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따라기기는 쉬우나.....

배가번드 2022. 8. 10.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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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올라가 사다리작업을 해보면 의지처가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게 됩니다.

밑에서 보았을 때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막상 사다리위로 올라가보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그럴 때 옆에 벽이 있거나 설비파이프 등이 있으면 훨씬 덜 위험합니다.

손 하나만 살짝 댈 수 있는 벽이 있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안심시키는지 해본사람만 압니다.

언젠가 어떤 아이엄마가 외국에 나가 살 때 7살짜리 아이가 그렇게나 위안이 되는 줄 처음 알았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둥번개가 치는 여름날 갑자기 무서움이 밀려올 때 아이가 옆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나 든든하더라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들을 키우나 봅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단순하게 의지하려는 마음 때문만이 아니라 사랑이 고프기 때문입니다.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반려동물을 키움으로서 해소하며 그들을 통해 모자란 사랑을 채우는 겁니다.

방송에서 이런 점을 확인한 적이 있었는데 대형견을 키우던 사람이 산책길에 멧돼지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순간 반려견이 주인을 구하기 위해 멧돼지와 사투를 벌였고 그 틈에 견주는 근처 나무위로 몸을 피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멧돼지는 물리쳤지만 개는 한 달 넘게 치료를 받아야만 했지요.

이일이 있고 난후 견주는 매일 꿈속을 거니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제껏 살면서 누구도 자신을 위해 그러지 않았다면서 개는 더 이상 짐승이 아니라 자식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고 나 역시 이런 점에서는 공감을 합니다만 한 가지 우리가 짚고 넘어갈 일은 있지요.

반려동물이 아무리 주인을 사랑하더라도 인간이 주는 것 모두를 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인간은 사랑만 주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도 주고 때로는 배신감을 안겨줄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고유의 것들이라 할 수 있으며 동물이 아무리 영특하고 지혜로워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할지 모릅니다.

사랑만 주는 것이 좋은 것이지 어떻게 슬픔과 괴로움, 미움과 배신감을 안겨 주는 게 좋을 수 있느냐 하겠지요.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점은 사랑을 알기위해서라도 반대영역에 속한 것들을 알아야한다는 겁니다.

좋아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알아야한다는 말입니다.

내 주변에서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심사를 뒤틀리게 만드는 일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영혼의 완성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앞서도 보았듯이 견주가 반려견의 사랑에 감동받은 것도 알고 보면 세상을 통해 반대영역을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특히 수행자의 삶은 철저하게 번뇌의 과정을 거쳐야하고 세상으로부터 쌓아온 고정관념들이 무너져야 되며 살아나오는 동안 쌓아놓은 각종 쓰레기들을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우면 자신내면에 가라앉은 쓰레기는 절대 일어나지 않으며 누군가 휘저어놓아야 일어납니다.

이런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사이처럼 아주 깊은 인연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골짜기가 깊은 곳에 범이 살듯이 목표가 높으면 시험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영생이나 해탈이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So he drove out the man; and he placed at the east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s, and 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fe.

생명나무는 영생을 뜻하며 그룹과 화염검은 우리가 넘어야할 시험이라 할 수 있지요.

그중에서도 그룹은 케루빔을 뜻하며 “귀여운 아기천사”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순수해야한다는 뜻이니 영혼을 깨달아야한다는 겁니다.

이래서 수행자의 사랑은 전쟁과 같은 것이며 완성을 이룰 때까지 아파야합니다.

물론 아주 쉽게 영생을 얻을 수도 있겠으나 어떤 이들에게는 무척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이런 이유로 영생을 얻는 것과 영생을 누군가에게 얻게 만드는 일은 별개라고 하는 겁니다.

중생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싶다면 시험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번뇌 속으로 뛰어들어야합니다.

따라가는 것은 쉬어도 이끌고 가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귀를 열고 듣고 싶은 이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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