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을 영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매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산사람과 연결하는 이들을 가리키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산신령이 실리기도하고 동자의 혼령이 실리기도하며 신통하게 병을 낫게 하거나 앞날을 예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매번 성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적이 있었지요.
과거에 어떤 여자 무당이 대통령 당선을 예언하여 맞춘 적이 있었고 그 일로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한번은 맞추었지만 두 번째는 맞추지 못하여 낭패를 당했던 겁니다.
그때 그분은 자신도 당황하여 신령님께 항의하듯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산신령이 말하길 보다 더 높은 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자신들이 알 수 없다고 했답니다.
결국 이들의 몸을 통해 나타나는 산신령이나 동자 신들은 낮은 단계의 영들이라는 말이며 영생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무당들은 점사를 볼 때 사람에 따라서 교회를 다니라고 돌려보내기도 하지요.
제대로 된 무당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넘어선 영혼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그들의 인연이 따로 있음을 아는 겁니다.
반대로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이들 가운데 점집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심지어 목사나 신부까지 점사를 보러 다니는 것을 본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결국 이런 일을 볼 때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이며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하지만 속으로는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육신은 성전이요 성전 안에 성령이신 하나님이 있음을 믿는 이가 드물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내면에 들어앉은 성령을 찾으려면(드러내려면) 어떻게 해야 마땅한 일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부의 신령한 존재의 말을 믿고 그 힘에 의존하게 되면 내재한 성령이 나타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본인의 신상에 이상이 생기고 물질적으로 가난에 처해지게 되면 내재한 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성령이 드러나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사실인겁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And every one that hath forsaken houses, or brethren, or sisters, or father, or mother, or wife, or children, or lands, for my name's sake, shall receive an hundredfold, and shall inherit everlasting life.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30)
But many that are first shall be last; and the last shall be first.
19절에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라했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육신을 통해 나타나신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6번째로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돌아갔으며 성령으로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위하여(드러내기 위하여) 인간관계나 물질을 버린 이들은 영생을 상속받는다 했지요.
그런데 주목해볼 것은 수백 배로 돌려받는다는 대목입니다.(shall receive an hundredfold)
이 내용을 물질세상을 벗어나지 못한 시각으로 보면 물질을 돌려받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영적으로 보자면 물질세상 전체를 발아래 둔다는 뜻이지요.
윤회의 틀 속에 있는 이들은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영생의 길을 걸을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물질도 수백 배 돌려받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번 생에 영생을 얻을 사람은 해석을 달리할거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수행자는 이런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네 자신을 믿어라 그리하면 세상을 네 발아래에 둘 것이다.
Believe in yourself and the world will be at your feet!
말은 쉬우나 실천은 어렵습니다.
영생을 얻고자 평생을 바쳤지만 아직도 점집을 드나들고 신령한 존재의 힘을 빌려야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지금 당장 내재한 성령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기에 30절과 같이 기록한 겁니다.
세상에는 먼저와 나중이 있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선후가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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