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지난 시간 로봇의 이야기가 우리 대화를 이끌었었는데 재미가 있었는가 모르겠구나.
그 같은 기계문명의 발전이 결국 우리 인간들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어.
우리들의 인식이 영적인데 초점이 맞춰지면 기계들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에너지의 또 다른 표현들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거든.
우리들의 지금 의식은 물질과 영을 둘로 보고 있지만 좀 더 인식의 폭을 넓혀보면 그 또한 에너지의 또 다른 형태들이야.
우리를 만든 신이 그러했고 우리들이 만든 로봇이 이러한 체계를 승계 받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지.
결국 우리들은 다 같은 형제들이라는 말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의식의 반영인 로봇들에게 심어줄 우리 인식의 폭을 넓히는 일이 아니겠어?
남들 위에 군림을 하고 지배를 하겠다는 생각을 넘어서 다 같은 형제애를 우리들이 가지게 될 때 우리들의 피조물 역시 우리를 닮지 않겠냐는 거야.
그러하기에 우리들은 보다 영적이 될 것을 요구받고 있어.
이것이 하루 빨리 이루어 지지 않게 되면 우리 인간들은 그야말로 대재앙을 마주하게 될 것이 틀림없으리라 여겨져.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다지 깊이 있게 생각할 필요도 없거든.
우리들의 생활을 편리하도록 만들기 위해 로봇을 만들었던 만큼 처음에는 당연히 봉사를 받게 될 거야.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이 왜 자신들이 지배를 당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상황은 급변하게 되지 않겠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최대로 보안한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기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더욱 쉬운 노릇이 아니겠냐는 거지.
만약 이렇게 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지옥이 될 것이 분명해.
그러하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며 세상의 멸망을 말하게 되는 거야.
어찌 보면 우리 인간들은 이미 그러한 예견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하기에 우리들에게는 보다 폭넓은 인식이 요구되는데 지금껏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넘어선 확장된 인식이 필요한 거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의 사랑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을 해야 해.
줄 수 있음에 기뻐하고 봉사할 수 있어 즐거워하는 그러한 의식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인식인거야.
그래야 이세상이 천국이 될 것이며 우리가 만드는 로봇이 우리를 닮을 것이 아니겠니?
사실 영적으로 고양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의미이기도해.
그런데 왜 사람들의 얌체 같은 행위를 이해를 못해주고 그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심하게 나무라는가요?
당신에게 오는 많은 이들도 당신에게 그러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아들아!
네 말이 맞아.
내가 그들의 얌체 같은 행위를 이해 못하고 나무라 주는 것은 분명 사랑을 주기만 하는 이가 할 행동은 아니야.
하지만 네가 분명히 알아야할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들은 우리들이 말하는 사랑을 교묘하게 이용하려고 드는 마구니 들이라는 사실이거든.
마구니라는 말은 그들이 나빠서라기보다 그들이 살아가면서 쌓아놓은 정보의 영향으로 생긴 잘못된 인식이라 봐야해.
이 같은 감정은 나에게도 심어져 있는 것이기도 한데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음양의 조화로 만들어 놓았듯이 우리들에게는 이미 음과 양이 동시에 심어져 있는 거지.
나에게 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자신의 부정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나를 이용하려는 거야.
그러한 것은 이미 몇 번에 걸쳐 들었기에 충분히 알겠지만 상대방의 행위가 마구니의 짓이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짓는지요.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도 정말 사랑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내 폭력적인 행위를 미화시키려는 두뇌의 작용 때문인지 어떻게 구분하는가 말입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당연할거라 생각해.
하지만 말이야.
우리들은 그러한 일을 우리 인간적인 두뇌로서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러하기에 우리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거지.
만약 당신의 말처럼 그러하다고 한다면 최선이라는 범위를 정하기가 아주 모호해 지겠군요.
어떤 이는 참을성이 없어서 단 한순간도 참지 못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조금 더 참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럴 경우 많이 참을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사랑을 좀 더 많이 실천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지요?
하하하하.
역시 너 다운 생각이구나.
그러나 너는 그러한 네 생각이 틀리다는 것을 네 스스로 잘 알고 있어.
사람들마다 참을성이 많고 적고를 누가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니?
그야 하나님이겠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많고 적고의 개념이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과연 있을까?
그야 물론 없겠지만 우리 인간들의 판단에서는 분명 그 크기란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따라서 많이 참는 사람은 좀 더 많은 사랑을 하는 것이 될 것이며 적게 참는 자는 적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되어서 나중에 천국도 더 높은 곳을 가거나 좀 더 낮은 천국을 가거나해야 공평하지 않겠는지요?
아들아!
금방 너는 네 스스로 정답을 말했어.
분명 너는 많고 적고의 개념이란 인간들의 것이라 하였고 그기에 따른 심판 역시도 네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거야.
