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작은 소유욕도 집착이다.

배가번드 2022. 6. 5.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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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없는 사랑을 하라”

유튜브 동영상에서 어떤 유명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깨달은 이들 대부분이 말하는 내용이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자신의 내재한 신을 깨달아 알라는 말일뿐 육신을 가진 채 이런 사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저 대상 없이 포괄적인 사랑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대상이 있다면 사랑에 있어 집착은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말하는 집착은 상대방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퍼붓는 스토커 같은 사랑공세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정상적으로 사랑을 하는데 있어 집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육신적인 사랑에 있어 집착 없이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자체가 무의미해져 버립니다.

예를 들어 한사람의 여성이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모두 사랑한다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사랑을 못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개방적이라 자유로운 사랑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분별없이 사랑하게 되면 결국 사랑하는 행위자체에 의미부여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실지로 오쇼 라즈니쉬라는 영적 스승이 이런 아쉬람을 설립하고 운영한 걸로 알고 있으며 나중에는 실패했다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으로 완전해진다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이글을 읽는 이 가운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도 다 사랑할 경우 그것을 사랑으로 인정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동영상을 보신 여성한분은 댓글을 통해 스님이 약을 팔고 있다 욕을 한 겁니다.

사랑도 못해본 사람이 사랑을 가르치고 있음을 비난한 거지요.

알고 보면 이런 일은 스님으로서는 당연한 겁니다.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자신의 원에 따라 그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이렇다 할지라도 스님조차 더 좋아하는 신도와 덜 좋아하는 신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죽하면 성경에 질투하는 하나님을 기록해 놓았겠습니까.

따라서 나라면 집착 없는 사랑에 목말라 하는 것 보다 내 이웃에 대한 사랑에 관심기울일 겁니다.

내 옆에 가장 가까이 와있는 인연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나보다 다른 이를, 또는 다른 무엇인가를 더욱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놓아주어야한다 생각합니다.

그들 안에는 집착 없이 사랑하는 존재가 들어있음을 내가 알기에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집착이 상대방의 육신에 머물면 소유하려 할 것이고 집착이 영에 머물면 소유 당하려 할 겁니다.

그래서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거지요.

이런 이유로 나는 칼자루를 쥐고 있지 않으며 온전히 당신께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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