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자비롭지만 또한 잔인하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이에게는 한없이 자비하지만 불신하면 가차 없이 내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신이 주지 않는 바람에 불신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여깁니다.
어찌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량없어서 늘 자신의 분수를 초과합니다.
그래서 신이 주지 않는 거지요.
또 어떤 이는 물질세상보다 영적인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겁니다.
본인이 선택은 영적인 길을 선택해놓고 물질을 원하기에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뿐 신은 정확하게 주고 있습니다.
다만 본인의 인식이 영적이지 못하므로 신의 축복을 볼 수 없을 뿐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믿음과 직결되는 문제이지요.
기본적으로 구도자는 신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신이 저 멀리 있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Know ye not that ye are the temple of God, and that the Spirit of God dwelleth in you?
아마도 이 구절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믿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말할 겁니다.
하지만 창세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는데 생명의 숨결을 콧구멍에 불어넣었다고 합니다.(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그래서 사람이 살아있는 영혼이 되었다고 했지요.(man became a living soul)
태초에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누구나가 하나님을 담고 있으며 다만 모를 뿐이라는 겁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은 본시 살아있는 생령인 셈입니다.
다만 어떤 이는 영혼이 살아있고 어떤 이는 죽었거나 잠들어 있는 거지요.
따라서 구도자라면 내면의 신이 살아나기 시작했거나 완전히 살아났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모르고 있을 뿐 신은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다면 결국 내 삶을 주관하는 이는 신이 되는 것이니만큼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죽어있거나 잠든 하나님이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재한 성령을 모르고 살았던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잠들거나 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부활이란 잠든 영혼을 깨운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인식의 확장을 통해 육신 안에 성령이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통해 영과 육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마27:50)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마27:51)
And, behold, the veil of the temple was rent in twain from the top to the bottom
성소휘장(the veil of the temple)이란 하나님이 계신 성전과 인간의 육신사이에 놓인 장막을 뜻합니다.
살아생전 예수님조차도 이렇게 가려진채 살았다는 뜻이며 육신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진정으로 영혼이 떠나간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스스로도 이러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으며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가 육신 안에 성령을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완벽을 보지 못하면 신을 모르거나 알아도 어설프게 안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아직도 자신의 삶에 만족이 없고 불만이 많다면 좀 더 신께 다가가기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바로 신은 우리 삶에서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여러분의 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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