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보면 언제나 겁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아이들은 태어나기 무섭게 물에서 노는 아이들도 있지요.
나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물을 무서워하지는 않아도 깊은 물을 보면 공포심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수영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막상 깊은 물에 들어가 보면 공포심이 일어납니다.
이런 일을 두고 누군가 나에게 수호지에 나오는 인물 중에 칼 장수였기 때문이라 했는데 수영을 무척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전쟁 중에 물속에서 죽었기 때문에 나 자신도 모르게 물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지요.
수많은 생을 살았던 기억이 나에게 혼재해 있으므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에 대해 청와대 무술교관을 역임하신 분으로부터 들었던 적이 있는데 자신이 특수부대 무술훈련을 맡은 적이 있었고 그중에 한명의 행동이 이상한 점을 보고 전생이 있다는 확신을 했다는 겁니다.
모든 아이들이 텀블링을 할 때 두 손을 짚고 넘는데 유독 한아이만이 한손만을 짚고 넘더라는 거지요.
아무리 고쳐주려고 해도 안 되고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기에 이상해했는데 대련시간에도 그렇더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가격할 때 습관적으로 한쪽 손을 못 쓰는걸 보고 전생에 대한 기억이 짙게 남아있음을 확인했던 겁니다.
이런 일을 두고 불교에서는 이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3전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일에 대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만 성경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But he shall receive an hundredfold now in this time, houses, and brethren, and sisters, and mothers, and children, and lands, with persecutions; and in the world to come eternal life.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10:31)
예수를 위해 집과 부모형제와 전토를 버리면 수백 배 돌려받게 되고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영생을 얻는다 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는 성령을 뜻하며 영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게 되면 바친 것의 수백 배가 돌아온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그야말로 진실 된 것이 교회에서는 교우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이 자체만으로 이미 형제자매가 수백 배 된 것이며 형제자매의 부모와 자식도 모두가 내 부모자식들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니 금생에서(now in this time) 수백 배 돌려받는다고 한 것이며 다가오는 생애에는 영생을 받는다 한 겁니다.(in the world to come eternal life)
그런데 우리가 만약 이생만 사는 것이라면 31절 말씀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가르침을 받는 순서대로 영생을 얻어야 마땅하지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은 전생과 이생이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거지요.
이미 전생부터 닦아 왔기에 이생에서 예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영생을 곧바로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예수님 같은 분을 만나 처음으로 영적인 길에 들어섰다면 물질적인 보상과 육적인 보상은 받더라도 영생은 다음 생에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지요.
누가 먼저 된 자고 영생을 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다만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물론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직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은 사람이며 이번 생에서는 인연만 맺고 갈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이렇게만 볼일도 아니지요.
인도에서 전승되어오는 가르침에 따르면 겸손이야말로 최고의 미적이자 영적완성의 지름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시바신은 자신의 부인인 칼리와 함께 세상구경에 나섰는데 사원에서 평생을 결혼도 않고 오로지 시바신만 경배하며 지낸 사람을 보았다고 하며 그 사람에게 당신의 정성이 갸륵하니 다음 생에는 영적완성에 이를 것이라 축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30년 동안 경배해온 사람에게는 앞으로 다섯 번만 더 세상에 오고 공덕을 쌓으면 완성에 이를 것이라 말했지요.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농부 한사람은 결혼을 한 몸이고 자식도 많아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삶 전체를 시바신이 보살펴주신다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기도하며 꽃을 바쳤는데 가난하다보니 돈이 없어 보시를 많이 못한지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겁니다.
이 사람에게도 시바신은 축복을 해주었는데 정성이 갸륵하니 앞으로 백번을 더 오면 영적완성을 이룰 것이라 말해주었지요.
그러자 갑자기 농부는 일어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신같이 무식하고 보잘 것 없는 이가 영적완성에 이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말을 함과 동시에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는 가운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농부의 몸이 갑자기 빛으로 바뀌며 시바신과 칼리와 함께 승천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시바신의 부인 칼리는 남편인 시바에게 따져 물었지요.
당신은 왜 평생을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에게는 한 번 더 와야 한다 말하고 30년 동안 수행한 사람에게는 다섯 번이나 더와야한다 말해놓고서 무지한 농부는 곧바로 축복을 내리나요?
이 같은 아내 칼리의 말에 시바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를 축복해준 것이 아냐.
그 사람의 순수함과 감사의 마음이 그를 축복한거야.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비유의 가르침입니다.
음양의 조화를 말하기위해 아내를 등장시킨 것일 뿐 시바신의 아내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파괴의 신으로 알려진 시바는 창조의 신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가르침은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이를 수 있다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겁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런 지경에 처해져야하나 할 때가 숱하게 많지요.
지금도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내게 주어진 잔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를 생각하면서 그 잔을 주저 않고 마시곤 합니다.
힘들 때는 전생에 내가 나라를 팔아먹었나보다 하다가 좋을 때는 나라를 구했나보다 하지요.
이런 나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품성이 맑기 때문으로 내 영혼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내가 저주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내 육신에 초점을 맞춘 채 나를 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이며 그들이 보는 대로의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끌어내려도 나이고 올려놓아도 나인지라 어느 것도 나아닌 것이 없으니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를 지경입니다.
나는 그저 상대방의 거울이라 하겠습니다.
축복과 저주는 한 몸과 같으니 이 비밀을 아는 자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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