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때 수행자 한분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면 내 자유의지는 소용이 없는 겁니까?
낙엽하나가 떨어져도 신의 뜻이라는 말을 내가 늘 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질문이 내게 돌아온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요.
사형께서 이렇게 말씀하신이유는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자유의지를 발휘하기 마련인데 어째서 내가 하는 일이 신의 뜻이 되어야하는가를 말하는 동시에 내가 하는 일이 신이 하는 일인지 내자유의지가 하는 일인지 어떻게 구분 짓는가를 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차례 말해왔듯이 신을 담고 있지 않은 그릇은 없습니다.
육신은 성전이요 성전 안에 하나님이 살고 있다 했으니 누구나 신을 담고 있지요.
그러니 누구나의 자유의지는 신의 나타내심이라 할 수 있는데 한 가지 유념(留念)할 점은 나를 상대하는 상대방에게도 신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노력하는 과정은 인간의 자유의지라 여기고 결과는 신이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일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눅12:7)
But even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all numbered. Fear not therefore: ye are of more value than many sparrows.
마가복음에서 너희에게는 하고 말한 이유는 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위해서입니다.
내재한 신을 모르는 사람들은 육신을 움직이는 주체가 자신(眞我가 아닌自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자신의 의지가 하고 있다 여깁니다.
그렇지만 내재하신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육신의 자유의지조차 성령이 움직인다고 여기지요.
상대방이 믿음을 가지고 있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성령은 그들의 자유의지조차 움직이고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삼라만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이라 말하는 겁니다.
이렇게 성령에 대해 알고 나면 내 자유의지를 마음껏 발휘하는 것은 성령이 하는 일이 되는 것이며 결과도 하나님이 주는 것이 됩니다.
비록 내가 의도한대로 되지 않는다할지라도 신은 정확하게 나에게 맞는 결과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처음부터 신은 내가 실패하여 곤란지경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면 되지 않는가를 말하겠지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도 성경에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
And he went a little farther, and fell on his face, and prayed, saying, O my Father, if it be possible, let this cup pass from me: nevertheless not as I will, but as thou wilt.
만약 성령을 드러내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 해서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될 것 같으면 예수의 이러한 기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육신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성령이신 하나님이 삼라만상을 통해 역사하심을 예수께서 아셨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마태오가 이렇게 기록한 겁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넘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십자가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성경은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요21:20)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요21: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21:22)
20절에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는 유다를 가리킵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것인데 여기에 대해 베드로가 궁금해서 물었던 거지요.
예수님을 팔아넘겼으니 이 사람은 지옥가야 마땅할 것인데 어째서 예수님과 같이 나타날 수 있었냐는 말입니다.(21절)
이 같은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타인의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인즉 하나님의 뜻을 육신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죄인 유다를 살려놓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성령이신 예수)의 뜻이니 육적인 자유의지의 범주를 넘어서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성령의 뜻을 따르라는 거지요.
사람이 육신을 가진 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먹은 일이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하는 일마다 잘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수행 길에 나선 사람들은 약간의 신통이 생기면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거들먹거립니다.
72가지의 신통력을 갖춘 손오공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신을 능가하려 듭니다.
이렇게 오만한 손오공을 통제하기 위해 부처님은 금고아(禁錮我)를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주었지요.
금고아를 풀이하면 육적자아를 통제하기 위해 고통을 준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육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해지며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오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이 삼라만상을 통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라는 뜻에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만드는 겁니다.
또한 본인이 지은 죗값을 치르게 만들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다르게 조명하면 사람을 영광되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영적인 길에서 내려서지 않고) 죽음조차 불사하며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을 영광되게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지요.
이모든 것이 선택에 달린 일입니다.
본인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달린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아닌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것은 프리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지옥도 천국도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입니다.
지옥과 천국이 내재함을 아는 자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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