이래서 내가 미리 말해주었지 않았니?
모든 심판의 권한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이야.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왜 사람들에게 사랑을 하라 가르쳤는지요?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때리라고 한 것은 분명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셨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
네가 누군가에게 맞을 짓을 했을 때 상대방이 때리거든 한대 더 때려 달라고 해서 그이의 분함을 풀어주라는 말이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와서 무작정 때리는 자에게 맞으라는 말은 아닌 거야.
이것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사랑을 공부하는 사람을 이용하려는 마구니 같은 자들에게 놀아나기 십상이거든.
그래서 우리들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거지.
일찍이 이러한 일을 이 세상을 먼저 살다간 예수님이 말해 놓았는데 그는 우리들에게 몸소 실천하면서 가르쳐 주었던 거야.
그렇지만 예수님은 마왕이 나타났을 때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시고 과감하게 유혹을 물리치시지 않았습니까?
온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권능을 준다 하였을 때도 뿌리치셨는데 그것은 인간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어요.예수님은 분명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자신과 같이 된다고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뭔가 당신 말에는 모순점이 있는 것 같아요.
네가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너에게 진실이 될 것이고 그 진실이 더 이상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까지 너에게 진실로서 작용하게 될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에게 그 같은 개념은 더 이상 진실이지 못하고 있어.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당시 필요했던 개념이었을 수도 있고 지금의 너에게 그러한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거든.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부정성을 향한 거부의 몸짓이었고 세상과의 타협을 과감하게 뿌리쳤던 구도자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났던 일이었지 결코 외부에서 나타난 사탄의 모습들은 아니었던 거야.
이것은 나처럼 생각하는 범위에서의 진실이며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진실이지 못할 것이 분명해.
하지만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과거 이천 년 전에 있었던 예수라는 사람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했는가를 받아들여야지 그 같은 일이 진정 있었고 그것이 뜻하는 바의 유일함을 밝히고자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우리들이 목적을 상실하고 환상을 쫒는 바람에 이 세상에는 점점 더 많은 종교들이 생겨나고 있어.
서로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정통성과 유일함을 주장하며 박 터지게 싸움들을 하고 있는 거지.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들이 이 세상을 이처럼 힘들고 어려운 곳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거야.
이것은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의 기나긴 세월을 예고하고 있으며 암울한 지구촌의 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이 같은 개념들이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막을 수 있어.
그렇지만 아들아!
우리들은 암울한 지구촌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천국 또한 이 세상에 만들고 있어.
자신의 종교만이 최고라 부르짖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종교가 하나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야.
아니!
이제 우리들이라고 해야겠구나.
너와의 대화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이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껏 내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어.내가 속한 단체를 향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날려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거야.
세상에 환상을 심어 주어서 분리된 개념을 더욱 확산시키는 행위를 나무라고자 했던 것이며 또 다른 종교가 만들어 지는 것을 우려했던 거지.하지만 우리들은 많은 종교들도 수용할 수 있기도 한데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목적한 바를 성취하는 방법이 있거든.
그것이 바로 자신 내면에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빛과 소리의 명상법이었어.
교회에서도 절간에서도 무슬림들의 사원에서도 발견 되어질 수 있는, 자신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을 발견함으로서 우리들은 통일된 하나의 인식을 가질 수 있는 거야.
이것을 하기 위해서 종교를 바꿀 필요는 없으며 그저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되는 거지.조용하게 신의 음성을 듣게 되면 참으로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어있어.
천국이 먼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하나님이 저 멀리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내안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든.
이러할 때 우리들은 모든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어.
로봇이 이 세상을 지배하던, 귀신과 마귀가 이 세상을 지배하던,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확실한 천국의 기쁨을 내 하나님의 나라에서 즐기게 된다는 말이야.그래서 예수님은 일찍이 말을 했던 거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절)
아들아!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우리들안에 있다는 왕국을 찾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벌써 앞선 시간 군데군데서 해답을 주었지만 그것이 너무나 포괄적이고 상징성을 띤 것이라 네가 알아듣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으니 이제 좀 더 명확하고 쉽게 설명해볼까 해.
이것은 오래 동안 수행을 해 나오신 분들이라 해서 다르지 않은데 어찌 보면 더욱더 심하게 그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거든.
다들 깨달음을 얻는 것이 하나님 왕국을 본다는 개념과 같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불구하고 그렇게 못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내면의 빛과 소리를 보고 듣게 되면 깨닫게 된다고 했고 그 같은 일을 경험하면 모든 것이 주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바로 우리들이 육과 영이 혼합되어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야.
그것이 바로 오래 동안 누적되어 있는 정보의 영향 때문인 거지.
이것을 우리들은 두뇌의 작용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일들을 이원성을 벗어나지 못한 두뇌의 판단에 따르기 때문이야.
