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바꿀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

배가번드 2022. 6. 2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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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은 하나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겁니다.

빛과 어둠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둥근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출발점이 어디든지 그곳은 시작점인 동시에 끝입니다.

이것을 숫자로 표현하면 무한대이지요.

0을 기점으로 해서 플러스 영역과 마이너스 영역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플러스 영역과 마이너스 영역은 무한대에서 만납니다.

유한이 무한대에서 교차되며 서로 역할이 뒤바뀌게 되지요.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영을 향한 질주가 계속되고 또다시 0에서 만납니다.

0은 꽉 찬 숫자이고 무한의 숫자입니다.

우리가 흔히 숫자하면 0의 다음은 1이 되겠지만 두 숫자 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가 놓여있습니다.

예를 들어 0.1을 비롯하여 수많은 숫자들이 그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지요.

이것을 가시적 관점으로 이해하려면 어려우며 인간의 두뇌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태여 설명하기 위해 또다시 빛과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빛이 시작될 때는 무가 폭발을 일으킬 때 입니다.

태초에 삼라만상이 일점에서 비롯되었지요.

빛이 있으라함에 빛이 있었고 어둠과 빛으로 나뉘었다는 성경말씀과 동일합니다.

폭발과 함께 시작된 빛과 어둠은 무한을 기점으로 빛과 어둠으로 분리됩니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밝은 어둠으로 또 다시 옅은 어둠으로 가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점점 밝아집니다.

그리고 작열하는 빛은 곧 폭발과 함께 사그라지며 어둠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우주의 상태입니다.

거시의 세계가 가시적 시각으로 이해될 수는 없고 최대한 표현해보았지만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세상은 이러한 순환의 과정을 공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물론이고 삼라만상 안에 담겨있지요.

음양의 이치로 표현되는 이러한 현상을 벗어나는 일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원성들은 음양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빛과 어둠, 남과 여, 부정과 긍정, 선과 악, 전쟁과 평화, 등의 이원성을 띤 모든 것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요.

그저 나는 노가다 하는 사람에 불과하고 세상은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어렵지도 않고 비싼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값지게 여기는 가치관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쓰레기 같은 이런 잡스런 지식보다는 순간에 집중하며 사는 것을 추천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고 남에게 못할 짓하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진리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고 자신 안에 있으며 그것을 못 보는 것은 자신이 심어놓은 좋지 않은 업력 때문입니다.

늘 시선이 밖으로 향해있고 자신의 잘못을 못 보기 때문이지요.

항시 자신은 정의롭고 타인은 불의하다는 생각으로는 이원성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자신이 위선적이고 더러움으로 가득한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빛을 알 수가 있겠냐는 말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안에 어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고 수긍을 해야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겁니다.

쓰레기더미에서 쓰레기들과 너무 오래 놀았기 때문에 세상과 사람을 삐딱하게만 보는 거지요.

세상은 있는 자리에서 완벽하며 바꿀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인간이고 추악하기 그지없는 인간입니다.

나는 절대 좋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 말 종에 가까운 사람이니 나로부터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오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