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주고자할 때 받을 사람이 없다면 불행한 겁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 일지라도 대상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흔히들 자선행위는 주는 사람을 더욱 기쁘게 한다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사실 자선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가진 것이 있어야하고 두 번째로 받을 대상이 있어야하며 세 번째로 주고자하는 마음이 일어나야하고 네 번째로 주고받는 대상과 인연이 있어야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주는 행위는 가진 자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으며 인연공덕이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선물하기를 좋아한다면 근본적으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 보면 정확합니다.
신의 속성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볼 때 이런 이들은 신과 하나 될 자질이 충분하지요.
반대로 인색하기 그지없다면 신과 하나 되기가 어렵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
Jesus said unto him,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 commandment.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And the second is like unto it,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40)
On these two commandments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22절에 목숨을 다하라고 한 것은 다르게 해석해야합니다.
soul을 목숨이라 해석해서 안 될 것은 없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영혼을 다하라 하는 것이 옳은 겁니다.
육의 몸이 있는 것과 같이 영혼의 몸이 있음을 알라는 뜻에서 이렇게 말해놓은 것이지요.
낮은 차원의 영혼이 아니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성령을 깨달아야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니 하나님이 주신 계명 중 첫 번째가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 중에 으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신5:7)
Thou shalt have none other gods before me.
이 말씀은 궁극(窮極)의 신은 하나밖에 없으며 우상숭배의 늪에 빠지지 말라는 뜻에서 기록된 겁니다.
물질이나 재물을 신으로 여기거나 밖에서 찾는 신은 진정한 신(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네게 있게 하지 말라 한거지요.
달리 표현하면 어떤 대상을 신으로 여기고 있을 경우 우상숭배의 늪에 빠진 것이며 영생의 하늘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마태복음22장 39절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두 번째 계명이라 하셨고 첫 번째 계명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대비해보면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이 두 가지 계명을 충족시키려면 하나님이 어떤 대상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며 나와 대상 모두에게 공히 머물러야만 가능합니다.
즉, 성령이신 하나님은 나에게만 거하시지는 않으며 삼라만상 안에 거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점을 깨닫게 되면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누군가 불상을 보고 절을 하거나 성모마리아 상을 보고 절을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빛이자 성령이신 하나님이나 무량광이신 부처님을 떠올린다면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인식을 확장하게 되면 대상을 사랑하는 행위는 곧 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알고서 행하느냐 모르고 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거지요.
따라서 누군가 부처상에 절을 하거나 성모마리아상이나 십자가에 절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더라도 함부로 심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시공이 무너진 영역인 영혼의 세계에서는 종교의 벽이 있을 수 없으며 관념과 이념의 경계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만약 아직도 누군가 이런 일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면 영혼의 세계를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명연설에 세상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진다하더라도 궁극적인 영혼의 세계를 모르는 것이며 성령을 깨닫지 못한 겁니다.
낮은 천국에 이르는 길을 말하고 있을 뿐 영생의 하늘에 이르는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일을 알고 말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행위라도 사랑을 담고 행하면 그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삼라만상을 그가 짓지 않은 것이 없다했고 우주만물 안에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어있다 했으니 이 같은 내말이 틀리다면 하나님의 창조설을 부인하는 겁니다.
일찍이 바울은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13: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10)
But when that which is perfect is come, then that which is in part shall be done away.
신(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라는 점을 모른다면 영의 일을 말해도 소용이 없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가르침은 부분적인 가르침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말하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인겁니다.
주변에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있다면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준다는 것은 대상이 있다는 말이며 받는다는 것 또한 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니 둘은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듣는 귀와 말하는 입이 따로 인 것 같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정확히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성령의 말은 성령이 들을 수 있기 때문으로 나와 통하는 사람은 알아듣고 이해할 것이며 모르면 비난하고 욕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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