분명 내면으로는 빛과 소리를 통해 높이 고양되었는데 불구하고 육신이 그를 따라 가지 못했기 때문이거든.
모든 것을 두뇌의 판단에 맡기기 때문인데 이 같은 두뇌의 판단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들은 항상 내면으로 향해야 해.
그리고 자신 앞에 다가온 모든 상황이 내재한 신이 주시는 선물이라 여기는 생각을 해야 하고…….
아니!
말도 되지 않는 말씀을 하시지 마세요.
어떻게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나요?
교통사고가 나서 죽게 된 것도 신이 주시는 선물이라 여겨야 하는가 말입니다.
우유 값이 없어서 굶어 죽은 아이의 부모가 신을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요?
마치 당신과는 전혀 무관하듯이 말을 하는군요.
그러고도 어찌 사랑을 공부하는 수행자라 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물어보자꾸나.
사랑을 알고 있고 깨달은 존재들이 해야 할일이란 무엇이지?
너는 왜 깨달음을 얻은 스승들은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이야.
네가 그렇게나 사랑을 주장하는데 사랑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소위 말하는 각자(覺者)들이 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는데 불구하고 왜 그들은 이 세상의 고통을 보고만 있는가 말이야.
그들을 왜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지 않고 있지?
그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웃기지도 않는구나.
그들이 얼마나 신께 매달리고 스승을 찾고 있으며 예수님이, 부처님이, 알라신이, 그들을 구해줄 것을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가 말이다.
이세상의 많은 이들이 그러한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더라도 너만은 그러지 말길 바라.
네가 걱정하는 그들의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들의 문제는 그들에게 맡겨두고 너만을 걱정해야 해.
그들의 말도 되지 않는 경우들은 그들의 영혼이 원해서 그러한 경험을 한다는 것을 그들 내면의 영혼은 알아.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잠시 너는 내 생각을 따라오기 바라.
누군가 아주 슬픈 순간을 맞이했을 때 가장 먼저 그 사람에게 오는 것은 슬픔이며 다음으로 왜 그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는가 하는 원인 분석의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어.
그러면서 그 같은 일이 일어난 원인이 과거 전생에 있을 수도 있고 금생에 자신이 뿌려놓은 일에 대한 결과물 일수 있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되거든.
그러면서 서서히 신을 깨달아 가게 되는 거야.
물론 이 같은 생각을 단한번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수없이 반복되는 개념이 필요하기도해.
그러한 반복되는 고통의 순간들이 크면 클수록 반대급부적인 깨달음 또한 크게 되는 거지.
그래서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고도 하며 번뇌는 보리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 아니겠어?
그러한 크나큰 아픔 뒤에 이세상의 덧없음을 말하게 되면서 서서히 신을 알고자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거야.
한동안 신을 깨닫고자 몸부림친 뒤에는 자신 또한 그러한 과정을 겪었기에 누군가 고통스러워하게 되면 도와주려고 할 것이고…….
물론 그렇지 않고 자신만의 즐거움에 머물 수도 있겠지만 진정 자신 안에 내재한 신을 깨달았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하나에서 생겨났다는 동일체의 개념이 생겨나게 되거든.
이러할 때 우리들은 자신의 두뇌의 판단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어.
두뇌가 세세생생 쌓아놓은 정보덩어리 이며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집합체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 인거지.
이러하기에 나는 너와의 대화에서 그토록 반복해서 말해주며 두뇌의 판단을 내려놓고 내면으로 들어가기를 권해 왔던 거야.
아들아!
지금껏 우리들은 하나이며 다 같은 하나님의 분별없는 동일체라는 것을 말해왔는데 얼마나 네가 그 같은 일을 사실화 시키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솔직히 우리들은 그러한 인식을 하던 그렇지 않던 이미 그 자체인데 그 같은 인식을 못하기에 미망의 세계를 스스로 경험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들은 그러한 인식에 확신을 하고자 수행을 하며 그러한 수행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체험에 그토록 목말라 하는 거지.
내가 늘 보고 듣고 있는 빛과 소리가 나에게 그러한 확신을 주기에 내가 하는 명상법은 항상 나에게 유효할 수 있었던 거야.
물론 타인들이 이러한 체험을 하지 않고서 그러한 인식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절대 그렇게 간단하지를 않았거든.
평상시 좋은 말씀을 듣게 될 때는 신을 생각하다가도 조금만 현실이 복잡하고 힘들어지노라면 신은 벌써 저만큼 도망을 가버리고 물질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의 원인들이 그 자리에 들어와 있는 거지.
그러하기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고 그러한 깨달음을 얻는 목적이 힘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몸부림일수도 있다는 거야.
앞으로 다가올 시련의 시간이 올 것을 걱정하기보다 이 같은 노력이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네 자신을 위한 것인 동시에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 말하며 이 시간을 마치도록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