수행자라고 한다면 타인들의 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지 않겠냐는 거야.

아들아!

우리 수행자들은 자신들의 수행등급을 무척 궁금하게 생각하거든.

그러한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놓지 못하고 있었어.

수행의 등급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가를 보게 되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볼 수 있는데 아직까지 남들의 일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세상의 많은 일들을 경험할 필요가 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자신이 그러한 경험을 하고 싶기에 남의 일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 거지.

하지만 타인들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이미 그 모든 일들을 초월하였다 볼 수 있지 않겠어?

이미 모든 일을 경험해 보았는데 무슨 관심이 더 있겠냐는 거야.

이와 같이 세상의 많을 일들을 경험해본 사람은 될 수 있으면 분쟁을 피하려고 할 것이 분명해.

왜냐하면 그러한 경험을 수없이 해보았거든.

더 이상 그러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는 거지.

이 같은 일은 진정한 낚시꾼들을 보게 되면 잘 알 수 있는데 그들은 낚시를 고기를 잡는 재미로 할뿐 먹기 위해서 하지는 않아.

언제가 T. V를 보면서 느끼게 되었는데 물고기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훌륭한 스승들이라 생각이 들더구나.

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을 하겠니?

그들은 워낙 많이 잡아 보았기에 이제 물고기를 사랑하게 된 거야.

그들과 잡고 잡히는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기 때문이거든.이 같은 일은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게이츠과 투자의 귀재 워렌버핏 같은 이들이 그러하다고 생각해.

그들은 이미 돈을 버는 것을 심하게(?) 경험한지라 이제는 더 이상 돈 쌓기를 하지 않는 거지.

도리어 사회로 환원시키는 작업을 하는 중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들 수행자들이 알아야 할 핵심인거야.물론 이 같은 일을 사실화 시키지 못하는 이들은 내말에 동조를 하지 못하겠지만 누군가 내말을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내말을 이해하리라 생각해.

아직도 수행자들 중 누군가 물질적인 성공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면 그것은 전혀 비난 받을 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겠지만 완전하게 경험하지 못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할 수 있어.

그래서 내 육신 스승께서는 자꾸만 제자들을 향해 단순하게 살 것을 말씀하시는 거야.

 

그렇다고 한다면 물질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못사는 것이라는 말입니까?

마치 그들은 아직도 과정을 겪고 있으며 졸업을 한 사람들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라 들리는군요.

 

네가 그렇게 들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네가 사실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사실이 될 거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이원적인 해석을 하지는 않는데 내 말이 어떠하더라도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할 수 있거든.

물질적으로 초점이 맞춰져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서 영적인 수준이 낮다는 개념은 나에게 있지도 않아.

앞서 예로 들어준 낚시꾼들이나 재벌들의 경우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문제일뿐이지.

세상의 수많은 종류의 삶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교훈이 필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들 각자 자신들 인거야.모든 문제점들이 바로 내 인식의 확장을 위해 존재 하는 것이라는 것을 사실화 한다고 하면 오늘 내가 비판적인 화살을 퍼부은 사람들조차 우리에게는 스승들일 수 있어.

그들이 있기에 그들을 통해 교훈을 말할 수 있었고 그들의 문제점들이 나에게 작은 깨달음을 가져다 준거지.

게다가 그들은 내안에 어떠한 독소들이 있는가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말이야.

아들아!

언제나 말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악행들은 내 것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며 내게 보이는 모든 문제점들 또한 내 것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내가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짓을 한 사람이라 묘사하는 그들의 행위는 모두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일들이며 앞으로 내가 저지르게 될 행동들이야.

이 모든 것은 시공이 없는 우주의 시간으로 보자면 지금 이 순간 동시에 펼쳐지고 있기도 하고…….

이 같은 개념이야말로 우리들을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고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일이기도 한 거지.

그래서 항상 내가 말을 했지 않니?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너의 인식이라고 말이야.

너에게 온 우주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신 분은 우리 안에 내재한 하나님이라는 말을 남기며 이 장을 마무리 할까 해.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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