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찰라의 순간은 영원하다.

배가번드 2022. 8. 1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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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난다의 스승 스리 유크테스와르가 전해준 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영의 세계를 현상계, 영계, 근원계로 나누고 있는 이야기를 모두 알려면 시간이 없으므로 지금은 근원계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 합니다.

이것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무색계일 것이고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영생이라 하겠지요.

이곳에 거주하는 영들은 모두가 특이한 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빛의 존재들입니다.

이들에게 있어 성행위는 인간사회의 그것처럼 복잡하지가 않으며 서로의 합체로서 이루어집니다.

상대방의 빛에 끌리는 순간 자연스럽게 합체가 이루어지며 서로가 떨어지고자 할 때까지 합해진체 생활합니다.

분리와 합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이별의 슬픔 따위는 없습니다.

빛의 존재들이라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으며 마음을 먹는 순간 변화가 일어납니다.

호랑이도 되었다가 사슴도 되고 하늘의 구름이 되었다가 바위도 되는 등 마음먹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는 세상처럼 피 흘림의 잔인함이 없으며 그저 먹고 먹히는 연극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러한 근원계의 일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세상과 저세상이 맞닿아 있다고 했으니 분명히 근원계의 일을 이 세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마음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유한한 이 세상을 무한한 세상인 근원계의 차이점을 알게 되면 답은 쉽게 주어질 수 있겠지요.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공간이 집약된 세상으로 옮기려면 영화촬영기법을 도입해보면 됩니다.

저속촬영과 고속촬영의 경우를 대입해보자는 말입니다.

저속촬영의 경우 실제보다 수십 배, 혹은 수백 배 빠르게 볼 수 있으며 고속촬영의 경우에는 그 반대가 될 겁니다.

현상계와 근원계는 이런 차이가 있는 거지요.

예를 들어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 경우 현상계에서는 피 흘림과 잔인함이 있겠지만 근원계는 그저 짧은 순간의 먹고 먹히는 과정과 사슴이 호랑이의 일부분이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뿐입니다.

사슴의 피와 살과 뼈가 많은 시간이 지나며 각가지 과정을 거쳐 자연의 일부가 되는 전체과정이 근원 계에서는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에 불과합니다.

또한 사람사이의 만남에도 현상계에서는 전생의 일까지 연결되는 복잡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근원 계에서는 그 많은 과정을 담고 있는 특유의 색체끼리의 합체로서 한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영체의 색이 말해주며 그것이 서로 당기는 순간 합체가 곧바로 이루어졌다가 분리하고 싶을 때 언제든 분리가 이루어지는 거지요.

여기에는 질투의 감정도 이별의 슬픔 따위는 없습니다.

이러한 일을 현상계로 가져와보면 온갖 사연들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사람의 외모부터 시작해서 학벌이며 인간관계를 따지며 서로 저울질하고 손익계산을 하는 이세상의 일들은 상대방과 나의 빛 안에 녹아들어가 더 이상 만남의 장벽으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물론 현상계와 근원계 사이에 놓인 영계에서는 또 다른 일이 펼쳐지겠지요.

이번 생에서는 네가 나를 배신했으니 다음 생에서는 역할을 바꾸어서 너를 배신하게 될 거라는 등의 복잡한일이 생길 겁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건너뛰어 근원계로 가게 되면 아주 간단하게 만남과 이별이 실현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상계에 심어진 근원계의 일들이라 할 수 있지요.

시공간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것은 이런 것이며 영안을 연다는 의미도 이런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영안이 열리게 되면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근원계를 봄으로 시각의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간의 이견이 좁혀지지가 않는 겁니다.

억지로 해서 될 일도 아니고 본인스스로가 증득해야만 인식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현상계와 영계를 뛰어넘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이래서입니다.

인식의 폭을 넓힌다는 것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으며 사람에 따라서는 수백 생이 필요할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아야합니다.

화를 내고 미워하는 감정은 빛을 차단하며 자신의 영적진보를 더디게 만듭니다.

영적으로 고양된 영혼을 만나 교류를 하는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에너지의 교류는 근원계로 보면 영체의 합일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