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에서 주요소 아르바이트 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하던 김치공장이 망하고 공장세를 못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일을 했던 겁니다.
그때 경험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물질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는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물질에 굴복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거지요.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곳이 부유층들이 드나드는 곳이었기에 그들의 행태를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조수석 좌석을 앞으로 눕히고 뒤로 기댄 체 기사에게 반말을 해대는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부유층 삶의 행태를 확인했던 겁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가 보는 앞에서 기사에게 욕지거릴 했었지요.
차에 주유하던 기름을 입에다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10에 7.8은 이런 행태를 보여주었으니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그들 삶의 모습이 어떨지는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이는 자신은 그렇지 않을 거라 말하지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지요.
스스로가 얼마나 위선을 부리고 있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할 때는 얼마든지 겸손할 수 있지만 막상 돈이 생기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런 일에 대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인의 아들 친구하나가 복권에 당첨이 되었는데 말투가 달라지더라는 겁니다.
친구들 모임에 나타난 복권당첨자가 그날 경비를 자신이 내겠다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고 합니다.
“자네들이 무슨 돈이 있겠나 오늘은 내가 내겠네!”
평소 같으면 욕설을 섞어가며 서로 분담하자 말하던 사람이 말투가 바뀐 겁니다.
스스로가 생각할 때는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이런 일은 누구나가 경험합니다.
비근한 예로 누군가 곤란지경에 빠진 사람이 신에게 기도를 해서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면 언제 기도를 했나싶게 언행이 틀려집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지요.
신이 자신은 몰론 타인의 마음까지 움직여서 자신을 낫게 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또다시 어려움이 찾아오면 울면서 기도를 합니다.
“지난번에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랬으니 부디 용서하시고 이번만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이제는 다시는 거만하지 않을 것이며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며 평생을 신을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벌써 이런 일이 얼마나 반복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큰소리를 칩니다.
이런 일을 두고 현장법사는 손오공을 비유해서 인간들의 간악함을 지적했던 겁니다.
재주가 많았던 손오공은 절대 굽히는 법이 없었는데 단지 머리에 두른 “금고아”만이 그를 통제할 수 있었지요.
금고아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이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손오공이 자신의 재주를 믿고 까불 때마다 삼장법사가 주문을 외워 고통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인간 삶을 정확히 비유한 겁니다.
그래서 신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겸손 하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병에 시달리거나 물질적 어려움에 봉착할 때는 그렇게나 신에게 매달리던 사람들이 형편이 나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하는 점을 볼 때 고난은 신이주시는 또 다른 축복입니다.
물질은 무거워 땅으로 내려가고 영은 가벼워 위로 올라가니 이비밀이 실로 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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